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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23144
· 쪽수 : 363쪽
책 소개
목차
1부
탄생일
전염병축제
사슴태풍
2부
해바라기
물의 교육
꿈의 문제
변신
검고 젖은 맹세
3부
심야극장
평범한 슬픔
거울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눈에 봐도 소년은 닻섬의 소년이 아니었다. 더욱이 혼자라니. 빗속에 서서 고개를 수그린 소년은 정말 태풍이 이곳까지 쓸어온 국기처럼 홀로 펄럭이고 있었다. [……] 세 번도 넘게 백을 헤아렸지만 소년은 개천으로 곤두박질치지 않았다. 소년이 머뭇거릴수록 강우는 소년이 개천으로 고꾸라지기를 바라는 것인지,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지 헷갈렸다. 강우는 조바심이 났다. 강우는 어금니에 괴는 침을 꿀떡 삼키고 두 발을 굴러싿. 마음 같아서는 두 손을 모아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어서 뛰어내려.’ ‘조심해, 물러서란 말이야.’ 하지만 강우는 두 말 중 어떤 것이 진짜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강우의 머릿속에 사막의 모래알처럼 바글거리던 생각과 얼굴 들이, 지독한 가뭄 뒤 소낙비를 만난 석류처럼 알알이 들어차 상큼한 과일로 열렸다. 태풍의 끝이었고, 과일이 익을 시간이었다. 강우는 두 소년이 실린 고무 튜브를 푸른등대를 향해 힘차게 밀고 나갔다. 강우가 소년 하나가 심긴 반지에 탄광보다 무거운 닻섬을 끌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섬과 부두 사이의 바닷가에 헤매는 강우의 심장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섬 하나가 들어찼다.
강우는 그 섬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지만, 집을 둘러싼 길에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건 무관심이 라니라 의심하기 때문에 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러 오랫동안 그 길로 나서지만, 자신이 돌아가야 할 집의 지도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누군가 하나는 제자리에 남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강우는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다. 강우는 집과 길 사이를 맴돈다. 강우는 의심하고 기다린다. 강우는 길이고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