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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93741421
· 쪽수 : 1053쪽
· 출판일 : 2024-09-27
책 소개
목차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식민지 비망록 1
제1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출몰하는 일제잔재들
01 서울 거리에 버젓이 남아 있는 조선총독들의 글씨 흔적들
- 식민통치자들의 휘호가 새겨진 정초석과 기념비의 잔존 상황
02 일제의 잔존 기념물 가운데 유독 사각뿔 모양이 많은 이유는?
- 사각주(四角柱)에 방추형(方錐形)인 일본군 묘비석 양식의 기원
03 일제잔재로 곧잘 오인되는 응원구호 ‘파이팅’의 어원 유래
- 투지(鬪志)의 유사어 투혼(鬪魂)이야말로 전형적인 군국주의식 용어
04 군부대 소재지를 일컬어 ‘〇〇대(臺)’라는 별칭이 생겨난 연유는?
- 1937년에 일본천황이 육군사관학교에 ‘상무대’로 하사한 것이 최초 용례
05 일제 때 ‘25주년’ 단위의 기념행사가 유달리 성행했던 이유는?
- 사반세기(四半世紀)라는 표현을 남겨놓은 그들의 언어습성
06 한강리(漢江里)가 느닷없이 한남정(漢南町, 한남동)으로 둔갑한 까닭
- 일제가 이 땅에 남겨놓은 고질적인 지명 왜곡의 몇 가지 사례들
제2부 참으로 고단했던 식민지의 일상
07 일제의 폭압정치를 상징하는 총독부 관리의 패검(佩劍)
- 한때 제복은 폐지되었으나 전시체제기에 ‘국민복’으로 부활
08 경성소방서의 망루에서 울리는 싸이렌 소리의 의미는?
- 소방출초식(消防出初式)으로 시작되던 일제 치하의 새해 풍경
09 일제의 대륙침략과 조선인 강제동원의 연결 창구,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 ‘현해의 여왕’으로 일컫던 금강환(金剛丸)과 흥안환(興安丸)의 흔적
10 병합기념일을 제치고 시정기념일이 그 자리를 차지한 까닭
- 일제강점기의 공휴일에는 어떤 날들이 포함되어 있었나?
11 4년 새 4.5배의 살인적인 담배값 인상이 자행되던 시절
- 조선총독부의 연초 전매에 얽힌 생활풍속사의 이면
12 일본천황에게 바쳐진 헌상품 행렬은 또 다른 지배종속의 징표
- 성환참외와 충주담배에서 호피(虎皮)와 비원자기(秘苑磁器)까지
제3부 잊혀진 항일의 현장을 찾아서
13 아무런 흔적도 없는 ‘안국동’ 이준 열사의 집터를 찾아서
- 헤이그특사의 출발지이자 최초의 부인상점이 있던 역사 공간
14 권총을 지닌 그는 왜 이완용을 칼로 찔렀을까?
- 이재명 의사의 정확한 의거장소에 대한 재검토
15 이토 특파대사가 탄 열차를 향해 돌을 던진 한국인의 항거 장면
- 술 취한 농민의 고약한 장난으로 치부된 원태우 투석 사건의 내막
16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17 통감부 판사였던 이시영 선생이 거소불명자가 된 까닭은?
- 한국병합기념장을 끝까지 수령하지 않았던 사람들
18 항일의 터전을 더럽힌 홍파동 홍난파 가옥의 내력
- 베델의 집터이자 신채호 선생의 조카딸이 살던 공간
제4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친일군상의 면면
19 이토 통감 일가족은 왜 한복을 입었을까?
- 조선귀족 이지용과 그의 부인 홍옥경(洪鈺卿)의 친일행적
20 뼛속까지 친일로 오염된 애국옹(愛國翁)들의 전성시대
- 일장기 밑에서 세상을 하직한 청주 노인 이원하(李元夏)의 추태
21 조선문화공로상(朝鮮文化功勞賞), 전시체제를 독려하는 교묘한 통치수단
- 유일한 조선인 수상자는 ‘신바라 카츠헤이(眞原昇平, 신용욱)’
22 죽어서도 호사를 누린 친일귀족들의 장례식 풍경
- 용산역전, 독립문 앞, 동대문 등은 영결식장으로 애용하던 공간
23 근대사의 현장마다 단골로 등장했던 어느 일본인 순사의 일생
- 『백범일지』에도 언급된 와타나베 타카지로(渡邊鷹次郞)의 행적
24 왜곡된 시선으로 근대 한국을 담아낸 무라카미사진관
- 통감부의 어용사진사로 출세한 무라카미 텐신(村上天眞)의 행적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식민지 비망록 2
제1부 혹독한 전시체제기의 나날들
01 대나무 철근과 콘크리트 선박을 아시나이까?
