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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32912554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0-08-30
책 소개
목차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와 자살
부조리한 벽
철학적 자살
부조리한 자유
부조리한 인간
돈 후안주의
연극
정복
부조리한 창조
철학과 소설
키릴로프
내일 없는 창조
시지프 신화
부록
프란츠 카프카 작품 속의 희망과 부조리
역자 해설: 희망 없는 행복한 세상 살아가기
알베르 카뮈 연보
리뷰
책속에서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굳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그것은 철학의 근본적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그 외에 세계가 3차원인지 아닌지, 이성(理性)의 범주가 아홉 개인지 열두 개인지의 문제는 그다음이다.
익숙한 무대 장치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닥친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차로 출근하기, 사무실이나 공장에서의 네 시간 근무, 식사, 전차, 네 시간 근무, 식사, 잠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이러한 일정은 대부분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놀라움이 동반된 이 무기력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시작된다〉라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무기력은 기계적인 삶의 행위들 끝에 느껴지는 것이지만, 이것은 동시에 의식도 작동시킨다. 이 무기력이 의식을 일깨우고, 그다음 상황을 촉발시킨다.
한 단계 더 내려가면 나타나는 것이 바로 낯섦이다. 즉 세상이 〈두껍다〉는 것을 알아채고, 하나의 돌멩이가 얼마나 낯설 수 있고 우리와 얼마나 화해 불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자연이, 하나의 풍경이 얼마나 완강하게 우리를 부정할 수 있는지를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아름다움의 밑바닥에 뭔가 비인간적인 것이 자리 잡게 되고, 저기 보이는 언덕들, 온화한 하늘, 그림 같은 나무들은 우리가 거기에 입혀 놓은 신기루 같은 의미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리면서 그때부터는 실낙원보다 더 까마득히 멀어져 간다. 세계의 이 원초적인 적의(敵意)가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우리를 찾아온다. 세계는 한동안 우리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수 세기 동안 우리는 우리가 세계에 미리 부여해 놓은 윤곽과 형태들만을 이해해 왔으며, 이제부터는 우리가 그 인위적 책략을 이용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씌워 놓았던 가면을 벗은그 무대 장치들은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우리로부터 멀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