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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문인에세이
· ISBN : 9788943103644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09-12-01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_ 일자무식 혜능만이 내 스승이다
1장 _ 문장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_ 릴케 《말테의 수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_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문체 _ 모리스 블랑쇼 《미래의 책》
자화상 _ 최승자 〈자화상〉
기호의 제국 _ 롤랑 바르트 《기호의 제국》
유용한 것 _ 김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흡혈귀의 비상 _ 미셸 투르니에 《흡혈귀의 비상》
나의 감방 나의 요새 _ 프란츠 카프카 〈일기, 1922년 1월 27일〉
나는 창조보다도 소멸에 기여한다 _ 고은 《해변의 운문집》
책벌레 _ 이덕무 〈간서치전〉
2장 _ 인생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_ 헤르만 헤세 《데미안》
풋풋하나 비릿한 스물 _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살아남음 _ 엘리아스 카네티 〈살아남은 자〉
인간 _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삼십 세 _ 잉게보르크 바하만 《삼십세》
사월 _ 빈센트 밀레이 〈봄〉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 _ 알베르 카뮈 《이방인》
한심한 청춘아 _ 그레이스 헤밍웨이
팔여 _ 김정국 〈사재〉
여인은 완성되었다 _ 실비아 플라스 〈거상〉
꿈속 미녀 _ 정약용 《다산문학선집》
눈물은 왜 짠가 _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건축은 수정이다 _ 지오 폰티 《건축예찬》
오류선생전 _ 도연명 〈오류선생전〉
십 전짜리 두 개 _ 김종삼 〈장편 2〉
3장 _ 관조
나무를 심은 사람 _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꿈꿀 권리 _ 가스통 바슐라르 《꿈꿀 권리》
무위의 아름다움 _ 노자 《도덕경》
고요함 _ 에크하르트 톨레 《고요함의 지혜》
걷기 _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침묵 _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어두운 심연에서 _ 니코스 카잔차키스 《어두운 심연에서》
인생을 탐내지 마라 _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_ 〈죽음〉《탈무드》
뱀 _ 다자이 오사무 《사양》
구두 _ 마르틴 하이데거 《예술 작품의 근원》
거기 누가 살든가 _ 박용래 〈누가〉
4장 _ 사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_ 정호승 <수선화에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_ 기형도 〈빈집〉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진 상처 _ 에밀 시오랑 《동구로 띄우는 편지》
저무는 가을 _ 마쓰오 바쇼 〈저무는 가을〉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 _ 전혜린 〈마지막 편지〉
슬픈 일만 내게 있어다오 _ 박정만 〈종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 _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_ 이상 〈날개〉
새장에 갇힌 봉황 _ 굴원 〈회사〉
사부곡 _ 고성 이씨 〈편지〉
우정 _ 연암 박지원 〈경보에게〉
사랑 _ 미시마 유키오 《우국》
리뷰
책속에서
남은 일생 내내 나에게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신 어머니, 이제 나는 당신께 나 나름의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억압된 욕망은 그것이 강력하게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적 힘을 인지한다. 그 부정적 힘의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는 그것을 향유하는 자에게 그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자에 대한 부끄러움을, 한 편의 침통한 시는 그것을 읽는 자에게 인간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소위 감동이라는 말로 우리가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는 심리적 반응이다. 감동이나 혼의 울림은 한 인간이 대상을 자신의 온몸으로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행위이다. 인간은 문학을 통해, 그것에서 얻은 감동을 통해, 자기와 다른 형태의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기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김현,「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전체에 대한 통찰』
- 1장-문장, <유용한 것> 중에서
……청춘은 아름답고 가혹하다. 분별의 지혜는 빈약하고 혈기는 뻗쳐오르기 때문이다. 꿈은 가깝고 현실은 멀어서 괴롭다. 실패는 잦고 방황은 길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누가 청춘을 두려워하랴.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고 싶다’(윤동주)고 한 것도 청춘이다. 굶주리고 목마를 때조차 청춘은 이루지 못한 꿈들 때문에 빛나고, 순수한 활력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움켜쥔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파한 청년은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윤동주) 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는 게 청춘이다. 실패와 방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 바다를 향해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는 게 청춘이다. - 2장-인생,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중에서
……스물은 풋풋하나 비릿하고 쉰은 시작하기엔 너무 늦고 그만두기엔 아직 일러 난감하다. 그 비릿함과 난감 사이에 서른 해의 어둠과 취기, 실패와 가망 없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릿한 시절에는 발레리가 마음에 불꽃 열광을 일으켜 세웠다면, 기세가 꺾이고 어깨는 처진 중년의 난감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 매는 지금에는 도연명의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라는 시구로 불꽃은 없지만 남은 재의 온기로 몸을 덥힌다.
비록 아직도 생계를 꾸리는 일에 매인 몸이지만 노자와 장자를 품에 끼고 살며 유유자적을 꿈으로 그리는 일만으로도 뼛속 깊이 즐거워한다. 봄새는 노래하고, 가을벌레는 서글피 우니, 어찌 천지에 초록의 싹들을 돋아나는 정기가 사라졌다고 슬퍼하랴. 봄새의 노래와 가을벌레의 울음만으로도 삶은 충만하다. 거친 베로 지은 옷을 입고 두 끼 밥만 먹어도 배부르다. 오늘 보람이 없다면 지나간 어제에 있었던 보람으로 마음이 기쁘지 않았던가. 벚꽃이 피면 벗들을 불러 모아 그 아래에서 술을 마시고, 모란이 피면 종일 그걸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가난과 미천함은 부끄럽지 않다. 가끔은 굴원과 도연명, 바쇼와 잇큐의 하이쿠를 벗 삼을 수 있는 한가로움이 있으니 어찌 그 삶의 어여쁨을 즐거워하지 않으리. - 2장-인생, <풋풋하나 비릿한 스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