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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의 살해

민들레꽃의 살해

(독일대표단편선)

아르투어 슈니츨러, 요한 페터 헤벨, 토마스 만, 파울 하이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알프레트 되블린 (지은이), 김재혁 (옮긴이)
현대문학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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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의 살해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민들레꽃의 살해 (독일대표단편선)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72753346
· 쪽수 : 395쪽
· 출판일 : 2005-10-17

책 소개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6인의 중단편 모음집이다. 알프레드 되브린, 토마스 만, 파울 하이제 등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데뷔작을 비롯하여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모아 엮었다. 수록된 소설들의 발표 시기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이다.

목차

어떤 이별 - 아르투어 슈니츨러
민들레꽃의 살해 - 알프레트 되블린
예기치 않았던 재회 - 요한 페터 헤벨
사랑 또는 타락 - 토마스 만
꿈의 노벨레 - 아르투어 슈니츨러
칠레의 지진 -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라라비아타 - 파울 하이제

옮긴이의 글

저자소개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62년 5월 15일 유대인 후두 전문의 요한 슈니츨러와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루이제 슈니츨러의 아들로 빈 프라터가에서 태어났다. 1879∼1884년 빈 대학에서 의학을 수학하고 1885년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친교를 나누면서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간다. 1886년부터 1893년까지 빈의 여러 병원에서 보조 의사로 근무했다. 작품 활동 초기인 1890년부터 1899년까지 후고 폰 호프만스탈과 함께 ‘빈 모더니즘’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 슈니츨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사회상과 세기말 현상을 비판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부친이 사망한 뒤 전업 작가가 되어 단막극 연작 〈아나톨〉을 비롯해 단편 〈죽음〉(1894), 단막극 〈사랑의 유희〉(1895)를 연이어 발표한다. 1897년에는 열 개의 대화로 구성된 단막 연작 〈윤무〉를 발표하지만 검열로 인해 공연 금지 처분을 받는다. 이어 단편 〈죽은 자는 말이 없다〉를 발표했다. 1899년부터 작품 활동 중기에 해당되는 1921년까지, 슈니츨러는 심리학적 주제뿐만 아니라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다룬 극작품을 다수 집필했다. 〈초록 앵무새〉(1899), 소설 《구스틀 소위》(1900)가 이 시기 대표작이다. 1903년 여배우 올가 구스만과 결혼한다. 1908년 첫 장편 《트인 데로 가는 길》을 집필한다. 이 작품에서 빈 사회를 살아가는 유대인 정체성 문제를 다루었다. 1911년 발표된 유일한 희비극 〈광활한 땅〉은 슈니츨러 극작품 중 공연 측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바로 뒤이어 발표된 〈베른하르디 교수〉(1912)는 반유대주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5막 희극으로, 검열법에 따라 빈이 아닌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다. 이혼 이후 슈니츨러는 심리적 고립감과 건강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한동안 세기말 개인의 운명을 심리학적으로 묘사한 단편들을 포함 소설 집필에 주력한다. 1923년에는 오스트리아 펜(PEN) 클럽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뒤이어 소설 《엘제 양》(1924), 소설 《꿈의 노벨레》(1925)를 연이어 발표한다. 1926년 슈니츨러는 부르크극장의 명예 반지를 받는다. 1928년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장편 소설 《테레제. 여성의 삶의 연대기》를 발표한다. 1931년 10월 21일 빈에서 뇌출혈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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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페터 헤벨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독일의 서남부 바덴 지방에서 태어났다. 신학을 공부하고 개신교의 목사가 되었다. 서른이 넘어 김나지움의 교사가 되어 종교뿐만 아니라 과학교과도 가르쳤다. 나중에는 교장을 역임하였다. 목사로서는 바덴공국의 신교 최고직에 올랐다. 고등학교 재임시에 당시 성경을 제외하고서는 유일한 서민들의 읽을거리기도 했던 달력을 제작하면서 거기에 자신이 쓴 글들을 발표하였는데 그것들이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 나중에 그 이야기들을 모아《 라인 지방 가정의 벗의 보석 상자》라는 책으로 발표하였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독일의 남녀노소가 애독하는 책이 되었고, 그 이야기 형식은 달력이야기라는 독특한 문학 장르가 되었다. 헤벨은 이 책과 자기가 평생 살았던 지방의 사투리로 쓴 한 권의 시집만으로 독일문학사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가 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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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평론가. 독일 북부의 뤼베크에서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기말의 암울한 데카당스 분위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일찍부터 문학,?예술,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았다. 1891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보험회사에서 잠시 근무했고, 뮌헨으로 이사 가 1933년까지 살았다. 이때부터 집필 활동을 시작했고,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 등에 심취했다. 1898년 단편집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발표하고, 1901년 《부덴브로크가》를 출간하여 작가로서 자리를 잡는다. 이어 1903년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등을 집필한다. 1905년에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그해에 장녀 에리카 만을 얻는다. 1911년에는 휴양지에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서거 소식을 듣고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발표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8년 10월에 600쪽이 넘는 방대한 논문집 《비정치적인 사람의 관찰》을 완성하는데, 여기서 그는 세계대전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다. 그러나 차츰 이러한 경향에서 멀어져 나중에는 민주주의와 시민계급을 옹호했고, 이러한 세계관이 반영된 대작 《마의 산》을 1924년 발표, 소설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으며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1933년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난과 위대함’이라는 제목으로 국외 강연 여행 도중 히틀러의 집권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껴 귀국을 포기한다. 