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율곡의 상소

율곡의 상소

(어리석은 왕에게 목숨을 걸고 바치는 이율곡의 옳은 소리)

이이 (지은이), 오세진 (옮긴이)
홍익
15,8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14,220원 -10% 2,500원
790원
15,93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율곡의 상소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율곡의 상소 (어리석은 왕에게 목숨을 걸고 바치는 이율곡의 옳은 소리)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70656915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9-06-05

책 소개

열혈 개혁가 이율곡이 선조 임금에게 목숨 걸고 올린 상소문 '동호문답'과 '만언봉사'에서 혼돈의 시대를 이기는 지혜를 찾는 책이다.

목차

머리말
율곡 이이는 누구인가?
〈동호문답〉과 〈만언봉사〉에 관하여

동호문답
01 군주에 대하여
[깊이 읽기 01] 진 문공, 한 번의 전투로 패업을 이루다
02 신하에 대하여
[깊이 읽기 02] 선비의 여섯 유형
03 군주와 신하가 만나기 어려움에 대하여
04 우리나라에서 도학이 행해지지 않음에 대하여
[깊이 읽기 03] 기자조선
05 우리 조정이 옛 도를 회복하지 못함에 대하여
[깊이 읽기 04] 조선시대 4대 사화
[깊이 읽기 05] 《주역》의 괘로 본 소인과 군자의 형상
06 지금의 시대 정세에 대하여
07 실질에 힘씀이 자기수양의 첩경임에 대하여
08 간사한 사람을 분별해냄이 현자를 등용하는 첩경임에 대하여
09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법에 대하여
[깊이 읽기 06] 종모법을 통해 노비의 수
10 백성을 교화하는 일에 대하여
11 명분을 바로잡는 일이 정치의 급선무임에 대하여

만언봉사
01 임금이 직언을 구하다
02 때에 맞는 정치 개혁
[깊이 읽기 01] 노나라와 제나라의 흥망성쇠
03 통치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일곱 가지 까닭
[깊이 읽기 02] 선조, 유신들을 비꼬다
04 임금의 자기수양 4조목과 백성을 편안히 하는 법 5조목
[깊이 읽기 03] 집안에서 은혜를 두텁게 베풀면서도 윤리를 바르게 하는 이치
[깊이 읽기 04] 임금의 비자금과 비자금 관리인, 내수사와 환관
[깊이 읽기 05] 공납 제도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한 율곡의 정책 제안
05 시국에 대하여

