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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깨달음

참나 깨달음

(라마나 마하리쉬의 생애와 가르침)

바가반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 (지은이), 김병채 (옮긴이)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18,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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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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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참나 깨달음 (라마나 마하리쉬의 생애와 가르침)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명상/선
· ISBN : 9788991596481
· 쪽수 : 380쪽
· 출판일 : 2015-12-15

책 소개

인도의 성자들 4권. 띠루반나말라이의 성산을 흠모한 성자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생애와 가르침을 엮은 책이다.

목차

1. 이 분은 누구인가?
2. 가족 특징
3. 세 사람 중 누가
4. 여명의 일견
5. 새로 태어나다.
6. 루비콘 강을 건너다.
7. 작별의 편지
8. 아버지를 찾아서 집을 떠나다
9. 아버지의 발아래에
10. 몇 년간의 힘든 생활
11. 드디어 행방을 찾다
12. 산 위의 빛
13. 스와미와 책으로 배운 지식
14. A. 쉬바쁘라까삼 삘라이와 스와미
15. 가나빠띠 샤스뜨리와 스와미
16. M.V. 라마스와미 아이어, 에짜말, 라가바짜리
17. F.H. 험프레이즈와 스와미
18. F.H. 험프레이즈에게 준 가르침
19. '사두들'로부터 받은 성가심
20. 다시 가족들과 함께
21. 라마나 마하리쉬와 세샤드리스와미
22. 아쉬람에 일어난 강도
23. 친구 동물들
24. 기리쁘라닥쉬남, 성산 일주 순례
25. 스와미와 함께한 아쉬람의 하루
26. 아쉬람에서의 명상
27. 나따나난다 스와미, 요가 라미아와 후기 제자들
28. 서구로부터 온 헌신자
29. 서구로부터 온 헌신자 - 계속
S.S. 코헨이 쓴 에필로그

