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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의 별 외

알퐁스 도데의 별 외

(사랑하기 전에 접종해야 할 여덟 종의 백신!)

0. 헨리,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알퐁스 도데, 오스카 와일드, 토머스 하디, 기 드 모파상, 파울 하이제,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은이), 백은주 (옮긴이)
아름다운날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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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의 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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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알퐁스 도데의 별 외 (사랑하기 전에 접종해야 할 여덟 종의 백신!)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88989354925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08-05-15

책 소개

사랑을 주제로 한 중단편의 모음집. 사랑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목동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알퐁스 도데의 '별', 작품 말미에 '진정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여자밖에 없다'고 설파한 모파상의 '의자 고치는 여자' 등 모두 8편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목차

첫사랑
의자 고치는 여자
귀여운 여자
별
크리스마스 선물
환상을 좇는 여인
고집쟁이 처녀
행복한 왕자

저자소개

오 헨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국 단편소설 작가로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고,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버러에서 내과의사인 아버지 알게몬 시드니 포터와 어머니 메리 제인 버지니아 와인 포터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양친을 잃어 숙모가 교사로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882년 텍사스로, 1884년에는 오스틴으로 이주하면서 목장 관리, 제도사, 기자, 은행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였다. 1887년 아솔 에스테스와 결혼했으며, 1891년 오스틴은행에 근무하면서 아내의 내조를 얻어 주간지를 창간했으며, 지방신문에 유머러스한 일화를 기고하는 등 문필생활을 시작하였다. 1896년 2월 은행 공금횡령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온두라스로 도피했으나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체포되었다. 1898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교도소의 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하면서 딸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고, 즉각 잡지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출감하면서 이름을 오 헨리란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03년 12월부터 1906년 1월까지 뉴욕의 《월드(World)》지에 매주 글을 기고하였다. 최초의 소설집 《캐비지와 왕(Cabbages and Kings)》(1904)을 시작으로, 《400만(The Four Million)》(1906), 《손질 잘한 램프(The Trimmed Lamp)》(1907), 《서부의 마음(Heart of the West)》(1907) 등의 단편집을 계속해서 출간했다. 헨리의 말년은 악화된 건강, 금전상 압박과의 싸움,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얼룩졌다. 1907년에 한 재혼은 불행했다. 1910년 6월 5일, 과로와 간경화, 당뇨병 등으로 뉴욕 종합병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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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글)    정보 더보기
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타간로그에서 출생했다. 잡화상의 아들로, 조부는 지주에게 돈을 주고 해방된 농노였다. 16세 때 아버지의 파산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서 중학 생활을 마쳤다. 1879년에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고, 그와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단편소설을 오락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1880년대 전반, 수년에 걸쳐 〈어느 관리의 죽음〉 <카멜레온> <하사관 프리시베예프〉 <슬픔〉 등과 같은 풍자와 유머, 애수가 담긴 뛰어난 단편을 많이 남겼다. 작가 그리고로비치의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가 담긴 편지에 감동하고 자각해 〈초원>을 썼다. 희곡 〈이바노프> <지루한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 지식인들의 우 울한 생활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1899년에 결핵 요양을 위하여 크림 반도의 얄타 교외로 옮겨 갈 때까지 단편소설 <결투> <검은 수사> <귀여운 여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골짜기> 등을 집필했다. 1896년 희곡 <갈매기>의 상연 실패는 그를 잠시 극작가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으나, <바냐 아저씨>를 써낸 이듬해인 1898년, 모스크바 예술 극단의 <갈매기> 상연은 성공적이었다. 1904년 병고 속에서도 <벚꽃 동산>을 집필해 상연하고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그해 요양지인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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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남프랑스 프로방스의 님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완전히 파산하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리옹의 앙페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알레스 공립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난폭한 학생들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갔다. 1859년 첫 시집 《연인들》을 출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후 시인 미스트랄, 소설가 플로베르, 졸라, 공쿠르, 투르게네프 등과 교류했다. 