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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결혼

너대니얼 호손, 서머싯 몸, 아르투어 슈니츨러,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토머스 하디, 기 드 모파상, 파울 하이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은이), 김난령, 유영미, 권일영, 정숙현, 차원호, 김서연, 국세라 (옮긴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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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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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결혼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92037976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12-05-01

책 소개

주제별로 엮은 세계 문호들의 중.단편 선집 '테마명작관' 시리즈 4권 '결혼' 편. 대부분의 세계문학전집이 작가의 대표작 장편 위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시리즈는 각권의 주제를 설정하여 그에 맞는 동서양의 고전 명작들을 골라 싣고 있다. 같은 주제이지만 시대적.공간적 배경이 다른 여러 작품들을 골라 읽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거장들의 문학세계까지 접할 수 있다.

목차

열두 번째 결혼(서머싯 몸)
고집쟁이 아가씨(파울 하이제)
가을(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혼례식의 조종 소리(너대니얼 호손)
아내를 위해서라면(토머스 하디)
첫눈(모파상)
사랑스러운 여인(체호프)
죽은 자는 말이 없다(아르투어 슈니츨러)

저자소개

너새니얼 호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04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 마을에서 태어났다. 친가 쪽에서는 엄격함과 침울함을 이어받았고, 외가 쪽에서는 실무 능력과 유머 감각을 물려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1837년까지 12년 동안 모친의 집에 와서 직업도 갖지 않은 채 독서와 창작 수습에만 전념했다. 이때도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로 고독과 명상과 독서 속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는 예민한 감수성과 회의적인 성격으로 인해 더욱더 인간의 내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서 그는 인간 본성 속의 신성을 믿으면서도 죄악의 검은 동굴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았다. 이에 따라 나중에 많은 단편소설들과 일련의 로맨스들을 통해서 죄인들의 우화와 지성과 자연적 감정의 갈등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어느 사회에나 있는 인간 심리와 인간 고뇌에 대한 그의 명철한 인식을 보게 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최초의 소설 《팬쇼(Fanshawe)》를 익명으로 자비출판 했으나 만족스럽지 못해 곧 모두 회수해 파기해 버렸다. 이후 한동안 단편소설의 창작에만 전념했다. 1837년에 당시까지 발표된 단편소설 36편 가운데 18편을 한데 묶어 《진부한 이야기들(Twice-Told Tales)》이란 제명의 단편집을 본명을 사용해 최초로 내놓았다. 이어 1846년에 두 번째 단편집 《구목사관의 이끼(Mosses from an Old Manse)》를 출간했다. 여기에 실린 첫 작품인 〈구목사관(The Old Manse)〉은 그의 진귀한 자전적 에세이이고, 이 밖에 유명한 〈젊은 굿맨 브라운(Young Goodman Brown)〉, 〈모반(The Birth-Mark)〉, 〈라파치니의 딸(Rappaccini's Daughter)〉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1852년에는 단편집 《눈의 이미지와 다른 진부한 이야기들(The Snow-Image, and Other Twice-Told Tales)》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1832년에 발표한 〈사자의 부인(The Wives of the Dead)〉, 〈내 친척 몰리뉴 소령(My Kinsman, Major Molineux)〉 외에도 1850년의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 〈이선 브랜드(Ethan Brand)〉 등이 실렸다. 호손은 저명한 문인들과 활발하게 교제를 했을 뿐 아니라 정치계에도 본의 아니게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1839년부터 2년 동안 보스턴 세관의 계량관으로서 소금과 석탄의 중량을 다는 일을 담당했다. 1846년에는 세일럼 세관에 수입품 검사관으로 임용되었다. 그러나 1848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휘그당이 승리를 차지하고, 다음 해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민주당원이었던 호손은 일종의 정치 보복으로 세관에서 해고당했다. 세관을 그만두고 나서 곧 《주홍 글자》의 집필에 착수했다. 성공적인 《주홍 글자》의 여세를 몰아 1851년 버크셔 체재 중에 집필한 《일곱 박공의 집(The House of the Seven Gables)》을 간행했고, 이어서 1852년에는 《블라이드데일 로맨스(The Blithedale Romance)》를 출간했다. 1853년 영국의 리버풀 영사에 임명되었다. 1853~1856년의 영국 체재 중의 기록을 담은 《영국 노트북(The English Notebooks)》은 그의 다른 노트북 이상으로 아주 상세하고 의미가 깊다. 이어서 1857~1859년에는 로마와 플로렌스에서 생활했다. 특히 플로렌스에서는 영국의 시인 브라우닝 부부(Robert and Elizabeth Barrett Browning)와 친교를 나눌 수 있었다. 이 기간의 생활은 《이탈리아 노트북(The Italian Notebooks)》에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 후 호손은 귀국해 다시 콩코드에 정착했다. 1860년에 그의 마지막 장편 로맨스인 《대리석 목양신(The Marble Faun)》을 미국과 영국에서 출간했다. 이 작품은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다. 1864년에 호손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5월 11일 피어스와 함께 뉴햄프셔(New Hampshire) 여행길에 나섰다가 5월 19일 밤에 플리머스(Plymouth)의 한 여관에서 잠자던 중 사망했다. 5월 23일 호손은 늦봄의 화사한 햇빛과 신록의 훈풍 속에 뉴잉글랜드의 저명한 문인들인 롱펠로, 홈스, 필즈, 에머슨 등이 19세기 미국 문학의 실질적인 대가를 잃고 망연자실한 가운데 콩코드의 한 묘지에 조용히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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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 (지은이)    정보 더보기
