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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암집

순암집

(조선의 학문을 반성하다)

안정복 (지은이), 이상하 (옮긴이), 안병걸 (감수)
한국고전번역원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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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암집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순암집 (조선의 학문을 반성하다)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28404896
· 쪽수 : 340쪽
· 출판일 : 2017-11-27

책 소개

순암 안정복(1712~1791)의 생애를 통해 그의 학문과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였다. 주자학과 퇴계학을 고수하려고 했던 보수적인 입장, 천주학을 이단이라 규정한 논리,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글들을 통해 그의 다채로운 사상을 만나 볼 수 있다.

목차

한국고전선집을 펴내며
안정복은 누구인가

제1장 순암이라는 학자
영장산객전
순암이라는 집
청빈한 학자의 생활
산수 경치도 얘기하지 말지니
온 세상 사람들이 헐뜯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고
사문의 장래를 염려하며
불쇠옹의 기개
차라리 얕게 볼지언정 깊게 보지 말라
무엇하러 애써 옛 성현의 책을 읽겠는가
아들에게 보이다
곤충과 벌레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초서롱과 저서롱

제2장 스승과 제자
함장록
이름을 바꾸지 않다
스승의 시를 논평하며
스승의 사후에 후진을 걱정하다

제3장 사상과 성리설
영혼과 사후 세계는 있는가
양명학을 비판하다
퇴계학파의 사칠설(四七說)을 고수하다
공정한 희로는 리발인가
리기논변은 실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필요한 리기논쟁을 중단하자

제4장 천주학 비판
천주학은 불학(佛學)이다
천주는 우리의 상제이다
천주학 문답
성호는 천주학을 수용하였는가

제5장 조선의 학문을 반성하다
꿈에 짓다
성현의 경서를 함부로 해석해서야
도연명과 제갈량을 흠모하며
장식이 벗 주자에게 준 충고
주자의 주석도 오류가 있다
주자의 『시집전』은 잘못된 해석이다
동방의 학자는 규모가 작고 기상이 좁다
정주 이후 학자는 한, 당의 선비만 못하다

제6장 동사(東史)를 편찬하며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역사를 몰라서야
동사문답
나무를 심어 방책을 만드는 법
우리나라 지리지는 오류가 많다
우리나라는 지리상 국방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자음이 바른 음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다가 느낌이 있어
악부체를 본떠서 읊다
성기가
옹산성장가
천성행
노사행
백마총행

제7장 잡록
상중에 고기를 권하며
숙종의 동궁 시절
족보의 기록에 오류가 많다
선인들의 저술
총명강기
우리나라의 서원
독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시를 잘못 인용한 사례
남명의 시집
임금과 신하 사이
노비법
바다의 큰 섬
벙어리저금통
벙어리저금통을 깨다

제8장 평가
제자 황덕길의 평가
노익장 불쇠옹
유후조의 평가
영남학파 학자 신체인의 평가
기호학파 학자 홍직필의 평가
기호학파 학자 김평묵의 평가
사학에 대한 평가

연보

저자소개

안정복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후기의 역사학자, 실학자이다.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순암(順菴), 자는 백순(百順)이다. 25세에 경기도 광주에 정착하여 ‘순암’이라는 이름의 거처를 만들고 그곳에서 학문에 전념했다. 35세에 성호 이익을 찾아가 학문 교류를 하여 큰 영향을 받았다. 40, 50대를 학문과 저술 활동으로 보내며, 『동사강목(東史綱目)』, 『열조통기(列朝通紀)』, 『잡동산이(雜同散異)』, 『임관정요(臨官政要)』 등 방대한 실학적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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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계명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상임연구원 졸업 조선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수(現) [논문 및 역서] 논문 <한문고전 문집번역의 특성과 문제점>, <≪주자서절요≫가 조선조에 끼친 영향>, <퇴계⋅남명의 시와 대조적인 학문성향> 등 역서 ≪挹翠軒遺稿≫, ≪月沙集≫, ≪容齋集≫, ≪鵝溪遺稿≫, ≪石洲集≫ 등 공역 ≪寒洲 李震相의 主理論 硏究≫, ≪冷淡家計≫, ≪儒學的 思惟와 韓國文化≫(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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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갈암 이현일, 경세의 뜻을 품은 큰 선비』, 『인문학을 위한 한문읽기』, 『서원, 한국사상의 숨결을 찾아서』 등이 있고, 번역서로 『퇴계전서』14, 『역주 시경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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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안정복은 충청북도 제천현에서 태어나, 4세 때 모친을 따라 상경한 뒤로 여러 지역을 옮겨 살다가, 25세 때 경기도 광주 경안면 덕곡리에 정착하였다. 그의 집안은 남인에 속했던 터라 노론이 득세하던 당시에 과거를 통해 입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찍부터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객은 평소 제갈량(諸葛亮)과 도연명(陶淵明)을 사모하였다.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와 『진서(晉書)』, 『송서(宋書)』에 수록된 그들의 전(傳)은 상세한 곳과 소략한 곳이 뒤섞여 있고 누락된 사실도 실로 많았다. 그래서 두루 전기(傳記)를 채집하여 제갈량과 도연명의 전을 만들어 늘 읽으면서 그들을 만나기나 한 듯이 기뻐하였다.
-「영장산객전(靈長山客傳)」중에서

