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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기초과학/교양과학
· ISBN : 9788956053639
· 쪽수 : 479쪽
· 출판일 : 2009-08-20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_ 잘못 아는 것이 편하지만, 그래도 올바로 알아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을까?
프롤로그 _ 과학을 대하는 비판적 태도, 정반대로 생각하기
1부 상식과는 다른 과학을 포착하다
001 오류의 편안함
002 상식에 도전하는 과학
003 인간이 발견을 만들까, 발견이 인간을 만들까?
004 우리 안에 있을까, 우리 주위에 있을까?
005 플레밍은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다
006 소리 없는 혁명
007 망각의 대가
008 자연으로 돌아가라!
009 여름에 벌어지는 색들의 잔치
010 개인과 민족
011 인간의 새로운 지위
012 과학으로 인해 마법에 걸린 세계
013 크레타인의 패러독스
014 과학사의 제0정리
015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잘못된 해석
016 인간의 일곱 번째 감각
017 소네트와 열역학 제2법칙
018 불현듯 찾아오는 정신적인 섬광
019 예측의 반전
020 신체 반응과 감정의 선후관계
021 제한을 통해 얻는 자유
022 하늘에 대한 옛날의 예견과 오늘의 예견
023 세상의 구원자를 단정짓기 전에
024 더 작아져라, 유감없이 즐겨라
025 안에서 하는 일과 밖에서 하는 일이 달라
026 불필요한 사실, 또는 폐기된 사실
027 금속도 피로할 수 있다
028 무를 두려워하지 말라
029 정말로 언어의 문제였을까?
030 잡아먹기와 잡아먹히기
031 유전적 차이의 크고 작음
2부 현실 속의 과학을 비판하다
032 틀린 단어들
033 위험에 처한 아이들 034 혁신에 대한 오해들
035 신들의 오류
036 할머니세포와 할머니
037 낡은 혁신들
038 뿌리 뽑을 수 없는 어리석음
039 선도하는 과학, 시달리는 과학
040 왜 노벨상을 둘러싼 분쟁은 없을까?
041 고등학교에서는 어떤 자연과학을 가르쳐야 할까?
042 과학 용어의 일상적 의미
043 새로움의 문제
044 제자리를 맴도는 과학혁명들
045 거실 안의 마약, 텔레비전
046 어려운 것 또는 어렵게 느껴지는 것
047 우리가 알고자 하지 않는 것
048 컴퓨터 없이 계산하는 방법
049 읽기와 ‘반드시’ 읽기
050 탈세속화 시대에 과학이 할 일
051 미래라는 검은 벽
052 가망 없는 집단
053 놀라움에 대한 놀라움
054 원숭이와 인간, 종교와 과학
055 실패를 통한 성공
056 신앙과 지식
057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문가들
058 전문가의 두 유형
059 망신스러운 혁신
060 문학과 삶
061 뭐야, 디자인이라니?
062 학제적 연구?
063 가설로서의 신
064 아주 요란한 헛소동
065 갇혀 있는 유전자
066 벌의 게놈 앞에서
067 끈끈하고도 허튼 소리
068 자살테러범 같은 최고위층
069 생명윤리학자의 폭력성
3부 교양으로서의 과학을 성찰하다
070 아무것도 우연은 아니다
071 소통으로서의 비평
072 날아가는 스파게티 괴물
073 인간과 역사
074 인간에 이르는 길
075 리히텐베르크의 교훈
076 모든 세계들 가운데 최선의 세계
077 과학의 힘을 다루는 올바른 방법
078 윤리의 어머니-교양과 도덕의 관계에 대하여
079 천사와 광자
080 생물학적 해적질의 반대
081 쉬운 시작과 어려운 시작
082 아는 것과 믿는 것
083 그림과 단어
084 앎과 실재
085 모차르트와 양자역학
086 추구하기와 발견하기
087 연구자와 시인
088 탐구의 논리와 연구자의 만족
089 불완전성의 놀라움
090 과학의 진리는 뒤를 뒤쫒는다
091 큰 세계와 작은 세계
092 길들여진 삶의 야수성
093 무지와 그 원인
094 계몽과 낭만주의
095 신과 과학
096 막스 델브뤼크의 생일을 축하하며
097 분할할 수 없다는 것이지,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은 아니라구
098 근대 과학의 탄생
099 동양과 서양의 윤리적 차이
100 영성과 과학
에필로그 _ 우리 시대에 걸맞은 교양으로서의 과학을 꿈꾸며
옮긴이의 말_ 뮤지컬 극장에서 씨름판으로 내려와야 하는 과학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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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수많은 위대한 발견들은 뜻밖의 정신적 섬광과 함께 일어나며, 그 섬광은 계시로 체험된다. 예컨대 19세기에 찰스 다윈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생명의 다양성과 적응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진화의 개념에 도달한 앨프리드 윌리스Alfred R. Wallace도 그런 체험을 했다. 당시 윌리스는 남아메리카에서 병을 앓고 있다. "내가 오한에 떨며(바깥 기온은 48도였다)다락방에 누워 있을 때, 내 눈앞에 다양성의 문제가 다시 한 번 나타났고, 나는 무언가에 이끌려 맬서스Thomas R. Malthus가 <인구론>에서 서술한 적극적 제약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만 내적인 힘과 자기 규율 끌어내야 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쉬운 답을 제공하는 자들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필수적인 가치관이 화폐가치처럼 급격히 붕괴하도록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과학의 고전은 정말로 읽을 가치가 있다. 과학의 낙관주의는 우리에게 이 세계를 진면목대로의 세계, 즉 모든 가능한 세계들 가운데 최선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인내력을 선사한다.
프로이트가 뻔뻔하게 자신을-그것도 그보다 100년도 더 전에 제안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과학의 위인들과 동격으로 놓는다는 점은 차치하고 일단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에 대한 프로이트의 설명은 과연 옳을까? 그의 설명과 관련하여 거듭 제기된 전환에 대한 생각들은 과연 옳을까? 대답은 단연코 '아니다'이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생각의 정반대가 옳다는 말도 덧붙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