맺는말
율곡 이이 연보
찾아보기

저자소개

이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 1536년(중종31년) 1세 : 12월 26일 강릉부 북평촌 외가에서 출생함. 부친은 이원수(李元秀), 모친은 신사임당(申師任堂), 본관은 덕수(德水), 字는 숙헌(叔獻), 號는 율곡(栗谷), 시호는 문성(文成) - 1541년(중종36년) 6세 : 강릉에서 한양으로 올라옴. - 1542년(중종37년) 7세 : 「진복창전(陳復昌傳)」 지음. - 1543년(중종38년) 8세 :파주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화석정(花石亭)」 시 지음. - 1545년(중종40년) 10세 : 「경포대부(鏡浦臺賦)」 지음. - 1548년(명종3년) 13세 : 진사초시에 장원급제함. - 1551년(명종6년) 16세 : 5월 어머니 신사임당 별세, 「선비행장」을 지음. 파주 두문리에 어머니를 장례하고 3년간 시묘함. - 1554년(명종9년) 19세 : 우계 성혼(1535~1598)과 도의의 교분을 맺음. 3월 어머니 시묘 3년을 마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함. - 1555년(명종10년) 20세 : 금강산에서 강릉으로 돌아와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유학에 전념함. - 1556년(명종11년) 21세 : 봄에 한양으로 돌아와 漢城試에 장원급제함. - 1557년(명종12년) 22세 : 9월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 곡산 노씨와 혼인함. - 1558년(명종13년) 23세 : 봄에 경북 예안 도산(陶山)을 방문하여 퇴계 이황을 만남. 겨울에 別試에서 「천도책(天道策)」으로 장원급제함. - 1561년(명종16년) 26세 : 5월 아버지 이원수 별세. - 1564년(명종19년) 29세 : 7월 생원 진사시에 장원급제함. 8월 明經試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으로 첫 벼슬길에 나아감.(모두 9번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림.) - 1565년(명종20년) 30세 : 봄에 예조좌랑에 전임. 8월 요승(妖僧) 보우(普雨)와 권간(權奸) 윤원형(尹元衡)을 단죄하는 상소를 올림. 11월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자 사퇴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불허. - 1566년(명종21년) 31세 : 2월 병조좌랑에, 3월 다시 사간원 정언에 임명됨. 겨울에 이조좌랑에 임명됨. - 1568년(선조원년) 33세 : 2월 사헌부 지평에 임명됨. 가을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 돌아와 홍문관 부교리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에 임명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함. 11월에 다시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가 강릉 외조모 이씨의 병환으로 사직하고 강릉으로 내려감. - 1569년(선조2년) 34세 : 6월 교리에 임명됨. 9월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올림. - 1570년(선조3년) 35세 : 4월 교리에 임명됨. 10월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 1571년(선조4년) 36세 : 1월 이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여름에 교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6월 청주목사에 임명됨. - 1572년(선조5년) 37세 : 여름에 부응교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파주로 돌아감. 8월에 원접사 종사관, 9월에 사간원 사간, 12월에 홍문관 응교, 홍문관 전한을 제수 받았으나 모두 사퇴함. - 1573년(선조6년) 38세 : 7월 홍문관 직제학에 제수되었으나 3차례 상소를 올린 후 사임하고 8월에 파주로 돌아감. 9월 다시 직제학에 임명되어 사퇴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함. 겨울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임명됨. - 1574년(선조7년) 39세 : 1월 우부승지에 임명되어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지어 올림. 3월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됨. 10월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됨. - 1575년(선조8년) 40세 : 8월 홍문관 부제학으로 임명됨. 9월 『성학집요』를 지어 올림. - 1576년(선조9년) 41세 : 우부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전라감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병으로 나아가지 않음. 10월 해주 석담에 청계당을 지음. - 1577년(선조10년) 42세 : 1월 해주 석담에서 「동거계사」를 지음.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2월 『격몽요결』 지음. - 1578년(선조11년) 43세 : 해주 석담에 은병정사를 지음. 3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6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79년(선조12년) 44세 :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80년(선조13년) 45세 : 5월 「기자실기」 지음. 9월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 12월 대사간에 임명. 1581년(선조14년) 46세 6월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다시 예문관 제학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8월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됨. 9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0월 호조판서에 제수됨. 11월 『경연일기』 완성 - 1582년(선조15년) 47세 : 1월 이조판서에 제수됨. 7월 선조의 명으로 「인심도심설」, 「김시습전」, 「학교모범」, 「사목(事目)」을 지어 올림. 8월 형조판서에 임명됨. 9월 의정부 우참찬에 임명되고 숭정대부로 특진. 10월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원접사가 되어 「극기복례설」을 지음. 12월 병조판서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3년(선조16년) 48세 : 2월 「시무육조」 지어 올림. 3월 경연에서 십만양병을 건의함. 6월 동인의 탄핵을 받고 파주로 돌아갔다가 7월에 석담으로 돌아감. 9월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4년(선조17년) 49세 : 1월 「육조방략」을 최후로 지음. 1월 16일 한양 대사동에서 별세함. 3월 20일 파주 자운산에 안장됨. - 1624년(인조2년) : 문성(文成)의 시호를 받음. - 1681년(숙종7년) : 문묘의 종사를 허락받음.
펼치기
오세진 (편역)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다산학사전팀 보조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국고등교육재단 한학 연수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논어》, 《징비록》(공역), 《율곡의 상소》, 《다산은 아들을 이렇게 가르쳤다》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대학연의에서 수양론과 경세론의 관계 연구〉가 있다. 조선과 중국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관련 서적을 번역하고 강의하고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동호문답〉과 〈만언봉사〉는 율곡의 정치 개혁론이 요약적으로 담겨 있는 귀중한 우리의 고전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조선의 위대한 사상가로서 율곡 이이를 알 뿐, 정치인이자 개혁가로서의 율곡은 잘 모른다. 율곡을 단지 조선 성리학의 거물로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가 정치가로서 남긴 지적 유산을 포기하는 셈이다.
_〈동호문답과 만언봉사에 관하여] 중에서


지금 나라의 형세는 기절한 사람이 겨우 소생한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온갖 맥이 안정되지 않았고 원기도 회복되지 않아서 서둘러 약을 투여해야 살아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고는 앉아서 자연 치유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좋은 약이 필요하다고 여기면서도 어떤 약을 써야 할지 몰라 팔짱을 끼고 주변을 둘러보기만 하고 어떤 계책도 내놓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마치 큰 병을 치른 후에는 감기에 쉽게 걸리는 것처럼 앞으로 치료하지 못할 중병이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아침 내내 밥상을 차렸는데 배부르게 먹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 말은 실질이 없으니 어찌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경연에서 행해진 토론, 상소문, 왕께 올리는 문장 중에 나라를 다스리기에 충분한 훌륭한 제안이나 직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단 하나의 폐단도 개혁되지 못했고, 단 하나의 정책도 시행되지 못한 이유는 다만 실질적인 효과를 보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