저자소개

라마나 마하리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는 1879년 12월 30일 남인도 티루출리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죽음이라는 문제를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다. 1896년 7월에 그는 갑자기 찾아온 매우 강력한 죽음의 공표를 경험하는 과정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늘 깨달음의 상태에 있었다. 1896년 9월 1일, 그는 아루나찰라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그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인 라마나스라맘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는 여생의 마지막ᄁᆞ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메시지를 말과 침묵으로 가르치다가 1950년 4월 14일 마하 사마디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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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크리슈나다스) (옮긴이)    정보 더보기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포항이다. 197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다수의 직업을 거친 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였다. 마음의 행복 이상의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윗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신을 만나면 그것이 충족될 것 같았다.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신을 보는 삶을 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 회사 생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더 확신을 갖기 위하여 믿음이 가는 수녀님에게 물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물론입니다.” 충남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생활했다. 덕산 성당 신부님으로부터 신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다. 신을 위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신을 만나고픈 열정이 더 강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 지내다 제주도로 가서 약 2년간 생활하였다. 주로 서귀포에서 살았다. 자유로운 생활은 했지만 찾고자 했던 행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모한 생활을 시도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앞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강원도로 가서 장터의 상인이 되고자 하는 계획을 하였다. 그때 너무나 놀랍게도 대학의 친구가 제주시 삼도동의 나의 주소지로 찾아왔다. 그는 제주시의 나의 주소를 모른다. 어떻게 물어 찾아왔다. “지도교수님께서 오라신다.” 너무나 고마운 두 분이다. 특히 나의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은인이다. 부산으로 가서 대학교 강사 생활을 몇 년 했다. 몇 년 뒤 창원에 있는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가르치다가 명상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송광사 주위의 암자에 기거하기도 하였다. 법정 스님에게 제자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기도 하였다. 성당 고해소 신부님에게 물었다. “신이 어디에 계십니까?” “산과 들에 있지요.” 세상에 산과 들이 얼마나 많은 데, 어느 산 어느 들 말입니까? 1988년 말 붓다가 태어난 곳인 인도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뉴델리에 기거하면서 슈리 오로빈도 아쉬람에 자주 갔다. 그곳의 한 이방인에게 길을 물었다. “제가 어디로 가면 좋습니까?” “알란디로 가세요.” 알란디의 숙소의 관리인께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지하의 서고로 안내되었다. 책을 한 권 꺼내 드니 나에게 내밀었다. 갸네쉬바리 성자가 쓴 바가바드 기타였다. 처음으로 바가바드 기타와 마주했다. 켈커타에서 마더 데레사의 축복을 받기도 했다. 비파사나 아카데미에서 명상을 배웠다. 마음을 붙잡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내가 묘한 상태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윗입술 위에 집중했다. 전적으로 집중하자 명상하는 자가 사라지고 그곳의 세포가 살아 움직였다. 숨을 내쉬자 세포가 산 같이 커졌다. 들이쉬자 산이 없어졌다. 이 신기한 현상에 온통 몰입되었다. 그때는 오전이었다. 오후 명상 시간에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하자마자 곧 거대한 산이 있다가 없다가 하다가 드디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상자는 사라졌다. 광활한 빛의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엑스터시의 바다에 빠졌다. 너무나 놀란 나는 그곳의 성자분께 달려가 물었다. “그것은 사마디입니다.” 그 당시에는 영성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 누구나 명상을 한다면 이 경험을 한다고 알고 곧 잊어버렸다. 봄베이의 한 요가 연구소에서 외국풍의 연구원에게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을 물었다.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아루나찰라 산입니다. 거기에 라마나 아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고요만이 있었다. 그곳으로 순례를 온 구루와 한 무리의 제자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곳들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진리에 이른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곳에서 한 달가량 머물렀다. 깨닫는 것을 다음의 생애들로 미루어야 될 것 같았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북인도의 갠지스 강가인 하리드와르로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 파파지를 만나러 갔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요지는 마음이 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앞에 계시 든 분이 사라졌다. 방이 사라졌다. 질문하고 있던 본인이 사라졌다. 이 현상계를 완전히 벗어났다. 빛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 같은 것만 거기에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는 모른다. 