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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정치비평/칼럼
· ISBN : 9788993854336
· 쪽수 : 405쪽
책 소개
목차
저자서문
제1장 민족반역의 길로 들어서다
친일파는 민족반역자를 말한다
친일파 제1호, 김인승
의열단의 ‘칠가살’과 ‘오파괴’
친일파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군수’도 친일파다
조선총독부 ‘장관급’에 오른 이진호와 엄창섭
을사늑약과 을사오적
정미7적과 경술국적
일제가 친일파에 안긴 선물, 귀족 작위
작위를 거절/반납한 사람들
신념을 넘어 직업이 돼버린 친일파
‘민족대표 33인’에서 친일로 변절한 3인
3.1만세의거를 폄훼한 배족의 무리
제2장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무심코 쓰는 잘못된 역사 용어들
일왕의 대리권자 조선총독 8인
기원절, 천장절 그리고 황국신민의 서사
내선일체, 팔굉일우 그리고 대동아공영권
창씨개명, 조선인의 혼을 빼앗다
성을 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창씨개명으로 ‘황국신민’이 되다
창씨개명 제1호, 친일 승려 이동인
조선총독도 반대한 현영섭의 ‘조선어 전폐론’
이영근, 일본인이 되지 못하면 죽을 달라
‘일선통혼’을 외친 박남규
영덕 갑부 문명기와 ‘가미다나 보급운동’
제3장 뼛속까지 친일파로 살다
허수아비 감투, 중추원 참의
일제의 특혜로 성장한 친일 기업인
두 아들을 지원병과 학도병으로 팔아먹은 조병상
일제의 주구, 고등계 형사
일제 땐 항일투사 고문, 독재 땐 민주투사 고문
일제의 ‘여우’ 밀정
사명당 비석을 네 조각 낸 친일 승려 변설호
신사참배에 앞장 선 친일 목사들
조선인 유일의 ‘신직’, 이산연
국모 살해 가담,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
한일병탄의 숨은 공로자, 이인직
친일파 김홍집을 ‘애국자’라 부르는 까닭
동학군 접주에서 친일파로 전락한 이용구
제4장 대한민국은 친일공화국이다
역대 대통령/국무총리의 친일 전력
역대 각료/정치인들의 친일 전력
부자/형제, 대를 이어 충견이 되다
친일 세도가, 윤보선 가문
배정자와 여성 친일파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
친일파, 국립묘지에 눕다
친일파가 심사하고 수상한 3.1문화상
낯 두꺼운 작태, 친일파 기념상
친일파 동상을 고꾸라뜨리다
제5장 친일파는 살아 있다
황군 장교, 반민법정에서 면죄부 받다
간도특설대 출신, 반공주의자로 둔갑하다
전쟁영웅으로 미화된 친일파 백선엽
박정희는 친일파 선정에서 왜 빠졌나
학도병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다
만주 벌판을 누빈 친일 거두 12인
만주 관료 인맥의 요람, 대동학원과 건국대
재일 친일 거두 2인, 박춘금과 이기동
일제의 나팔수가 된 친일 언론인
《동아》와 《조선》, 민족지의 탈을 쓰다
방응모와 김성수 그리고 홍진기
‘항일 언론인’ 장지연, 서훈이 취소된 까닭
프랑스는 나치 언론인을 어떻게 청산했나
제6장 친일 청산, 역사의 숙명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의 다양한 논의들
반민법, 우여곡절 끝에 제정되다
반민특위 검거 제1호, 친일 기업인 박흥식
반민법정에서 누가, 어떤 처벌을 받았나
‘당연범’ 김연수는 어떻게 무죄판결을 받았나
이승만과 친일 세력, 반민특위를 와해시키다
‘제2의 반민특위’, 친일규명위는 뭘 했나
국민과 함께 만든 《친일인명사전》
친일재산조사위, 친일파 토지 환수하다
제7장 친일 청산, 기록하는 자와 변명하는 자
임종국, 친일 연구에 평생을 바치다
친일파 연구의 주요 저작들
구차한 친일 변명/변호론
춘원 이광수의 변명, ‘홍제원 목욕론’
역사와 국가 앞에 참회한 친일파들
친일파 후손들은 책임이 없을까
고당과 인촌의 학병 권유 글, 조작일까 변명일까
이병기와 정지용의 친일 시 한 편
‘교사’였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속죄한 김남식
대한민국 극우/보수의 뿌리는 친일파
제8장 우리는 부끄럽고, 그들은 부럽다
북한, 친일 청산 우리보다 잘했다
중국, 신속한 재판으로 ‘한간’ 청산
프랑스, 나치 청산의 모범이 되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광수와 김문집을 능가할 정도로 친일이 농후한 창씨개명의 사례가 또 있다. 일제 경찰의 경시(현 총경) 출신으로 중추원 참의를 지낸 최지환(崔志煥)은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富士山)과 ‘정한론자’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이름을 따서 ‘후지야마다카모리’(富士隆盛)로 창씨개명을 하였다 또 ‘불놀이’로 유명한 시인 주요한(朱耀翰)은 일제의 황도(皇道) 정신인 ‘팔굉일우’를 따서 ‘마쓰무라고이치’(松村紘一)로 창씨개명을 하였으며 친일 승려 출신으로 현 조계종의 종조(宗祖) 격인 이종욱(李鍾郁)은 일본 근위 내각의 외무대신 히로다(廣田弘毅)의 성을 본따 ‘히로다쇼이쿠’(廣田鍾郁)로 창씨했다 ‘일선통혼’을 주장한 박남규朴南圭는 ‘대일본제국의 진짜 신하’라는 의미에서 ‘오오토모사네오미’(大朝實臣)로 창씨를 하기도 했다. - 98?99쪽에서
신사참배는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천도교 등 다른 종교에도 적용되었으나 상대적으로 마찰은 적었다. 반면 기독교는 교계 전체가 동참했던 만큼 갈등과 후유증이 컸다.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일부 교계 지도자들은 해방 후 배척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계는 신사참배에 동참한 사실에 대해 제대로 참회하지 않았다. 개인 차원에서는 한경직 목사가 1992년에 템풀턴 상 수상 축하 행사 때 인사말을 통해 자신의 신사참배를 회개한 바 있다. 또 2006년에는 소장파 목회자들이 결성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한 일과 독재정권 시절에 권력층과 야합해 정의를 뒤엎기도 한 죄악에 대해 마음을 찢으며 참회한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교단 차원에서는 여태 공식적인 참회가 없었다. - 159쪽에서
3.1문화재단은 2011년 3월 1일 제52회 3.1문화상을 시상했는데, 시상 분야는 학술·예술·기술·특별상 등 모두 네 분야였다. 수상자는 학술상에 김두철(63) 고등과학원 원장, 예술상에 서예가 조수호(87) 예술원 회원, 기술상에 김문한(81) 서울대 명예교수, 그리고 특별상은 조선일보사가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김두철 원장은 30년 동안 통계물리학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로 한국 물리학의 위상을 높인 공로로, 서예가 조 화백은 우리 서예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린 공로로, 김 명예교수는 건설 분야 신기술·신공법을 개척한 공로로, 또 특별상을 받은 조선일보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수령마다 정론직필로 3.1운동의 정신적 본질을 고취하는 데 진력했다”고 밝혔다(동아일보사는 2008년 제49회 시상식 때 특별상을 수상했다). 일제 말기 친일 보도는 물론 평소 보수 편향 보도로 논란이 돼온 《조선》《동아》에 3.1문화상 특별상을 준 것은 논란의 소지가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