- 총체적인 전쟁물자의 수탈이 빚어낸 대용품(代用品)의 전성시대
02 서울 거리에 오백 마리의 제주 조랑말이 무더기로 출현한 까닭은?
- 전시체제기의 물자절약과 연료부족사태가 만들어낸 택시합승제도
03 총알도 막아낸다는 일제의 비밀병기, 센닌바리(千人針)
- 천 명의 남자들에게 글자를 받는 센닌리키(千人力)도 함께 성행
04 미영격멸을 구호삼아 달린 부여신궁과 조선신궁 간 대역전경주
- 징병제를 대비한 매일신보사의 조선청년 체력향상 프로젝트
05 일제패망기에 매달 8일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까닭
- 이른바 ‘대조봉대일(大詔奉戴日)’은 전시체제를 다잡는 날
06 거물면장(巨物面長), 말단행정을 옥죄는 전시체제의 비상수단
- 전직 도지사와 참여관들이 잇달아 면장 자리에 오른 까닭은?
제2부 침략전쟁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절
07 국세조사(國勢調査), 효율적인 식민통치와 전쟁수행을 위한 기초설계
- 전시체제기에는 병역법 실시와 배급통제를 위한 인구조사도 빈발
08 “금을 나라에 팔자”, 황금광 시대에도 금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 일제는 왜 금헌납과 금매각 독려에 그렇게 열을 올렸나?
09 총독부박물관이 오후 4시만 되면 문을 닫는 까닭은?
- 전쟁 따라 출렁이는 총독부 관리들의 출퇴근 시간 변천사
10 현수막(懸垂幕), 결전체제를 다잡는 또 하나의 전쟁무기
- 건물 외벽마다 시국표어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던 시절
11 병참기지 조선반도를 관통하여 달린 성화(聖火) 계주행렬의 정체는?
- 이세신궁에서 조선신궁으로 옮겨진 기원 2600년 봉축 불꽃
12 일제가 독려했던 또 다른 전쟁, 인구전쟁(人口戰爭)
- 해마다 자복가정표창(子福家庭表彰)이 이뤄지던 시절의 풍경
제3부 곳곳에 남아 있는 그들만의 기념물
13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언덕에 자리했던 순직경찰관초혼비
- 3.1만세운동 때 처단된 일본인 순사들을 위한 기념물
14 “덕은 봉의산만큼 높고, 은혜는 소양강만큼 깊도다”
- 세 곳에 남아 있는 ‘이범익 강원도지사 영세불망비’ 탐방기
15 일제가 인천항 부두에 세운 대륙침략의 ‘거룩한 자취’ 기념비
- 경성보도연맹 기관지에 수록된 ‘성적기념지주(聖蹟記念之柱)’의 건립과정
16 역대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이 잇달아 벽제관을 시찰한 까닭은?
- 사쿠라와 단풍나무 동산으로 구축한 그들만의 성지(聖地)
17 벽제관 후면 언덕에 솟아오른 ‘전적기념비’의 정체는?
- 침략전쟁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랐던 그들만의 기념물
18 내금강 만폭동 계곡에 아로새긴 친일귀족 민영휘 일가의 바위글씨
- 금강산 사진첩에 보이는 일제강점기 수난사의 몇 가지 흔적들
제4부 뒤틀어진 공간에 대한 해묵은 기억들
19 군대해산식이 거행된 옛 훈련원(訓鍊院) 일대의 공간해체과정
- 이 자리에 들어선 경성부민회장(京城府民會場)의 정체는?
20 일본 황태자의 결혼기념으로 세워진 경성운동장
- 하도감(下都監) 자리에 있던 정무사(靖武祠)의 건립 내력
21 의외의 공간에 출현한 저 비행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 조선일보사 옥상 위에 전용비행기를 올려놓았던 시절
22 식민지의 번화가를 밝히던 영란등(鈴蘭燈), 금속물 공출로 사라지다
- 파고다공원의 철대문과 조선총독부 청사의 철책도 그 대열에 포함
23 소설 「자유부인」에도 등장하는 중화요리점 ‘아서원’의 내력
- 역관 홍순언의 일화가 얽힌 ‘곤당골’ 지역의 공간변천사
24 ‘반민특위’ 표석은 왜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나?