이 현상계에 돌아오자 방이 보였다. 앞에 스승님이 보이셨다. 질문하는 내가 의식되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찾을 것이 더 없습니다.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 붓다라는 말은 자신의 바탕을 안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자신의 바탕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누구나 붓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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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는 띠루반나말라이의 성산을 흠모하는 위대한 성자,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책의 서문을 쓰도록 요청받게 된 것을 나에게 부여된 매우 귀한 특혜라고 여긴다. 신의 섭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영적 하늘에 빛나는 별로 반짝이면서 쉴 곳 없는 낙담한 나그네를 영원하고 참된 행복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런 성자와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행운이었다.
인류의 대다수가 이 환영의 세상이라는 유령에 현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만족감 하에서 그 유령을 붙잡으려고 하는 그들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늘 그들이 염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만년에 가서야 비로소 그들은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면서 실재가 없는 그림자를 쫒아 다닌 것에 대해 후회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 위대한 성자의 생애와 귀감은 우리에게 세상의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함정들에 대한 경고를 하고 영성의 안전한 길로 접어들게 하는 빛나는 횃불의 역할을 한다. 사람을 강하게 끄는 그의 영향력은 하나의 은총이다. 그의 간단한 말 한 마디가 때로는 의심이라는 두터운 구름을 거두어내고, 무거운 가슴은 그의 짤막한 말로 가벼워지며, 심지어 난해한 철학의 얽히고설킨 수수께끼도 그의 직관의 샘으로부터 나오는 간단한 설명으로 만족스럽게 해결이 된다.
영적인 영광으로 가득한 이 살아 있는 기념비의 분명한 메시지에 얼마나 느리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이 성자가 이루었던 것을 깨닫고자 진정으로 시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 지를 보았을 때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의 진화는 오늘날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앞서 있었기 때문에, 그는 영적 의식의 초월적 세계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때 그의 육체적 몸과 감각은 진정한 내면의 참나를 깨닫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물질적 세상의 환영은 더 이상 모든 현상들의 토대를 숨기고 있는 베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투명한 매체이었다. 최고의 사기꾼인 마음은 그에게 있어 유순하고 충성스러운 하인이다. 그가 특히 즐겨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늘 그대 자신의 참나 속으로 물러나십시오.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생각의 거미줄을 엮어내는 그 근원을 찾으십시오. 일어나는 생각들을 무시하십시오. 생각의 뿌리에 집중하십시오. 그 고요와 평온 속에서 휴식하십시오. 그대의 노력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경험과 내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그것은 말로 된 설명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희열의 거처에 도달한 자는 거의 없었다. 이 성스러운 성자가 우리의 시선을 끄는 또 하나의 주옥같은 영적인 진리는 “비록 많은 이들이 행복은 외적 조건에만 달려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행복은 진정으로 내면의 태도이거나 마음에 대한 주관적인 깨달음입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행복을 위한 외적인 추구는 단지 ‘숨바꼭질’을 하는 게임일 것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변화하는 사건들이나 환경들에 대해 마음가짐을 현명하게 적응하여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수중에 있다고 말하곤 하였다. 물론 현명한 분별에 토대를 두고 있는 그러한 적응을 수련함으로써 많은 슬픔과 불행, 우울은 피할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참나 외부에 있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행복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희열이며 그러므로 영원하다.
‘나’를 아십시오,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삶의 문제를 다루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간단한 말이지만, 그것의 뜻은 많은 지식인들을 당혹하게 하였다. 여기서 다시 그는 단순한 지적인 탐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삶의 진정한 목적을 성취하려는 진지한 열망을 가지고 굽히지 않는 수행을 할 때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하였다. 그와 같은 위대한 영적인 사람들을 몽상적이고 비실제적인 것으로 비웃는 많은 회의론자들도 만약 이 성자를 찾아가서 그의 영적인 오라가 미치는 범위 내에서 상당한 시간 동안 머물러 있기만 하면 자신의 회의론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얼마 안 되는 제자들과 숭배자들이 들을 수 있었던 이 성자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그의 문답과 말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고, 대가답게 적절하고 명쾌한 문체로 이 책의 장들에서 그것을 구체화시킴으로써 현세대뿐만 아니라 후대에게도 유용한 도움을 준 이 책의 저자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하는 바이다. 내가 이 서문을 통하여 이 책의 저자가 젊은 시절에 마침 나의 급우이자 법조계의 동료라는 사실과,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모두 존중하고 있는 위대한 성자의 생애와 가르침을 다루고 있는 그의 책과 관련해서 우리의 옛 우정의 다시 이어졌다는 것을 말해도 부적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Sd.) K. 순다람 쩨띠, 대법원 판사


