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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32917436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6-03-1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처음에는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가장 작은 물체조차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지녔고 구름들조차 이름이 있었다. 가위는 걸을 수 있었고 전화기와 주전자는 사촌 간이었으며 눈[目]과 안경은 형제지간이었다. 시계판은 사람 얼굴이었고 그릇 속의 완두콩 하나하나가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 차 앞에 붙은 라디에이터 안전망은 수많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는 입이었다. 펜은 비행선이었다. 동전은 비행접시였다. 나뭇가지는 팔이었다. 돌멩이들도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신은 어디에나 있었다.
여섯 살. 어느 토요일 아침 이제 막 옷을 다 입고 신발 끈을 매고(이제는 다 컸다. 제 할 일은 다 할 수 있는 소년이다),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다 마치고, 이른 아침 봄날 햇빛 속에서 서 있는데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평안과 기쁨을 억누를 수 없는, 황홀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당신은 혼잣말을 했다. 여섯 살보다 더 좋은 건 없어. 여섯은 될 수 있는 나이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나이야. 당신은 그 순간을 3초 전만큼이나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아침으로부터 5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당신 안에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또렷하게, 당신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기억들 중 그 어느 것보다도 밝게 타오르고 있다. 이렇게 강렬한 느낌을 일으킨 것이 무엇일까? 알 수는 없지만 추측건대 자의식의 탄생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내면의 목소리가 깨어날 때 여섯 살 무렵의 어린아이에게 일어나는 일, 생각을 하고, 스스로에게 생각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능력. 우리의 삶은 그 시점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선다.
그 노인은 당신에게 소리 지르며, 당신을 집으로 돌려보낼 뿐 아니라 영원히 그의 집에 오지 못하게 할 것이며, 당신이 못되고 사악한 아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너 같은 족속을 싫어한다>는 말이었다. 당신은 두들겨 맞은 듯한 기분으로 비틀거리며 거기서 나왔다. 피터에게 한 짓 때문에도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노인이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울렸다. <너 같은 족속>이 무슨 뜻이었을까? 당신은 궁금했다. 친구를 골프채로 때려서 피가 나게 만드는 그런 아이들인가 ― 아니면 훨씬 더 불길한 것, 무슨 짓을 해도 지워 낼 수 없는 영혼의 얼룩 같은 것일까? 너 같은 족속이란 그저 당신을 더러운 유대 놈이라고 부르는 것의 다른 표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