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62603934
· 쪽수 : 168쪽
· 출판일 : 2012-12-07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어떻게 쓰든, 무엇을 쓰든 내 마음대로 회상록
천재 영웅과 입 큰 여학생
닭이 날고 개가 뛰다
탁구공의 운명
유일한 위안
쌍둥이 자매차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변화한다
붉은 태양과 뜨거운 눈물
희망과 절망 사이
결혼, 그리고 참담한 재회
영원한 안녕
인생은 장담할 수 없다
영웅과 미녀의 숨은 이야기
세월
옮긴이의 말 | 작가의 눈에 미친 개혁개방 한 세대의 중국
리뷰
책속에서
류 선생님의 별명은 ‘하마(河馬)’였는데, 우리 중에는 하마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연스레 우리는 입이 큰 두꺼비를 떠올렸고, ‘합마(蛤., 두꺼비)’와 ‘하마’는 발음이 비슷했던 까닭에, 류 하마는 이러구러 ‘류 합마’가 되었다. 내가 그 별명을 지어낸 것도 아닌데, 이런저런 조사 끝에 범인으로 밝혀진 사람은 엉뚱하게도 나였다.
류 합마는 열사의 아들이자 혁명위원회의 부주임이었다. 그런 그에게 별명 따위를 붙이는 것은 큰 죄였다. 결국 나는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학교에 물의를 빚고 소란을 일으켰으니 그건 필연적인 결과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재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운이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일을 망치는 재주를 타고난 듯했다. 노골적으 로 잘 보이려 한 행동조차 야속하게도 선생님이 자신을 해치는 일로 받아들이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늘 한탄했다.
“이눔아야, 니는 올빼미가 우는 밤에 생겼드나 ?(올빼미가 울면 재수가 없다고 여김-옮긴이) 어찌 이리 운수가 사납노!”
자동차가 우리 앞을 스쳐 갈 때마다, 우리는 유리창 너머로 루원리 아버지의 박력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때로 검은 선글라스를 썼고 때론 쓰지 않았다. 그는 때로 흰 장갑을 꼈고 때론 끼지 않았다. 나는 그가 흰 장갑을 끼고 검은 선글라스를 썼을 때의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영화 속에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한 우리 군의 스파이 영웅은 새하얀 장갑과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적군의 고위간부로 위장해 그들의 포격 진지를 조사했다. 그가 새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대포를 어루만지자 손가락 부분에 검은 탄약과 재가 묻어났다. 그러자 그는 마치 판사가 판결을 내리듯 다그쳐 물었다.
“자네들은 대체 대포를 어떻게 보관하는 건가!?”
미군 복장은 정말이지 근사했다. 미군 군복을 입고 새하얀 장갑과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스파이 영웅은 숨이 멎을 정도로 멋져 보였다. 완전히 끝내주게 멋졌다. 그 영화를 보고 난 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그 영웅의 말과 행동을 따라했다.
“자네들은 대체 대포를 어떻게 보관하는 건가!?”
하지만 우리는 흰 장갑을 끼지 못했기에 아무래도 진짜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새하얀 장갑 한 켤레를 얻을 수 있기를!’
그때 나는 벌써 《삼국연의 (三國演義)》, 《홍루몽 (紅樓夢)》, 《서유기 (西遊記)》 등의 고전소설을 다 읽었고, 몇 십 편이나 되는 당시 (唐詩)와 송사 (宋詞)도 외고 있었다. 거기다 볼펜 글씨도 제법 멋들어지게 썼다. 나는 이따금 공장에서 퇴직한 나이든 직원을 대신해 항저우 (杭州) 군대에 근무하는 그의 아들에게 편지를 써 주었다. 편지를 대신 쓰면서 나는 온갖 문언과 입말을 섞어가며 화려하고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려 애썼다.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귓가가 붉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그 나이든 직원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곧잘 나를 ‘어린 지식인’이라 부르며 칭찬했다. 나 또한 나를 때를 만나지 못한 불운한 천재로 여기며 넓은 세상에 나가 재능을 펼칠 날을 꿈꿨다. 목화 가공 공장은 분명 내가 오래 머물 곳이 아니었다. 더욱이 떠나온 농촌 마을로 돌아가는 것은 천리마의 재능을 우리 안에 가두는 것이나 다름없는 비극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