제5장 다시 태어나다

“너희들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산스끄리뜨)

“이 아뜨만은 베다의 암송으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며, 또한 명민한 지성이나 경전을 자주 들음으로써도 얻어질 수 없다. ‘그것’이 그를 선택해야 그는 ‘그것’을 얻는다. 아뜨만은 그에게‘그것의’ 형상을 드러낸다.”
- 까따 우빠니샤드.

벤까따라만의 삶에 찾아온 위기, 즉 그의 열의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고상한 깨달음과 이상에 대한 헌신의 삶으로 바꾸어준 위대한 일깨움은 1896년 중반기에 일어났다. 이때는 그가 17살 때였으며, 이 나이는 최대 다수의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전환”을 경험하였거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특히 자신의 이상과 성품의 변화들이 자기 억압에 항상 익숙해 있어 좀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지 않는 그런 내성적인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외부인들이 그 변화들을 알아차리기는 항상 어렵다. 벤까따라만이 이러한 유형에 속해 있어 심지어 그의 친구들이나 형제들에게도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자신의 말로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는 종종 그의 제자들로부터 그가 어떻게 변화를 겪게 되었는가를 질문 받았다. 다음은 대체로 “대체로substantially: 정확한 말은 기록되지 않았다. 보통 스와미는 매우 몰개성적으로 말한다. 그가 한 말속에는 ”나“ 혹은 ”당신“을 가리키는 어떤 분명하거나 뚜렷한 지시어가 거의 없다. 특히 따밀어의 특징은 그러한 몰개성적 말에 적합하며, 그는 일반적으로 따밀어로 말한다. 하지만 그의 말과 습관을 연구하는 사람은 대부분 숨겨져 있는 인칭 지시어를 찾아낸다. 그가 실제로 사용하는 말은 너무 색깔이 없고 모호하여, 많은 독자들, 특히 서구적 유형의 독자들에게는 적합하거나 호소력이 없을지 모른다. 따라서 여기서는 뚜렷한 인칭대명사가 있는 통상적인 어법을 사용한다.
그가 직접 말한 내용이다.
“내 삶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내가 마두라이를 영영 떠나기 약 6주전이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나는 삼촌댁 이층에 혼자 앉아있었습니다. 나의 건강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습니다. 나는 어떤 질병에도 좀처럼 걸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매우 깊이 잠을 자는 사람이었습니다. 1891년 내가 딘디굴에 있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자고 있던 방 근처로 몰려들어 나를 깨우기 위해 소리치고 고함지르고 방문을 두드렸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들이 결국 방안으로 들어와 나를 격렬하게 흔들었을 때야 비로소 나는 나의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러한 깊은 잠은 오히려 건강이 좋다는 증거였습니다. 나는 또한 밤에 갑자기 몽유병에 걸리기가 쉬웠습니다. 내가 깨어있을 때 나를 희롱하는 것을 두려워한 약삭빠른 나의 놀이친구들은 내가 잠들었을 때 와서 나를 깨워 운동장을 데리고 다니면서 나를 주먹으로 치고 때리고 하면서 데리고 놀다가 다시 나를 침대에 도로 데려다 놓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내내 나의 깨어있는 인물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온순함이나 겸손, 용서와 무저항의 태도로 그 모든 것을 견뎌내곤 했습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나는 밤에 겪었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갑작스러운 몽유병으로 인하여 나는 생활하기에 더 약해지거나 건강이 더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또 그것을 병으로도 거의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내가 혼자 앉아있었을 때 나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갑작스럽고 분명한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내가 곧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왜 그런 느낌을 가져야 했는지를 내 몸에서 느낀 어떤 것으로도 지금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때에도 나는 그것을 내 자신에게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두려움에 어떤 근거가 있는지를 일부러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내가 죽어가고 있구나.’하고 느꼈으며, 당장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의사나 선배나 심지어 친구들한테도 자문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스스로 그 문제를 풀어야한다고 그때 그 자리에서 즉시 느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충격은 즉시 나를 내성적, 즉 ‘내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말을 내뱉지 않고 마음속으로,‘이제 죽음이 다가왔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죽어가는 그것이 무엇인가? 이 몸은 죽는다.’라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즉시 죽는 장면을 연기했습니다. 나는 마치 사후 경직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사지를 뻗어 사지가 경직되었다고 생각습니다. 나는 나의 더 많은 조사에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하여 시체를 흉내 내었습니다. 숨을 멈추고 어떤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에 단단히 힘을 주어 입을 꽉 다물었습니다. “‘나’라는 단어나 다른 어떤 단어도 입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 다음엔?”하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이 몸은 죽었다. 그것은 경직된 상태로 화장터로 옮겨져 거기서 태워져 재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몸의 죽음과 더불어‘나’는 죽는가? 이 몸이‘나’인가? 이 몸은 활동하지 않고 생기가 없다. 하지만 나는 나란 존재의 완전한 힘을 느끼고 그리고 몸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내 자신 속의“나”란 소리마저도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영, 즉 몸을 초월해 있는 존재이다. 