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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01244525
· 쪽수 : 264쪽
책 소개
목차
서문_제프 벌린 - 8
웰컴 홈 - 13
편지들(1944~1965) - 119
작가 소개 - 257
리뷰
책속에서
부모님은 가끔 밤에 이웃들과 피너클 카드놀이를 했다. 웃음소리와 담배연기가 계단을 타고 내 방까지 올라왔다. 핀란드어나 스웨덴어로 지르는 탄성들. 포커 칩. 계단처럼 쌓인 포커 칩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소리, 얼음 담긴 컵에서 나는 마라카스 같은 소리가 감미로웠다. 어머니 특유의 카드 도르는 소리도. 카드를 섞어 빼고 놓을 때의 신속한 슥슥 소리, 경쾌한 탁탁 소리.
나는 매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나중에는 아이들이 발야구와 공기놀이, 팽이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에서 내 스키피와 놀았다. 스키피는 목욕가운 허리띠를 개줄처럼 묶어서 ‘강아지’처럼 내가 갖고 놀던 작은 커피 주전자였다. 어머니는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다. 우리는 비 내리는 창밖을 마냥 내다보곤 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첫눈이 내린 것을 본 순간에는 무서웠지만 이내 아름답다고 느꼈다.
- 아이다호주 멀란
나는 밀가루를 물에 이겨 만든 풀로 잡지책 낱장들을 조심스럽게 벽에 붙였다. 잡지의 글이 젖을까 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통나무집 벽의 천장부터 바닥까지에 잡지책 낱장을 조각보처럼 붙여 빈틈없이 도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해놓으면 존슨 할아버지는 벽에 붙은 것을 읽으며 긴 겨울을 났다.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잡지의 종류와 페이지 들을 뒤섞어 붙이는 일이었다. 어느 잡지의 20페이지를 북쪽벽 상단에 붙였으면 21페이지는 남쪽 벽 하단에 붙이는 식으로.
나는 그게 나의 첫 문학 수업, 또는 창조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배운 첫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 몬태나주 헬레나
창문의 블라인드는 쉽게 잘 쳐지고 잘 걷혔다. 나는 어둠 속에 앉아 창밖의 달을 스치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어느 농가의 부엌, 그리고 그 안에 깨어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나는 실내등을 켜고 밖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숲속에 누군가 있어서 나를 볼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있는데 승무원이 내게 와서 나직이 물었다. “뭐 도와드릴까요, 아가씨?”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살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자 흐뭇함과 안전함, 그리고 단추를 끝까지 다 채운 느낌이 들었다. 차장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나는 블라인드를 치고 있다가도 열차가 작은 마을에 정차할 때면 조금 걷어 올렸다.
- 스포캔발 엘패소행 남태평양 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