모르니 공작의 비서가 되어 생활이 안정되자 작품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1862년 희곡 〈마지막 우상〉을 발표했다. 1868년 알레스 공립 중학교의 경험을 담은 첫 소설 《꼬마》를 출간했고 1869년에는 단편집 《풍찻간 편지》를 출간했다. 《풍찻간 편지》에는 도데의 대표적인 단편인 〈별〉, 〈아를의 여인〉 등이 실려 있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나자 군대에 지원하여 비참한 전쟁을 몸소 겪었고, 1873년에 출간한 단편집 《월요일 이야기》에 패전국의 비애와 애국의 정열을 담은 〈마지막 수업〉, 〈소년 간첩〉, 〈기수〉 등을 실었다. 이외에도 섬세하고 감수성 풍부한 문체로 《타라스콩의 타르타랭》, 《자크》, 《나바브》, 《뉘마 루메스탕》 등 많은 작품을 남겼고, 1897년 12월 16일 척추 질환으로 고생하다가 56세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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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과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긴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지상주의와 유미주의의 대표적 작가이자 사회를 조롱한 재담가였다.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저명한 의사이자 고고학자였고 어머니는 시인이었다. 부모의 영향 아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예술에 깊이 빠져들었고,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후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로 진학했다. 1878년 시 「라벤나」로 뉴디게이트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첫 발을 내디뎠고, 1888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890년 발표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었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내던지는 도리언의 이야기 속에서 와일드는 도덕과 타락, 미와 윤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구했다. 그러나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기준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위험하고 부도덕한 책’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1890년대 후반 희곡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하찮은 여인〉, 〈진지함의 중요성〉 같은 풍자극을 발표하여 사회의 위선을 날카롭게 조롱했다. 1895년에는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 프랑스로 떠나 유랑 생활을 했는데,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00년 뇌수막염으로 생을 마감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19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문학과 미학을 향한 와일드의 탐구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논의되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창조한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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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하디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다. 1840년 6월 2일 도체스터 근방 하이어보켐턴에서 석공인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국 남부의 웨섹스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그의 고향 도체스터를 모델로 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하디는 내성적이고 몸이 약했다. 학교에서 받은 공식 교육은 약 8년 동안의 이 기간이 전부다. 하디는 16세에 도체스터의 건축사무소에 수습공으로 들어가 건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16년간 지속했던 건축 일은 소설 쓰기와 함께 그의 중요한 경력이 되었다. 1867년 후반에 첫 소설인 《가난뱅이와 귀부인》을 썼다. 1870년 봄, 교회 건물의 복원 작업 문제로 콘월의 세인트 줄리엇으로 파견되는데, 그곳 목사관에서 에마 기퍼드를 만난다. 1874년에 에마와 결혼했다. 결혼 후 그는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고, 대표작 《테스》와 《무명의 주드》를 집필했다. 1893년, 하디 부부는 더블린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단편 소설 집필을 함께했던 작가 플로렌스 헤니커를 만난다. 하디의 시편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그녀에게 상당한 애정을 품게 된다. 당시 하디는 결혼 생활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아내 에마는 하디의 글쓰기에 많은 도움도 주었지만 에마는 변호사의 딸로서 자신이 하디보다 우월한 계급 출신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이러한 신분의 차이는 결국 그들의 불행한 결혼 생활의 원인이 되었다. 이혼을 쉽게 허용하지 않던 경직된 당대의 사회 현실 속에서,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은 《숲의 사람들》, 《무명의 주드》에서 심도 있게 형상화된다. 특히 하디의 《무명의 주드》는 사촌 간의 사랑을 다룬 것 때문에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소설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하디는 이 작품을 끝으로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시와 극작에 전념했다. 말년 30년간은 영예로운 일들이 많았다. 1910년에 국왕으로부터 공로 대훈장을 받았고, 1920년과 1925년에 각각 케임브리지대학과 옥스퍼드대학으로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애버딘·브리스틀대학 등에서도 명예 학위를 받았다. 1912년에 아내 에마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비록 불행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심한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난 세인트 줄리엇으로 참회의 순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14년 2월, 74세의 하디는 자신의 비서인 플로렌스 덕데일과 재혼한다. 그녀는 후에 《토머스 하디 전기》를 집필한다. 그녀는 하디의 문학적 명성을 자랑스러워했고 그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으나 이 두 번째 결혼도 크게 행복한 편은 아니었다. 노년에 들어서도 하디는 시작(詩作) 활동을 계속했지만, 87세가 되던 해의 겨울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었다. 1928년 1월 11일, 하디는 플로렌스에게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시편을 읽어 달라고 부탁해 이를 듣고선 밤 9시경 사망했다.