물질적인 몸은 죽지만 그 몸을 초월하고 있는 영혼은 죽음의 신도 건드릴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는 영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 과정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살아있는 진리로서, 즉 어떠한 이의도 없이 내가 바로 지각했던 어떤 것으로 내 앞에 생생하게 번개처럼 지나갔습니다. ‘나’는 매우 실재적인 어떤 것이었으며, 그 상태에서는 실재하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몸과 연관된 모든 의식 활동은 그것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나’혹은 나의 ‘참나’는 강력하게 나를 끄는 힘으로 주의의 초점을 잡고 있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때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참나 안으로의 몰입은 계속되었습니다. 다른 생각들은 음악의 다양한 음표들처럼 오가고 할 수 있을지라도, ‘나’는 다른 모든 음표들과 함께 어우러져 조화하는 근원적이고 토대가 되는 ‘스루띠’ 음표와 같이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몸이 말하거나, 책을 읽거나 어떤 다른 것에 관여하고 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나’에 중심이 모아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가 있기 이전에 나는 나 자신을 분명히 지각하지 못했으며, 의식적으로 그것에 끌리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하여 눈에 뜨이는 직접적인 흥미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하물며 그것에 머물고 싶은 어떤 항구적인 성향은 더욱 아닙니다. 이러한 새로운 습관의 결과는 나의 삶에서 곧 드러났습니다.
먼저 나는 친구, 친척, 학업 등의 외부적인 관계들에서 내가 가졌던 조금의 흥미마저도 잃었습니다. 나는 기계적으로 공부하였습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음을 형들에게 만족시켜주기 위하여 나는 책을 집어 펴두었지만, 나의 주의는 공부와 같은 그런 피상적인 문제들로부터 멀리 벗어난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친척, 친구 등과의 관계에서 나는 겸손, 온순함과 무관심을 발달시켰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아이들 가운데에서 내가 어떤 귀찮은 일을 맡게 되면, 나는 때때로 공정하지 못한 일의 분배에 대해 불평을 하곤 하였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나를 놀리면, 나는 맞받아 응수하고 때때로 그들을 위협하면서 나의 권리를 주장하였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놀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무례한 짓을 한다면 재빨리 그것이 그의 실수임을 인정토록 하곤 하였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변하였다. 떠맡게 된 귀찮은 모든 일, 모든 놀림, 모든 조롱을 유순하게 견디어 내었다. 화내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했던 옛날의 성격은 사라졌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스포츠 등을 하러 가는 것을 그만두었으며, 혼자 남아 있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종종 나는 특히 명상하기에 좋은 자세로 홀로 앉아서 눈을 감고, 나 자신이나 영, 나 자신을 구성하고 있던 흐름이나 힘(아베삼)에 온전히 몰입하는 집중에 열중하곤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나를 비웃고, 나를 야니(성자), 요기스와라(요기들의 신)라고 칭하면서 옛날의 리쉬들처럼 밀림의 숲으로 들어가라며 익살맞게 충고하곤 하였던 형의 지속적인 조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계속하였습니다.
음식에 대한 선호와 편식이 사라졌습니다. 내게 주어진 음식은 맛이 있든 없든, 신선한 것이든 상한 것이든, 나는 그것의 맛이나 냄새나 질에 무심한 채 삼키곤 하였습니다.
새로이 나타난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미낙시순다레스와라의 사원과 관련이 있었다. 이전에는 그곳에 가끔 갔으며, 친구들과 함께 가서 신상들을 보고 이마에 신성한 재와 주홍 색소를 바르고 어떤 뚜렷한 감동도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새로운 삶에 눈을 뜨고 난 이후, 나는 거의 매일 저녁 사원에 가곤하였습니다. 혼자 사원에 가서 쉬바 혹은 미낙시 혹은 나따라자 혹은 63명의 성자들의 성상 앞에 오랫동안 서 있곤 하였습니다. 나는 나를 압도하는 감동의 물결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몸을 지배하던 이전의 세력의 기반(아람바나)은 나의 영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이상 내가 몸(데아뜨마붓디)이라는 생각을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은 새로운 세력의 기반(아람바나)을 가지기를 갈망하였으며, 따라서 자주 사원을 방문하였고 영혼의 충만은 많은 눈물로 넘쳐흘렀습니다. 이것은 개별적인 영혼과 함께 하는 신(이슈와라)의 유희였습니다. 나는 우주의 통치자요 모두의 운명을 지배하는 신이며, 전지전능하고 편재하는 신인 이슈와라 앞에 서서, 나의 헌신이 깊어져서 63명의 성자들처럼 영원하도록 나에게 신의 은총을 내려달라고 기도하곤 하였다. 대개 나는 기도를 하지 않았지만, 내면의 심연의 것이 계속 흘러나와 바깥의 것으로 흘러들어가게 했습니다. 눈물은 이렇게 충만한 영혼이 넘쳐흐르는 표시였지, 쾌락이나 고통에 대한 어떤 특별한 감정을 나타내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염세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삶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으며 삶이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환생을 피하고픈 욕망도 없었으며 해방을 추구하거나 무집착(바이라기야)이나 구원을 얻고 싶은 욕망도 없었습니다. 나는 뻬리아뿌라남과 나의 성경수업과 그리고 약간의 따유마나바르나 혹은 떼바람 이외의 다른 책들은 전혀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신 (혹은 내가 무한하지만 개인적인 신이라고 부른 이슈와라)에 대한 나의 개념은 뿌라나들에 나와 있는 것과 유사하였습니다. 그때는 나는 브람만, 삼사라 등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의 근저에 하나의 본질이나 비개성적인 실재가 있다는 것과, 그리고 나 자신과 이슈와라 둘 다는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도 전혀 몰랐습니다. 띠루반나말라이에서 《리부 기따》와 다른 경전들을 들었을 때, 나는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으며 이러한 책들이 이전에 내가 분석이나 명칭도 없이 직관적으로 느꼈던 것을 분석하여 이름을 붙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전의 언어로 표현하면, 나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나의 정신적인 혹은 영적인 상태를 숫다 마나스 혹은 쁘라갸나(즉, 깨달은 이의 직관)로 설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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