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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환경/생태문제 > 환경학 일반
· ISBN : 9788990809704
· 쪽수 : 212쪽
· 출판일 : 2015-04-28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정치생태학: 해방의 윤리
1. 자본주의로부터의 이탈은 이미 시작되었다
2. 정치생태학: 전문가정치와 자율규제 사이
3. 자동차의 사회적 이데올로기
4. 파괴적 성장과 생산적 탈성장
5. 세계적 위기, 탈성장,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기
6. 가치 없는 부, 부 없는 가치
옮긴이의 글
해제: 앙드레 고르스와 함께하는 행복한 ‘지적 여행’│강수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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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리뷰
책속에서
“지식경제는 공동화共同化와 무상無償의 경제여야 한다는, 즉 통상적인 경제와는 정반대되는 사명을 띱니다. 과학 분야에서 지식의 경제가 자발적으로 꿈꾸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일종의 ‘공산주의’입니다. 거기서 지식의‘가치’란 돈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만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얼마나 전파되는가로 측정됩니다. 그러므로 지식경제의 토대에는‘반反경제’가 있습니다. 반경제에서 상품, 상거래,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 등은 통하지 않습니다. 반경제에서는 교환가치가 부의 척도가 아니며, 노동시간 또한 부의 척도가 아닙니다.”(p.22)
“생산은 이제 더 이상 축적된 자본 전체의 가치 증식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축적된 자본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금융자본의 형태를 띠게 된다. 오로지 다양한 형태의 돈만을 사고팔면서 돈 버는 기술을 끊임없이 세련화하는 금융산업이 번창한다. 금융산업이 점점 더 무모해지고 점점 더 통제 불가능해지는 금융시장을 조작하여 생산하는 유일한 상품은 바로 돈 자체다. 금융산업이 흡수하고 관리하는 자본 덩어리는 실물경제의 자본 덩어리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크다.”(p.31)
“투기를 비난하고, 조세회피처를 나무라고, 금융산업, 특히 헤지펀드의 불투명성과 규제의 부족을 탓해보아야 소용없다. 불황의 위협, 나아가 세계경제에 무겁게 드리우는 붕괴의 위협은 규제가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재생불능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오로지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허구적 토대 위에서만 지속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투기거품이 낳는 허구적 이윤을 세금 등을 통해 재분배하려 한다면 이는 오히려 금융산업이 피하고자 하는 바, 즉 막대한 규모의 금융자산의 가치 저하와 은행 체계의 붕괴를 앞당기는 꼴이 될 것이다.”(p.33)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남겨놓은 자리라고는, 한편으로는 자본에 복무하여 보상받는 기능적 노동의 자리,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에 복무하는 소비를 위한 자리뿐이었다. 이제 사회적 개인이란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 지급 받는 월급과 구매하는 상품에 동시에 의존하는 자본의 ‘고객’으로만 규정된다. 개인은 자기가 소비하는 것들 중 어떤 것도 생산해서는 안 되며 자기가 생산하는 것들 중 어떤 것도 소비해서는 안 된다.”(p.72)
“경제적 합리성이 다른 모든 형태의 합리성 위에서 군림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자본주의는 삶의 절멸에까지 이르게 되며, 그리하여 자본주의 자체도 절멸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의미를 지닌다면, 그 의미는 오직 자기 자신을 제거할 조건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p.78)
“자동차의 역설은 이렇다. 겉보기에 자동차는 그 주인에게 무한한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 자동차 덕분에 차 주인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기차와 같거나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자율성의 이면에는 근본적 의존이 도사리고 있다. 말이나 수레나 자전거를 탄 사람과 달리 자동차를 탄 사람은 에너지 공급을 위해, 그리고 조금만 파손되어도 수리를 위해 기화기, 윤활장치, 조명, 표준 부속품의 교환, 이런 분야들의 전문가와 상인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의 옛날 주인들과는 달리 자동차 주인은 형식상으로는 자기 소유인 차에 대해 소유자 즉 주인으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사용자, 또는 소비자로서의 관계를 갖게 된다.”(p.86)
“자본주의는 이런 식으로 낭비를 부추겨 소비량을 (그리고 생산량을) 어마어마하게 늘림으로써, 점점 더 거대해지는 자본으로부터 수익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재화량이 증대했지만, 종종 소비자에게 이는 사기나 다름없었다. 동일한 사용가치를 누리기 위해서 좀 더 큰 규모의 재화량을 어쩔수없이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p.104)
“파괴는 부의 원천으로 나타난다. 부서지고 폐기되고 내다버린 모든 것은 대체되어야 하고, 따라서 생산과 상품 판매, 화폐유통, 이윤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물건들이 깨지고 닳고 구식이 되고 폐기되는 속도가 빠를수록 국민총생산은 증대할 것이고, 국가회계 상으로는 우리가 부유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심지어 신체적 상해와 질병도 약과 의료 서비스 소비를 증가시키는 한 부의 원천으로 잡힐 것이다.”(p.112)
“투기거품은 매번 언젠가는 가라앉게 되어 있고 결국에는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나타난 실체 없는 금융자산을 부채로 만들어버린다. 곧바로 그 뒤를 이어 새로운, 보다 더 커다란 거품이 형성되지 않는 한 거품이 꺼지면 당연히 줄도산이 이어지고, 결국에는 세계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몰고 온다.”(p.128)
“자본주의에서, 생산된 것은 그것이 이윤을 내는 한에서만 중요하다. 노동력 판매자로서의 우리에게는, 생산된 것은 그것이 고용을 창출하고 임금을 나눠주는 한 중요하다. 노동자와 자본은 구조적 공모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양쪽 모두에게 결정적 목표는 돈을,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양쪽 모두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 수단이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늘 좀 더 많이’,‘ 늘 좀 더 빨리’라는 내재적 구속에 얽매인다.”(p.131)
“생존소득(요즘 많이 논의되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개념?옮긴이) 요구는 이런 맥락에 비추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목적은 돈과 상품의 사회를 영속시키려는 것도 아니요, 이른바 선진국의 소비모델을 반복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목적은 실업자나 고용불안정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팔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버그만의 말을 따르자면, ‘인간의 활동을 고용의 독재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pp.174~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