이후 스위스에서 《요셉과 그 형제들》을 집필하여 1943년에 4부작을 완성한다. 1936년에는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1938년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보내는데, 여러 강연과 연설로 바쁜 와중에도 1947년 음악과 독일에 관한 소설이라 할 만한 《파우스트 박사》를 내놓는다. 1952년 미국에서 스위스로 거처를 옮기고 3년 후인 1955년 취리히에서 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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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하이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30년 저명한 언어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고전어 및 게르만어, 로망어 문헌학을 공부했으며 가이벨과 함께 뮌헨 작가그룹의 중심 역할을 했다. '매 이론'을 통해 소설에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극적인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미적 이상에 근거한 유려한 언어 구사로 독일 근대소설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단편소설에서 재능을 발휘하였고, 19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카프리섬에서의 결혼>, <고집장이 아가씨>, <쥐들도 밤에는 잠을 잔다>(공저), <민들레꽃의 살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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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77년 폴란드 국경과 접한 독일의 소도시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더에서 태어났다. 1788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베를린의 위그노파(프랑스의 신교)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유서 깊은 군인 집안에서 클라이스트 또한 군인이 되어야 할 운명이었지만 1799년에 그는 군인의 길을 포기한다. 클라이스트는 프랑스의 근대화, 나폴레옹군의 독일 지배, 프로이센의 개혁 등 “이런 변화무쌍한 시기”에 국가에 대한 의무, 가문과 신분에 의한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인간으로서의 행복, 인생의 목표를 추구했다. 결과적으로 별다른 직업이 없었던 클라이스트는 파혼까지 겪은 후 ‘위기의 작가’가 된다. 1807년 낭만주의자들과 협업한 예술잡지 ≪푀부스≫, 1810년 시사적인 신문 ≪베를린 석간≫의 편집자와 발행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재정난은 가중되어 갔다. 드라마 작가, 단편 작가, 저널리스트로서의 시도는 모두 실패와 좌절로 이어졌고, 삶의 방향과 목표를 상실한 클라이스트는 1811년 34세라는 나이에 베를린 근교의 반제 호수에서 불치병을 앓던 유부녀 헨리에테 포겔과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10년 남짓한 창작 기간에 수편의 드라마와 소설을 썼지만 클라이스트 생전에 무대에 오른 작품은 <깨어진 항아리>뿐이었고 단편도 자신이 창간한 잡지를 통해 발표되는 정도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클라이이스트의 작품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그가 남긴 8편의 단편과 8편의 드라마는 오늘날 독일어권 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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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되블린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8년 독일 슈테틴(현재 폴란드 슈체친)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888년에 베를린으로 이주, 베를린 대학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그 후 유대인 출신의 정신과 의사로서 2차 세계 대전 동안 질곡의 세월을 겪었다. 나치의 등장으로 1933년 취리히를 거쳐 파리로 망명하여 시민권을 얻었으나 1940년 미국으로 다시 망명했다. 전쟁이 끝난 뒤 1945년에는 프랑스 군정부의 문화 고문 자격으로 독일로 돌아왔으나 1953년 4월 다시 파리로 이주했다. 강렬한 문체로 내면의 신비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꾼 첫 소설 『왕룬의 세 번의 도약』(1915)으로 폰타네 상을 받았고, 이후 『발렌슈타인』(1920)을 거쳐 대도시 현실을 내적 독백과 몽타주 기법으로 담아낸 대표작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1929)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문학적 역량을 보여 주었다. 1954년에 마인츠 예술원 문학상을 수상했다. 마지막 작품 『햄릿 또는 기나긴 밤은 끝났다』(1956)에서는 군국주의를 통렬히 비판하였다. 말년에 독일로 돌아와 요양소에서 지내다가 1957년 6월에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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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대학에서 수학했으며,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릴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독일 튀빙겐대학 방문 교수를 역임했다. 1994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내 사는 아름다운 동굴에 달이 진다』, 『아버지의 도장』, 『딴생각』이 있다. 저서로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릴케의 시적 방랑과 유럽 여행』, 『서정시의 미학』 등이 있다. 『노래의 책』, 『넙치』, 『푸른 꽃』,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파우스트』,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 『두이노의 비가』 외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고려대학교 독문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핵심교양 ‘한국시 속에 살아 있는 독일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서정시학상을 수상했으며, 국제릴케학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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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는 그 꽃을 상대로 끊임없이 그와 같은 게릴라전을 벌였다. 그는 끊임없이 죽음의 고통과 황홀경 사이를 넘나들었다. 그는 가끔 귓전에 들려오는 듯한 그 꽃의 분노에 찬 절규를 불안스레 즐겼다. 그는 날마다 새로운 술책을 생각해냈다. 그는 몹시 흥분한 모습으로 사무실에서 돌아와 그의 방에 칩거할 때가 많았다. 그것은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새로운 술책을 꾸미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이 전쟁은 은밀하게 진행되었으며,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본문 68쪽, '민들레꽃의 살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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