파리 주재 영국 대사관 고문 변호사의 아들로 파리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어머니가 죽고 2년 뒤에 아버지마저 죽자, 영국으로 건너가 목사인 삼촌 손에 자랐다. 한동안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한 뒤 런던의 의과대학에 입학해 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1897년 첫 소설 《램버스의 라이자》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용기를 내 전업 작가가 되었다. 계속해서 소설, 희곡 등을 쓰다가 1907~1908년 희곡 네 편이 런던의 극장 네 곳에서 동시에 상연되면서 이름을 떨쳤다. 1915년 1차 세계대전 직전에 완성한 《인간의 굴레》는 작가가 고독한 청소년 시절을 거쳐 유미주의적 인생관을 확립하기까지 정신적 발자취를 더듬은 자서전적 대작이었으나 출간 당시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의 유미주의적 태도는 1919년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달과 6펜스》에서 더욱 뚜렷해졌고, 이 소설로 작가로서 위상을 확립했다. 그 외에도 대표작으로 《과자와 맥주》, 《극장》, 《면도날》 등과 단편집 《나뭇잎의 하늘거림》, 희곡 〈프레더릭 부인〉, 〈순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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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62년 5월 15일 유대인 후두 전문의 요한 슈니츨러와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루이제 슈니츨러의 아들로 빈 프라터가에서 태어났다. 1879∼1884년 빈 대학에서 의학을 수학하고 1885년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친교를 나누면서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간다. 1886년부터 1893년까지 빈의 여러 병원에서 보조 의사로 근무했다. 작품 활동 초기인 1890년부터 1899년까지 후고 폰 호프만스탈과 함께 ‘빈 모더니즘’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 슈니츨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사회상과 세기말 현상을 비판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부친이 사망한 뒤 전업 작가가 되어 단막극 연작 〈아나톨〉을 비롯해 단편 〈죽음〉(1894), 단막극 〈사랑의 유희〉(1895)를 연이어 발표한다. 1897년에는 열 개의 대화로 구성된 단막 연작 〈윤무〉를 발표하지만 검열로 인해 공연 금지 처분을 받는다. 이어 단편 〈죽은 자는 말이 없다〉를 발표했다. 1899년부터 작품 활동 중기에 해당되는 1921년까지, 슈니츨러는 심리학적 주제뿐만 아니라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다룬 극작품을 다수 집필했다. 〈초록 앵무새〉(1899), 소설 《구스틀 소위》(1900)가 이 시기 대표작이다. 1903년 여배우 올가 구스만과 결혼한다. 1908년 첫 장편 《트인 데로 가는 길》을 집필한다. 이 작품에서 빈 사회를 살아가는 유대인 정체성 문제를 다루었다. 1911년 발표된 유일한 희비극 〈광활한 땅〉은 슈니츨러 극작품 중 공연 측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바로 뒤이어 발표된 〈베른하르디 교수〉(1912)는 반유대주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5막 희극으로, 검열법에 따라 빈이 아닌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다. 이혼 이후 슈니츨러는 심리적 고립감과 건강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한동안 세기말 개인의 운명을 심리학적으로 묘사한 단편들을 포함 소설 집필에 주력한다. 1923년에는 오스트리아 펜(PEN) 클럽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뒤이어 소설 《엘제 양》(1924), 소설 《꿈의 노벨레》(1925)를 연이어 발표한다. 1926년 슈니츨러는 부르크극장의 명예 반지를 받는다. 1928년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장편 소설 《테레제. 여성의 삶의 연대기》를 발표한다. 1931년 10월 21일 빈에서 뇌출혈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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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타간로그에서 출생했다. 잡화상의 아들로, 조부는 지주에게 돈을 주고 해방된 농노였다. 16세 때 아버지의 파산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서 중학 생활을 마쳤다. 1879년에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고, 그와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단편소설을 오락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1880년대 전반, 수년에 걸쳐 〈어느 관리의 죽음〉 <카멜레온> <하사관 프리시베예프〉 <슬픔〉 등과 같은 풍자와 유머, 애수가 담긴 뛰어난 단편을 많이 남겼다. 작가 그리고로비치의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가 담긴 편지에 감동하고 자각해 〈초원>을 썼다. 희곡 〈이바노프> <지루한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 지식인들의 우 울한 생활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1899년에 결핵 요양을 위하여 크림 반도의 얄타 교외로 옮겨 갈 때까지 단편소설 <결투> <검은 수사> <귀여운 여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골짜기> 등을 집필했다. 1896년 희곡 <갈매기>의 상연 실패는 그를 잠시 극작가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으나, <바냐 아저씨>를 써낸 이듬해인 1898년, 모스크바 예술 극단의 <갈매기> 상연은 성공적이었다. 