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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2783521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11-10-19
책 소개
목차
01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집
이상한 의뢰인
사랑하는 여인에 바치는 인류 최대의 연시, 타지마할
문득 쓴 편지
신의 방정식
율도국 프로젝트
네티, 네티
상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장엄하는 장대비
인간의 둥지 위에 내린 눈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는 상처뿐
02 | 시와 바람과 구름이 사는 집
기러기를 보면 떠나고 싶다
과연 안국동은 어디인가?
부자들은 높은 언덕으로 간다
꽃잎 배접무늬 창호지
강이네 집
어떤 도시에 살 것인가
무한의 깊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세요?
도시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
서울이 아름다운 이유
가을의 신화, 생의 신비
03 | 시로 지은 집, 그림으로 그린 집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은 없다
내가 본 내 얼굴
시는 불온해야 한다
2B 연필
하늘 섬의 주민들
느티나무 아래에서의 축복
非웃음, 悲웃음, 卑웃음
습관과 원칙
사랑을 통해 발견하는 나의 죽음
사랑해
04 |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사는 집
예술가라는 직업
장식 마니아, 간판 마니아
삶이라는 예술
건축가의 꿈
헤매며 찾아가는 길
모든 여행은 순례다.
국경, 거듭되는 전생의 만남
행복, 웰빙, 만족에의 욕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아마도 샤 자한은 붉은 성에서 검은 대리석으로 지어졌어야 했을 타지마할 건너편의 풀숲을 바라보며, 상상의 건축을 했을 것이다. 나는 아그라의 붉은 성에서 타지마할의 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샤 자한의 무덤을 검은 대리석으로 지어주고 싶어졌다. 그 오랜 시간을 지나서…….
사랑과 정치, 죽음과 이별, 시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인간의 드라마. 그것이 건축의 언어이다. 그러나 아무나 강이 없었다면 타지마할도 없었을 것이고 샤 자한의 무덤도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 인간의 광기를 만든 것은 바로 자연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개별적으로 유일하다. 건축은 더욱 그렇다. 타지마할이 아름다운 이유는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무나 강의 풍경 속에 타지마할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그래서 항상 장소와 같이 한다. 타지마할을 황하에 옮겨 놓는 것은 무의미하다. 타지마할은 아무나 강변에 있어야 한다. 건축에는 이러한 필연성이 존재한다. 어디에 지어 놓아도 괜찮은 건축, 20세기의 모더니즘 건축은 그것을 지향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유일한 아름다움은 유일한 장소에 있다.
이것이 건축의 문법이다.
-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치는 인류 최대의 연시, 타지마할」중에서
추울 땐 따뜻하게 지내려 하고, 더울 땐 시원하게 지내려고 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건축 사이에는 마음이라는 강한 장벽이 서 있다. 이 벽을 느슨하게 직조해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도시는 더 많은 통제와 파괴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건축은 자본의 논리에 따른다. 자본이 지탱해 주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구조라도 쉬이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 건축의 속성이다. 그래서 현대 건축은 에덴동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에서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의 길은 욕망의 길이다. 사회주의가 인간이 가진 욕망의 길을 전체적인 매뉴얼로, 그에 따르는 사회의 통제로 조정하려고 했다면, 그리고 그 결과 실패했다면, 자본주의는 그 욕망의 방향이 바뀌는 날 실패하고 말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아우르는 제3의 길이란 없다. 문제는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욕망의 방향이다. 그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새로운 욕망 속에서 전혀 다른 마음의 진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욕망도 변하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적어도 희망은 아직도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이번엔 또 무슨 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는 상처뿐」중에서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알았고,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영원을 찾아 헤매는 긴 여정에 오른다. 그리고 영원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죽는다. 그것은 육체의 죽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꿈의 소멸이기도 하다. 인간은 꿈꿀 때만이 영원하다. 신은 우리의 꿈이고, 우리는 신의 꿈인 것이다.
가을 초입, 오랜만에 밖을 나서자 어느덧 지상의 것들이 쇠락해 가고 있는 징조가 보였다. 엔키두가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아마 가을이었을 것이다. 매년 맞는 계절이지만 왜 이렇게 낯선 것일까?
어느 해 가을, 나는 정말 작정하고 거리의 은행나무 하나를 콕 집어서 은행잎이 언제 노래지는지 관찰한 적이 있었다. 매일 은행나무 앞에서, 집의 창가에서, 은행나무 주위에서 담배를 피며 눈을 떼지 않았지만 그 실험은 실패하고 말았다. 어느 날, 창문을 열었을 때 그 은행나무는, 아니, 주변의 은행나무 모두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그 신비 앞에서 나는 그만 아득해지고 말았다.
어쩌면 신은 이미 우리에게도 영원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불로초를 먹은 뱀이 청춘의 상징이 되었듯이, 그러나 뱀도 끝내는 흙으로 돌아가듯이, 죽음을 포함한 끝없는 변화야말로 진정한 청춘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변화는 아이가 자라듯이 당연한 것이지만, 어느 날 아이가 자라듯이 신비로운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 신비를 눈치채고 있다면, 우리의 생도 매 순간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신비다.
-「가을의 신화, 생의 신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