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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54651752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18-06-14
책 소개
목차
머리말ㆍ7
공중전과 문학ㆍ11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ㆍ145
주ㆍ195
옮긴이의 말ㆍ203
W. G. 제발트 연보ㆍ213
관련 인물 정보ㆍ217
책속에서
「공중전과 문학」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 파괴 행위는 새로 건설된 국가 연감에 일반론으로 얼버무려 기록되었을 뿐 집단의식에 전혀 상흔을 남기지 않은 양 치부되었고, 당사자의 회고에서도 거의 배제되었을 뿐 아니라 그간 독일의 내적 상태에 관해 진전된 논의에서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훗날 알렉산더 클루게가 확인해주었듯이 그 어떤 것도 공적으로 의미 있는 기호가 되지 못했다.
1940년대 말에 나온 전체 문학작품 중 하인리히 뵐의 소설 『천사는 침묵했다』만이 유일하게, 당시 폐허에서 실제로 주위를 둘러본 모두를 사로잡았던 그 경악의 깊이에 근접하는 표상을 전달해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가망 없는 우울로 각인된 듯한 이 소설이 어째서 무려 오십 년이 지난 1992년에야 출판되어야 했는지 이내 깨닫게 된다. 당시 출판사는 당대 독자들에게 이 소설을 읽혀서는 안 된다고 보았고, 뵐도 그렇게 믿었던 듯하다. 실제로 곰페르츠 부인의 사투를 묘사한 제17장에는 오늘날 읽어도 쉽사리 떨쳐버릴 수 없는 뿌리깊은 불가지론이 등장한다. 그 검은 피, 끈적이며 굳어가는 피, 죽어가는 자의 입에서 이쪽으로 벌컥 쏟아지는 피, 여인의 가슴에 퍼져 침대보를 물들이고 침대 가장자리를 넘어 바닥으로 떨어진, 번져가며 고인 피, 뵐의 강조처럼, 잉크같이 매우 까만 그 피는 생존 의지에 반하는 나태한 심장(acedia cordis)의 상징이자, 독일인이라면 그 종말의 순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음침하고 불가항력적인 우울증의 상징이었다.
지하 방공호에서 도망쳐나온 사람들은 찐득찐득한 거품을 내며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속으로 기괴하게 발을 절룩거리며 쓰러져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밤에 죽어갔는지, 아니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이 그들을 채가기 전에 미쳐갔는지 누구도 정확히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