1904년 병고 속에서도 <벚꽃 동산>을 집필해 상연하고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그해 요양지인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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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하디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다. 1840년 6월 2일 도체스터 근방 하이어보켐턴에서 석공인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국 남부의 웨섹스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그의 고향 도체스터를 모델로 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하디는 내성적이고 몸이 약했다. 학교에서 받은 공식 교육은 약 8년 동안의 이 기간이 전부다. 하디는 16세에 도체스터의 건축사무소에 수습공으로 들어가 건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16년간 지속했던 건축 일은 소설 쓰기와 함께 그의 중요한 경력이 되었다. 1867년 후반에 첫 소설인 《가난뱅이와 귀부인》을 썼다. 1870년 봄, 교회 건물의 복원 작업 문제로 콘월의 세인트 줄리엇으로 파견되는데, 그곳 목사관에서 에마 기퍼드를 만난다. 1874년에 에마와 결혼했다. 결혼 후 그는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고, 대표작 《테스》와 《무명의 주드》를 집필했다. 1893년, 하디 부부는 더블린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단편 소설 집필을 함께했던 작가 플로렌스 헤니커를 만난다. 하디의 시편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그녀에게 상당한 애정을 품게 된다. 당시 하디는 결혼 생활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아내 에마는 하디의 글쓰기에 많은 도움도 주었지만 에마는 변호사의 딸로서 자신이 하디보다 우월한 계급 출신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이러한 신분의 차이는 결국 그들의 불행한 결혼 생활의 원인이 되었다. 이혼을 쉽게 허용하지 않던 경직된 당대의 사회 현실 속에서,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은 《숲의 사람들》, 《무명의 주드》에서 심도 있게 형상화된다. 특히 하디의 《무명의 주드》는 사촌 간의 사랑을 다룬 것 때문에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소설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하디는 이 작품을 끝으로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시와 극작에 전념했다. 말년 30년간은 영예로운 일들이 많았다. 1910년에 국왕으로부터 공로 대훈장을 받았고, 1920년과 1925년에 각각 케임브리지대학과 옥스퍼드대학으로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애버딘·브리스틀대학 등에서도 명예 학위를 받았다. 1912년에 아내 에마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비록 불행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심한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난 세인트 줄리엇으로 참회의 순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14년 2월, 74세의 하디는 자신의 비서인 플로렌스 덕데일과 재혼한다. 그녀는 후에 《토머스 하디 전기》를 집필한다. 그녀는 하디의 문학적 명성을 자랑스러워했고 그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으나 이 두 번째 결혼도 크게 행복한 편은 아니었다. 노년에 들어서도 하디는 시작(詩作) 활동을 계속했지만, 87세가 되던 해의 겨울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었다. 1928년 1월 11일, 하디는 플로렌스에게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시편을 읽어 달라고 부탁해 이를 듣고선 밤 9시경 사망했다.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 심장은 도싯의 스틴스퍼드 교회에 있는 에마의 묘 옆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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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0년 프랑스 항구도시 디에프 근처 미로메닐 성城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별거 이후 에트르타에 있는 어머니의 별장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때 경험한 노르망디의 대자연, 시골 사람들의 성정과 습성 등은 그의 작품의 배경과 소재로 자주 나타난다. 고등학교 시절, 작가로서의 삶에 사표가 된 두 명의 스승, 시인 루이 부예와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만난다. 1869년부터 파리 법과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지만, 이듬해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대에 징집되어 학업을 중단한다. 1871년 7월에 제대하여 1872년 3월 아버지의 소개로 해군성에 취직한다. 1880년 모파상은 에밀 졸라 등과 함께 소설집 『메당의 저녁Les Soirees de Medan』을 출판하고, 여기 수록된 「비곗덩어리」가 프랑스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90년까지 10년 동안 300여 편에 이르는 중·단편과 6편의 장편, 5편의 희곡 등을 창작하며 플로베르, 졸라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10년은 육체와 정신의 병이 심각하게 나빠진 시기로, 그는 척추 통증과 시력 저하, 불면증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몇 번의 자살 기도 이후 1892년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보내진 뒤 그곳에서 거의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1893년 7월 6일 생을 마감했다. 