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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현대미술
· ISBN : 9788940804698
· 쪽수 : 344쪽
책 소개
목차
역자의 글
머리말
서론
“비정형”의 사용가치
저급유물론
도살장
저급유물론
사체
변증법
엔트로피
형상
수평성
게슈탈트
수평성
등방성
우울한 유희
키치
액체어
펄스
“돌려라!”
앵포르멜…에 대한 부정
요셉 보이스…에 대한 부정
올랭피아
부분 대상
펄스
엔트로피
특성 (없는)
광선총
하마의 발한
역 구멍
언캐니
매우 느린
수세식 변소
X는 현장을 나타낸다
요-요
변두리
결론
비정형의 운명
미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사전이라는 것은 단어의 의미를 더 이상 부여하지 않고 오히려 단어의 직무를 부여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비정형은 주어진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형용사이면서도, 각각의 사물은 그 자체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며 세상의 사물을 저급하게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는 용어이다. 그것이 나타내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거기에는 어떤 의미도 없고, 거미나 지렁이처럼 도처에서 짓눌릴 수 있다. 사실, 아카데믹한 인간이 만족하기 위해서 우주는 어떤 형태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 전체의 목표는 이외에는 없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프록코트를, 즉 수학적인 프록코트를 부여하는 것과 연관된다. 반면에 우주가 어느 것과도 유사하지 않고 비정형일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우주는 거미나 침과 같은 어떤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조르주 바타유
우리는 수평성(horizontalite/horizontality)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수평성은 비정형을 가장 분명하게 작동시키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존재의 상태인 수평성은 작동의 역동적인 본성을 불완전하게 포착한다). 장황하게 설명하자면 “수직적인 것에서 수평적인 것으로 하락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 인간은 직립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그리하여 입과 항문이 생물학적인 수평적인 축을 이루는 동물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감은 억압에 근거하고 있다. 직립하는 한, 인간은 태양을 바라보다가 눈에 화상을 입는다던가, 진흙에 담긴 발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물학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수평적인 시선이 수직적인 시각계를 횡단하게 하기 때문에, 현재 인간의 건축은 졸렬한 모방에 불과하다.
(……)
저급유물론(Base materialisme/Base materialism)은 관념론에 대항해 전쟁을 벌이기 위한 전투에서 바타유가 선택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그는 물질의 페티시화를 극복하고 싶어 했고, 바타유는 유물론의 사상가들이 그렇게 했다고 보았다. 바타유가 쓰기를, “대부분의 유물론자들은 모든 정신적인 실체를 제거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사물의 질서를 기술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사물의 위계질서적인 관계들은 관념론 특유의 것으로 기술된다.” (…) 바타유가 논의하기를, 대부분의 유물론과 나아가서는 변증법적 유물론조차도 기본적으로는 관념론적인 것이다. 바타유가 말하고자 하는 유형의 물질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도 없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권리를 가지지 않으며 마치 거미나 지렁이처럼 도처에 짓눌려 있다.” 물질은 이미지를 해소시킬 수가 없다(이미지라는 개념은 형식과 물질 사이의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추상 개념인 이상, 비정형의 작동이 붕괴시키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구별이다. (…) 바타유의 “물질”은 똥이거나 웃음이거나 혹은 외설적인 단어, 혹은 광기이다. 바타유에 따르면, 물질은 유혹적인 낭비이며,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유치한 것에 호소한다. 왜냐하면, 물질이 공격해서 끌어내는 것은 퇴화적이며 퇴행적이고 저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
펄스(Battement/Pulse)는 바타유가 사용하는 용어의 일부가 아니다[이는 “battement”, “pulsation”으로 진동, 맥박, 두드리기 등과 연관된다]. 논리적 추정에 근거해 이 용어를 우리의 범주에 넣었다. 유추에 근거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평성과 저급유물론이 직립 인간과 “순수 시각성”의 신화에 반박하듯이, 펄스는 모더니즘이 시각계에서 시간성을 배제한 것을 공격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러한 배제는 레싱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레싱은 시간과 운동을 전적으로 이야기로 보았고 결말을 향해간다고 보았다. 반대로 펄스는 끊임없는 비트(고동/진동/맥박)와 연관된다. 그것은 순수 시각성의 탈신체적 자기 완결성에 구멍을 내며, 신체적인 것의 개입을 부추긴다.
(……)
엔트로피(Entropie/Entropy: 모든 체계의 에너지가 계속해서 불가항력적으로 저하되는 상태를 의미하며, 그 결과 물질의 내부에는 무질서 상태와 무차이 상태가 연속적으로 증대해간다)도 바타유의 사상에서 나온 용어가 아니다. (그는 “낭비(depense/expenditure)”라는 말을 더 선호할 것이다. 그것은 같은 영역을 아우르지 않으며, 엔트로피의 대립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바타유는 엔트로피에 대한 고전적인 예―태양계가 결국 냉각될 것이라는 예―를 역행적으로 이용했다. 태양은 에너지를 과도하게 쏟아서, 이로 인해 인간은 과잉생산과 낭비를 하면서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엔트로피는 부정적인 운동이다. 엔트로피는 초기의 질서와 그 질서의 저하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낭비는 과잉을 통한 초기 무질서의 규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규제는 항상 불충분하기 때문에 절대 성공할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경쟁이 촉발된다.
-서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