- 반민특위 청사로 사용된 옛 제일은행 경성지점 자리의 공간 내력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식민지 비망록 3
제1부 그 시절에 횡행했던 식민통치기구의 면면
01 조선통치에 관한 사상 관측소, 총독부도서관의 건립 내력
- 도서관을 지어주고 광통관(廣通館)을 얻은 조선상업은행
02 인왕산 자락이 채석장으로 누더기가 된 까닭은?
- 쌈지공원으로 남은 총독부 착암공양성소와 발파연구소의 흔적
03 “일제에 끌려간 게 사람만이 아니었더라”
- 이출우검역소를 거쳐 일본으로 간 조선소는 160여만 마리
04 일제의 삼림수탈을 증언하는 영림창 제작 ‘압록강 재감(材鑑)’
- 지금도 경복궁 땅 밑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9,388개의 소나무 말뚝
05 식민통치기간에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일제 신사가 만들어졌을까?
- ‘1군 1신사(神社)’와 ‘1면 1신사(神祠)’의 건립을 강요하던 시절
06 흑석동 한강변 언덕 위에 한강신사가 건립된 까닭은?
- 서울 지역 곳곳에 포진한 일제 침략 신사들의 흔적
제2부 그 거리에 남겨진 식민지배의 흔적들
07 도로원표는 왜 칭경기념비전 앞에 놓여 있을까?
- 일제강점기에 모든 길은 ‘황토현광장’으로 통했다
08 독점기업 경성전기(京城電氣)의 마지못한 선물, 경성부민관
- 부민관폭파의거의 현장에 얽힌 근현대사의 굴곡 반세기
09 딱 100년 전 가을, 경복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 식민통치의 치적 자랑을 위해 벌인 난장판, ‘조선물산공진회’
10 기억해야 할 을사조약의 배후공간, 대관정(大觀亭)
- 호텔신축공사로 곧 사라질 위기에 놓인 근현대사의 현장
11 포방터시장으로 남은 홍제외리 조선보병대 사격장의 흔적
- 헌병보조원 출신 항일의병의 처형장소로도 사용된 공간
12 ‘천황즉위’기념으로 지은 일본인 사찰에 갇힌 명성황후의 위패
- 탁지부 청사와 화개동 감모비각을 옮겨 만든 묘심사(妙心寺)
제3부 낯선 풍경으로 남아 있는 근대역사의 공간들
13 일제가 경성(京城) 지역에만 두 곳의 감옥을 만든 까닭은?
- 장기수 전담감옥이었던 경성감옥 혹은 경성형무소의 건립 내력
14 ‘녹두장군’ 전봉준은 왜 좌감옥(左監獄)에서 최후를 맞이했을까?
- 근대시기 이후 사형제도의 변경과 처형장의 공간 변천사
15 행주산성이 내선일체의 대표 유적으로 지목된 까닭
- 군국주의와 황국신민화의 도구로 전락한 역사왜곡의 현장들
16 경학원 명륜당이 1937년 이후 느닷없이 혼례식장으로 변신한 까닭은?
- 정신작흥과 사회교화의 광풍 속에 탄생한 ‘의례준칙(儀禮準則)’
17 소개공지(疎開空地), 미군 공습에 기겁한 일제의 방어수단
- 결국 패망 직전 서울의 도시공간을 할퀴어 놓다
18 종로경찰서(鍾路警察署), 반도 민심의 근원을 차단하는 억압기구
- 다른 경찰서에 비해 빈번하게 청사의 위치를 옮긴 까닭은?
제4부 결국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19 위문대(慰問袋) 모집의 시초는 의병토벌 일본군대를 위한 것
- 친일귀족 이완용도 한몫 거든 위문품주머니의 제작 풍경
20 멀쩡했던 교가(校歌)와 교표(校標)가 무더기로 개정된 연유는?
- 조선어 가사는 금지되고 무궁화와 태극 문양은 지워지던 시절
21 군국주의에 짓밟혀 헝클어진 조선인 여학생들의 꿈
- 부산항공립고등여학교 졸업앨범, 1944년
22 마침내 조선인 학교에도 출현한 군사교련제도와 배속장교의 존재
- 미성년자 금주금연법과 삭발령도 학원통제의 수단으로 사용
23 일제패망기의 학교운동장이 고무공 천지로 변한 까닭은?
- 일본의 남방군(南方軍)이 보내온 침략전쟁의 전첩기념선물
24 학교이름에 도(道), 방위, 숫자 명칭의 흔적이 성행했던 시절
- 내선일체 완성을 위한 식민교육제도의 변경이 빚어낸 부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