사진출처 -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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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하이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30년 저명한 언어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고전어 및 게르만어, 로망어 문헌학을 공부했으며 가이벨과 함께 뮌헨 작가그룹의 중심 역할을 했다. '매 이론'을 통해 소설에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극적인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미적 이상에 근거한 유려한 언어 구사로 독일 근대소설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단편소설에서 재능을 발휘하였고, 19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카프리섬에서의 결혼>, <고집장이 아가씨>, <쥐들도 밤에는 잠을 잔다>(공저), <민들레꽃의 살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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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본의 소설가로 189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재학 당시 「노년」, 「라쇼몬」, 「코」를 발표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이중 「코」가 일본의 ‘국민 작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극찬을 받아 문단에 등단했으며,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들어갔다. 10년 남짓한 짧은 창작 기간에도 「라쇼몬」, 「덤불숲」, 「지옥변」, 「신들의 미소」, 「서방의 사람」, 「톱니바퀴」, 「갓파」 등에서 끊임없이 인간과 예술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만년에 이르러 신경쇠약, 불면증, 환각 증상을 보이다 1927년 7월 도쿄 자택에서 35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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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령 (옮긴이)    정보 더보기
글과 이미지의 매혹적인 만남을 탐구하는 번역가이자 그림책 연구가이다. 출판 기획자로 현장을 경험한 뒤 영국 런던 칼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LCC)에서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전과 현대 문학을 아우르는 문장을 우리말로 유려하게 옮기는 일에 전념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역서로 《마틸다》, 《크리스마스 캐럴》, 《마일로와 환상 요금소》, 《레몬나무의 바다》 등이 있다.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그림책이 지닌 예술적 가치를 전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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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미 (옮긴이)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동 도서에서부터 인문, 교양과학, 사회과학, 에세이, 기독교 도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부분과 전체》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가문비나무의 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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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중앙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지금은 다른 나라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하라 료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 《천사들의 탐정》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를 비롯해, 히가시노 게이고 《사소한 변화》, 미야베 미유키의 《낙원》, 가와이 간지의 《데드맨》 등을 옮겼다. 그 밖에도 오기와라 히로시, 아비코 다케마루, 유키 신이치로, 모리미 도미히코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존 딕슨 카가 쓴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등 영미권 작품도 우리말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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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현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프랑스 혁명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달력-영원한 시간의 파수꾼》,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 《르네상스-라루스 서양미술사2》, 《고전주의와 바로크-라루스 서양미술사3》, 《미켈란젤로-인간의 열정으로 신을 빚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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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호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강대학교 국제어문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언어학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와 종교 서적 출판기획인으로 활동중이며, 역서로는 <님 닮았다 하소서!>, <가톨릭 의료 윤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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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연 (옮긴이)    정보 더보기
단국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극동국립대학교에서 러시아어문학을 공부했다.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노문학을 전공했으며, 《빅토리야 토카레바 중·단편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번역전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토카레바 단편집》, 《눈사태》, 《계몽의 열매》, 《결혼》(공역), 《학교 출입 금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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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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