일생을 학자로 보낸 안정복이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과 동진(東晉)의 은사 도연명을 사모하였다는 것은 퍽 의외이다. 안정복이 한평생 초야에 묻혀 학문 연구만 했던 것은 과거를 통해 포부를 펼 수 없는 답답한 처지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2장 스승과 제자

안정복은 병인년 35세 때 성호 이익을 처음 찾아가 스승으로 섬긴다. 이익과는 세 차례 만났고 함께한 시일은 모두 4일이었으나 안정복은 이익을 평생에 유일한 스승으로 지극히 존경하였고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진지하게 학문을 토론하였다. 그렇지만 안정복은 기질과 학문 성향이 스승과 달랐다. 이익이 활달하고 개방적이라면 안정복은 온건하고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전일에 보내신 두 통의 편지에서 말씀하신 주정(主靜), 거경(居敬)의 가르침과 군자소귀장(君子所貴章)은 감히 실천할 수 있다 자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맹세코 종신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재능을 감추라고 하신 것은 삼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이름을 고치는 일은 아무래도 온당하고 바른 도리가 아닐 듯합니다. 이름을 아무리 고치더라도 이 몸은 여전히 그 사람 그대로일 것이니, 이 문제는 저 자신의 할 도리를 다하여 스스로 지켜 가면 그만일 것입니다.
-「이름을 바꾸지 않다[答上星湖先生書]」중에서

학문에서 치지(致知)와 자득을 특히 중시한 이익이 왜 이러한 가르침을 주었을까. 당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안정복에게 마음을 하나로 수렴하여 근본이 되는 공부에 집중하라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익이 이름을 고치라고 했는데 안정복은 고치지 않았다. 스승의 말을 매우 중시하는 당시로서는 퍽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름을 고치라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안정복을 염려하여 이름을 고치라고 했던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아무튼 안정복이 자존심과 소신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3장 사상과 성리설

안정복의 사상의 근본은 주자학이고 스스로 주자학을 매우 존신하였다. 그래서 불교와 천주교는 물론 양명학도 이단으로 몰아 배척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사후 세계에 대해 일정한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점에서 안정복의 사상은 당시 조선의 일반적인 주자학자들과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리설은 퇴계학파 주류의 학설을 고수하려고 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보인다.

대저 리기설(理氣說)이 있은 뒤로 이에 관한 학설이 한우충동(汗牛充棟)으로 많아 오늘날 학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저술의 자료가 되어 하나의 폐단을 이루는 실정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이 학문한다는 것은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는데 불과합니다. 리기(理氣)가 비록 성명(性命)의 근원이라고 하지만 실용에는 별 관계가 없는 듯한데, 공연히 주고받으며 한갓 종이 위의 한가로운 말만 늘어놓다가 점점 과격해져서 끝없이 각축을 벌이는 것은 또한 무슨 작태입니까.
-「리기논변은 실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答邵南尹丈書]」중에서

기축년(1769) 58세 때 윤동규에게 보낸 편지이다. 실용에 꼭 필요치 않은 리기설이 가장 중요한 학설이 되어 걸핏하면 지나친 논쟁을 야기하는 폐단을 지적하는 한편, 퇴계가 만년에는 고봉의 설을 따랐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며 성인의 공정한 희로, 즉 공희로가 리발이라는 주장을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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