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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유성룡·이항복·김육·채제공

[큰글자도서] 유성룡·이항복·김육·채제공

(유교정치를 구현한 명재상들)

유성룡, 이항복, 김육, 채제공 (지은이), 임형택 (편저)
창비
43,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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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유성룡·이항복·김육·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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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큰글자도서] 유성룡·이항복·김육·채제공 (유교정치를 구현한 명재상들)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일반
· ISBN : 9788936481452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26-06-01

책 소개

창비 한국사상선 제8권 『유성룡·이항복·김육·채제공: 유교정치를 구현한 명재상들』은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친 시기 조선의 재상 중에서 공적이 두드러지며 다양한 저술을 남긴 인물들을 다룬다.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유교왕국의 명재상 4인

핵심저작
【 유성룡 】
1장 유성룡의 사상적 입장과 학문
2장 『징비록』(선)
3장 전란의 참상과 그 대책

【 이항복 】
1장 이항복, 학문 사상과 자세
2장 임진왜란 관련 기록
3장 전후의 시무책

【 김육 】
1장 김육의 학문과 개혁사상
2장 중국사행기—『조경일록』(초록)
3장 대동법과 돈의 통용 문제

【 채제공 】
1장 채제공, 인물 개관과 정신 자세
2장 채제공의 학문사상과 인간 이해
3장 경세학의 실천

유성룡 연보
이항복 연보
김육 연보
채제공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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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유성룡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형조정랑 권율(權慄)과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으며, 진관법鎭管法을 예전대로 고칠 것을 주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軍務)를 총괄했다. 이어 영의정이 되어 선조를 모시며 평양으로 파천했다. 이때 나라를 그르쳤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는데, 의주에 이르러 평안도 도체찰사가 되었다.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다. 이여송이 벽제관(碧蹄館)에서 패배하고 퇴각하려 하자 이를 만류했으며 일본과 화의에도 반대했다. 유성룡은 전란 기간 내내 군대 양성과 더불어 훈련도감 설치, 화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의 수축을 건의하여 군비 확충에 노력했으며, 소금을 만들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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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20년(숙종46)~1799년(정조23).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이며,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743년 문과 정시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748년 11월 영조의 특명으로 시행한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예문관 사관이 되었고, 이후 대사간, 한성 판윤, 병조 판서, 예조 판서, 호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780년 역적 홍국영과의 친분, 사도세자에 대한 신원 주장으로 공격을 받자 사직하고, 명덕산(明德山)과 노량(鷺梁) 등지에서 은거하였다. 1788년 우의정이 되었으며 2년 후 좌의정으로 승진하면서 3년간 혼자 정승을 맡아 국정을 운영하였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후회하여 기록한 〈금등(金縢)〉을 정조와 함께 보관할 유일한 신하로 채택될 만큼 두 국왕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며,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사후인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가 1823년 영남만인소로 신원되었다. 문장은 소차(疏箚)에 능했고, 시풍은 위로는 이민구(李敏求)․허목(許穆), 아래로는 정약용(丁若鏞)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문집으로 《번암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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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여러 중앙 관직을 거쳤다. 대동법의 전국적 확대 시행과 화폐 유통, 수레 보급 등 현실적 개혁을 추진해 민생 안정에 기여했다. 저작으로 『구황촬요』 『종덕신편』 『유원총보』 『해동명신록』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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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의 정치가로 여러 요직을 역임했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고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는 등 난국 극복에 기여했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하다 유배되어 생을 마쳤다. 저작으로 『사례훈몽』 『주소계의』 『노사영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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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택 (엮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문학 연구자로 출발하여 실학과 한문고전 연구·해석에 주력해온 원로학자. 저서로 『한국문학사의 시각』 『동아시아 서사와 소설사론』 『한국학의 실사구시』 『문명의식과 실학』 『21세기에 실학을 읽다』 등이 있고, 만해문학상·다산학술상·한국학저술상 등을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교수로서 동아시아학술원장을 역임하고, 정년 이후로는 익선재연구실을 운영하며 현재 『반계수록』의 역주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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