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 심장은 도싯의 스틴스퍼드 교회에 있는 에마의 묘 옆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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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0년 프랑스 항구도시 디에프 근처 미로메닐 성城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별거 이후 에트르타에 있는 어머니의 별장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때 경험한 노르망디의 대자연, 시골 사람들의 성정과 습성 등은 그의 작품의 배경과 소재로 자주 나타난다. 고등학교 시절, 작가로서의 삶에 사표가 된 두 명의 스승, 시인 루이 부예와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만난다. 1869년부터 파리 법과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지만, 이듬해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대에 징집되어 학업을 중단한다. 1871년 7월에 제대하여 1872년 3월 아버지의 소개로 해군성에 취직한다. 1880년 모파상은 에밀 졸라 등과 함께 소설집 『메당의 저녁Les Soirees de Medan』을 출판하고, 여기 수록된 「비곗덩어리」가 프랑스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90년까지 10년 동안 300여 편에 이르는 중·단편과 6편의 장편, 5편의 희곡 등을 창작하며 플로베르, 졸라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10년은 육체와 정신의 병이 심각하게 나빠진 시기로, 그는 척추 통증과 시력 저하, 불면증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몇 번의 자살 기도 이후 1892년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보내진 뒤 그곳에서 거의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1893년 7월 6일 생을 마감했다. 사진출처 -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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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하이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30년 저명한 언어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고전어 및 게르만어, 로망어 문헌학을 공부했으며 가이벨과 함께 뮌헨 작가그룹의 중심 역할을 했다. '매 이론'을 통해 소설에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극적인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미적 이상에 근거한 유려한 언어 구사로 독일 근대소설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단편소설에서 재능을 발휘하였고, 19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카프리섬에서의 결혼>, <고집장이 아가씨>, <쥐들도 밤에는 잠을 잔다>(공저), <민들레꽃의 살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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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18년 11월 9일 러시아 오룔 지방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이러한 경험은 인간 심리와 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포착하는 그의 문학 세계에 깊게 스며들었다. 모스크바대학 문학부와 페테르부르크대학 철학부에서 공부한 뒤 독일 베를린대학으로 건너가 철학과 역사, 고전어를 익혔다. 귀국 이후 그는 문학평론가 벨린스키와 교류하며 창작 활동에 뛰어들었다. 농노들의 삶과 러시아 농촌의 풍경을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담아낸 《사냥꾼의 수기》(1852)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으로, 러시아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장편소설 《루진》(1856), 《귀족의 보금자리》(1859), 《전야》(1860), 《아버지와 아들》(1862), 《연기》(1867) 등을 잇따라 발표했으며, 〈첫사랑〉 〈아샤〉 〈봄 물결〉 같은 중·단편소설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남겼다. 절제된 문체와 섬세한 감정선, 자연을 바라보는 서정적인 시선은 투르게네프 문학의 핵심으로 꼽힌다. 1843년 오페라 가수 폴리나 비아르도를 만난 이후 평생 특별한 관계를 이어갔으며, 186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활동했다. 플로베르, 모파상, 에밀 졸라 등 유럽 문인들과 교류하며 러시아 문학을 서구에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유럽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은 러시아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1883년 9월 3일 프랑스 부지발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유해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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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아무런 주관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중략) 그녀는 저 혼자 생각으로는 어떤 결론도 내릴 수가 없었다. 아마 1000루블을 줄 테니 말해보라고 해도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 '귀여운 여인' 중에서


아가씨는 훤하게 먼동이 터서 별들이 해쓱하게 빛을 잃을 때까지 꼼짝 않고 그대로 기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잠든 얼굴을 지켜보며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나는 가슴이 설레었지만 오로지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게 해주는 그 맑은 밤하늘의 신성한 보호를 받으며 어디까지나 성스럽고 순결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 '별' 중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뒤 평생 동안 그토록 끔찍이 사랑했던 남자에게 전해 달라면서 모아두었던 돈 전부를 내게 맡겼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제대로 입지도 않은 채 일만 한 그녀가 오로지 그를 위해 모은 돈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죽은 후 그가 적어도 한번쯤은 자신을 생각해주리라 믿고 돈을 모았던 것입니다. - '의자 고치는 여자' 중에서


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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