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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88931574821
· 쪽수 : 528쪽
· 출판일 : 2010-08-16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면서1|발굴로 보는 우리 역사 답사기 6
들어가면서2|미래를 위해 과거의 흔적을 찾아가는 행복한 여정 9
제1부 충청|하늘이 내려준 고대사의 흔적
1장_마한의 비밀을 간직한 공주 장선리 유적 14
2장_무령왕릉 이후 최대 발굴, 공주 수촌리 고분 24
3장_철강 강국 백제의 위용을 보여 준 청주 신봉동 유적 42
4장_나·당 국제회담이 열린 철옹성, 보은 삼년산성 60
5장_발 끝에 걸려 머리를 내민 단양 적성비 72
6장_어느 향토사학회가 발견한, 중원 고구려비 82
7장_위덕왕의 뼈저린 반성이 담긴 부여 왕흥사 96
제2부 호남·제주|고고학, 동북아의 중심에서 역사를 만나다
8장_서동과 선화의 파란만장한 사랑이야기가 깃든 익산 미륵사지 118
9장_고대사의 블랙박스가 열린 나주 복암리 유적 138
10장_고철에서 국보로 운명이 뒤바뀐 화순 대곡리 청동예기 164
11장_2,000년 전의 무역항, 해남 군곡리 유적 174
12장_또 다른 역사, 탐라의 흔적을 간직한 제주 고산리 유적 184
제3부 영남|역사가 바뀐 곳, 역사가 이루어진 곳
13장 _ 한국 고고학의 출발지가 된 영도 동삼동 패총 202
14장 _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해 버린 동래 복천동 고분군 218
15장 _ 전쟁고고학의 성과를 담아낸 동래읍성 234
16장 _ 주인을 따라 순장된 창녕 송현동 소녀 250
17장 _ 태풍을 타고 떠오른 8,000년 전의 배, 창녕 비봉리 유적 274
18장 _ 구국의 일념이 절절이 배인 경주 사천왕사터 290
19장 _ 농부가 찾아낸 신라 최고 고비, 포항 중성리비 306
20장 _ 일연선사의 체취가 묻은 군위 인각사 324
21장 _ 세계를 눈물로 적신 사랑이야기, 안동 원이 엄마의 편지 348
22장 _ 고구려와 신라가 지하에서 만나는 영풍 읍내리 벽화고분 362
제4부 강원|문명을 낳은 땅, 국난을 이기다
23장 _ 국난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은 원주 법천사 380
24장 _ 전설과 역사가 어우러진 정선 아우라지 청동기 마을 392
25장 _ 신석기인들의 도시, 강릉 초당동 유적 404
26장 _ 3,000년 전의 청동기 마을, 화천 용암리·위라리 유적 416
제5부 서울·경기|학문과 거래, 일상이 담긴 곳
27장 _ 한성백제인들의 논어책이 나온 인천 계양산성 428
28장 _ ‘조선의 부활’을 알린 서울 청진동 유적 436
29장 _ 출산 직전에 사망한 산모, 파주 파평 윤씨 미라 446
30장 _ 2,000년 전 백제의 대장간 마을, 연천 삼곶리 유적 474
참고문헌 500
찾아보기 522
리뷰
책속에서
11월 3일. 연구실에서 서류정리를 하고 있던 이훈 실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2지역, 즉 수촌리 현장에서 발굴을 담당하던 이창호 연구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 실장님, 지금 1호 토광묘에서 이상한 것이 잡혔어요. 금동관하고 환두대도(둥근 고리 칼)가 나왔어요.”
“금동관?”
머리가 띵했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며칠 전에 본 청동기 세트도 처음인데, 이번에는 금동관이라니. 급거 현장으로 달려간 이훈 실장의 앞에 희미한 금동관 같은 범상치 않은 흔적과 환두대도가 보였다.
(중략)
이훈 실장은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낮에 보았던 1호분의 장면이 파노마라처럼 스쳤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 머리에 쓰는 금동관이 환두대도의 칼끝에 있을까? 칼이 거꾸로 놓였단 말인가? 순간 이훈 실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래, 왜 금동관이라고만 생각했을까? 금동신발……. 맞다! 금동신발이다!’ 백제 금동신발은 무령왕릉, 즉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최상격의 유물이 아닌가?
- 1부 2장 ‘무령왕릉 이후 최대 발굴, 공주 수촌리 고분’ 중에서
크레인으로 들어올린 2단 심주석과 1단 심주석 사이의 틈은 석회로 밀봉된 흔적이 있었으므로 조성된 그대로, 즉 백제인들이 만든 그대로 노출된 것이었다. 조사단원들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조심스레 사리공(25×25센티미터, 깊이 27센티미터) 뚜껑을 열어 보았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현장에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뚜껑을 열자 사리공 중앙에 금동제사리외호가 안치되어 있었고, 남측 벽면에 먼지를 머금은 금판이 보였습니다.”(배병선 실장)
금판을 꺼내 먼지를 닦자 눈으로도 식별할 수 있는 글자가 보였다.
“‘法王’, ‘百濟王后’같은 명문이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김봉건 소장)
(중략)
명문에는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왕후(百濟王后)가『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진평왕의 따님인 선화공주가 아니라 “우리 백제왕후(我百濟王后), 즉 좌평(백제 16관등 가운데 최고벼슬) 벼슬인 사택적덕의 따님(佐平沙宅積德女)”이라고 못 박고 있지 않은가.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어요. 명문대로라면『삼국유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되면 선화공주가 미륵사를 지었다는 것과, 서동요를 포함해 백제 서동왕자와 신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모두 허구가 되어버릴 판이었죠.”(조유전 선생)
조유전 선생의 말마따나 충격적인 내용이 전해지면서 각 언론뿐만 아니라 학계가 요동쳤고, 선화공주와 서동이야기를 신주 모시듯 했던 익산 지역은 일순 ‘패닉’상태에 빠졌다.
- 2부 8장 ‘서동과 선화의 파란만장한 사랑이야기가 깃든 익산 미륵사지 석탑’ 중에서
“‘원이 엄마의 애끓는 사랑편지’야말로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 할 수 있어요.”(조유전 선생)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빠뜨린 또 하나의 유물은 이응태의 부인, 즉 원이 엄마가 남편을 위해 만든 미투리(삼이나 모시 등으로 삼은 신)였다. 미투리는 미라의 오른쪽 부분에서 발견됐다.
“기막힌 것은 원이 엄마가 이 미투리를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麻)을 섞어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 미투리(가로 27센티미터×세로 26센티미터)는 한지에 싸여 있었는데요.”
연구팀을 더‘짠’하게 만든 것은 띄엄띄엄 읽을 수 있는 편지 내용이었다.
“워낙 훼손이 심해 몇 군데만 읽을 수 있었는데 내용은‘이 신 시너못……’이라는 내용이었어요. 즉‘당신을 위해 내 머리카락으로 정성스레 삼은 신이었는데 이 신을 신지 못하게 됐다.’는 소리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지…….”
- 3부 21장 ‘세계를 눈물로 적신 사랑이야기, 안동 원이 엄마의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