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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72754879
· 쪽수 : 508쪽
· 출판일 : 2010-12-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겨울
봄
여름
가을
역자 후기
리뷰
책속에서
“정말이지 그녀를 위해서라면 난 무슨 일이든 했을 거다, 줄리언.” (……) 그때 불쑥 그 생각이 디밀고 떠올랐다. 저 여자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노랫말 속에서 그녀는 연인을 실은 배가 귀항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물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프도록 듣고 싶었던 그 음악을 그녀가 ‘그에게’ 불러주고 있었다. 머지않아 바다를 건너 전쟁터로 떠날 그가, 그녀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연인이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이 생각은 방금 맞은 화살처럼 그의 몸에 꽂혀 파르르 떨렸다. 왼쪽에 서 있는 장교든, 오른쪽의 젊은 처녀든, 누구든 죽여버리고 싶었다. 이상한 생각이라는 건 자기도 알고 있었다. 훗날 아버지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바로 그 순간 사랑이란 게 그렇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음악적 황홀경의 정점까지 떠받쳐져 올라가서, 인간들의 속세를 내려다보며 말살을 생각하게 되더라고.
줄리언 도나휴의 세대는 휴대용 헤드폰 음악의 선구자였기에, 그는 열다섯 살부터 어디를 가든 일상의 사운드트랙을 휴대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스물세 살 처음 뉴욕에 와서는 브루클린 하이츠 산책로를 배회하면서 자기가 이곳을 처음 발견했다고 주장했고, 무수한 시간과 워크맨을 동원해 식민지로 삼았다. 그는 처음으로 사창가를 찾은 남자가 노련한 창녀와 사랑에 빠지듯 맨해튼의 스카이라인과 사랑에 빠졌다. 해질녘에, 새벽녘에, 또 캄캄한 한밤중에, 새카만 이스트 리버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고, 그럴 때면 높은 탑마다, 거미 다리처럼 길게 뻗어 보석처럼 반짝이는 브루클린 다리마다 걸려 있는 후광들이 모두 어떤 의미를, 비로소 음악으로 소리를 얻고 가사를 통해 해독되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의미들을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멈추지 말고 돌아가, 워크맨아, 계속, 계속, 리와인드해서 차고 넘치는 의미를 내게 전해줘.
지금 줄리언은 기우뚱, 방향을 트는 지하철의 오렌지색 좌석에서 그럭저럭 예쁘지만 눈이 번쩍 뜨일 정도는 아닌 맞은편 자리 소녀를 뜯어보고 있었다. (……) 세상에는 그런 남자들이 있다. 딱 맞아 떨어지는 노래만 있다면 (적어도 정신 차리고 생각이라는 걸 하기 전까지) 지하철 맞은편 자리에 앉은 소녀도 자기와 같은 걸 듣고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생겨먹은 남자들이. 그리고 그런 남자들한테는 이 로맨스로 반질반질 덧칠된 풍경 속에서 저 소녀가 운명의 상대역으로 점지되었다고 느끼지 않는 쪽이 오히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소녀는 이제 눈길을 들고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미소가 살짝 번지는가 싶었는데, 아니, 자기 아이팟에서 자기 노래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