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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뮈스

에라스뮈스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요한 하위징아 (지은이), 이종인 (옮긴이)
연암서가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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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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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에라스뮈스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사상가/인문학자
· ISBN : 9788994054421
· 쪽수 : 472쪽
· 출판일 : 2013-08-20

책 소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자 문화사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요한 하위징아가 중세의 대표적인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뮈스를 다룬 평전이 연암서가에서 출간되었다.

목차

옮긴이의 말
서문: G. N. 클라크

제1장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1466-88)
탄생의 시대적 배경 | 데보티오 모데르나 운동 | 에라스뮈스의 가계와 사생아로 탄생 | 에라스뮈스라는 이름의 유래 | 수도원에 들어간 에라스뮈스 형제

제2장 스테인 수도원(1488-95)
스테인 수도원에서 사귄 친구들 | 라틴어에 몰두하며 시인을 꿈꾸다 | 신부 서임 | 실의 속의 면학

제3장 파리 대학교(1495-99)
15세기 말의 파리 지성계 | 스콜라주의에 대한 반감 | 로베르 가갱과의 만남 | 고단한 문필가 생활

제4장 최초의 영국 체류(1499-1500)
존 콜렛과 토머스 모어 | 에라스뮈스의 유머 감각 | 문학에서 신학으로 관심이 확대되다 | 도버 세관에서의 봉변 | 연속되는 고난과 궁핍

제5장 휴머니스트 저자인 에라스뮈스
출세작 『격언집』 | 고전 숭상에 대한 현대인의 의문 | 에라스뮈스가 라틴어로 집필한 이유 | 조국에 대한 양가감정 | 네덜란드 정체성에 기여한 부르고뉴 문화

제6장 신학적 열망(1501)
히에로니무스 편집과 그리스어 공부 | 『기독교 전사를 위한 지침서』 | 기독교의 진정한 가르침 | 순수한 신학의 회복

제7장 루뱅, 파리, 두 번째 영국 체류
루뱅 방문과 파리 귀환 | 로렌초 발라의 신약성경 주석 | 두 번째 영국 체류 | 말 탄 사람의 노래

제8장 이탈리아 체류(1506-09)
토리노와 볼로냐 방문 | 베네치아의 인쇄소 | 인쇄술의 혜택과 피해 | 로마 방문과 헨리 8세의 등극

제9장 『우신 예찬』
모리아이 엔코미움 | 둘케 데시페레 인 로코 | 크레타인의 역설 | 어리석음은 인생의 치료약 | 『우신 예찬』을 관통하는 두 가지 주제 | 모어의 재담과 라블레의 풍자 | 『우신 예찬』은 에라스뮈스의 대표작이며 최고 걸작

제10장 세 번째 영국 체류(1509-14)
메세나를 찾아다니는 불안정한 생활 | 조세 바디우스와 요하네스 프로벤 | 1510년대의 유럽 상황 | 전쟁에 반대하는 에라스뮈스

제11장 신학의 빛(1514-16)
스테인 수도원의 귀환 명령 | 바젤의 인쇄소 | 히에로니무스 편집과 신약성경 주석 | 『기독교 군주의 교육』 | 수도자 서원을 풀어 준 교황청의 관면장 | 점점 높아지는 국제적 명성 | 편지의 역할과 기능 | 에라스미아니의 출현

제12장 에라스뮈스의 사상 1
형식에 대한 혐오증 | 고전 사상과 기독교 정신의 융합 |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 | 에라스뮈스의 문장론 | 언어, 윤리, 미학 | 자연 회귀 사상

제13장 에라스뮈스의 사상 2
성경적 휴머니즘 | 불가타에 대한 입장 | 레나스켄티아와 르네상스 | 사상의 의도와 표현의 형식 | 놀이와 진지함의 경계선상

제14장 에라스뮈스의 성품
질병에 대한 공포 |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 | 기질과 확신의 위험한 융합 자기중심적이고 은둔자적인 심성 | 친구들을 의심하는 성격 |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에라스뮈스 | 남의 거짓과 나의 거짓 | 남을 판단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제15장 루뱅 대학 시절
내일 또 내일 | 신앙과 학문 | 신학자들과의 논쟁 |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반격 | 학문과 교리의 상충 | 보나이 리터라이에 대한 음모

제16장 종교개혁의 초창기
면죄부의 판매 | 루터의 95개조 | 소인 에라스뮈스와 대인 에라스뮈스 | 조정자 역할의 포기 | 두 세력의 협력 강요 | 보름스 제국의회

제17장 바젤 시절
개인적 도덕과 정신적 계몽 | 너무 순진한 정치사상 | 기독교 문헌의 편집과 번역 | 동시대인들을 조롱한 『대화집』 | 울리히 폰 후텐과의 논쟁

제18장 루터와의 논쟁과 짙어지는 보수 색채
에라스뮈스와 루터의 논쟁 | 자유 의지론과 예정론 |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지지하다 | 교회의 예식에 관한 의견 차이 | 종교개혁의 배후로 의심받다

제19장 휴머니스트와 종교개혁가들과의 전쟁(1528-29)
순수 기독교 정신을 위한 라틴어 | 키케로니아누스에 대한 비판 | 바젤 시의 상황 변화6 | 바젤에서 프라이부르크로 이주 | 종교개혁에서 멀어지다 | 재세례파의 정신적 아버지

제20장 에라스뮈스의 말년
1530년대의 시대 상황 | 만년의 저서 『설교론』 | 토머스 모어의 죽음 | 파울루스 3세의 종교회의 소집 | 에라스뮈스의 마지막 논문

제21장 결론
에라스뮈스에 대한 부정적 평가 | 에라스뮈스에 대한 긍정적 평가 | 종교와 정치에 미친 영향

인명·용어 풀이
해설: 둘케 데시페레 인 로코
에라스뮈스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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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요한 하위징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2년 12월 17일 네덜란드의 북부 지방 도시인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무렵 흐로닝언에 들어온 카니발 행렬을 보고서 그 광경에 매료되어 평생을 의례, 축제, 놀이 연구에 주력하였다. 부친은 흐로닝언 대학의 생리학 교수였다. 흐로닝언 대학 네덜란드 어문학과에 입학한 하위징아는 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히브리 어, 아랍 어, 산스크리스트 어의 연구에 심취하였고 점차 비교언어학으로 기울어 라이프치히에 유학하기도 하였다. 『호모 루덴스』에도 나타나듯 문학과 예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조예는 그가 다양한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그는 1897년에 학위를 받은 뒤에는 생계를 위해 하를렘 고등학교에 역사 교사로 부임하였다. 그 뒤 흐로닝언 대학에서 고대 인도 문화사와 종교사 연구로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고, 점차 연구 중심을 역사학에서 서구 중세사에 두게 되었다. 1905년에는 은사이며 역사학자인 P. J. 블로크의 도움으로 흐로닝언 대학의 역사 교수가 되었다. 1915년에는 레이던 대학의 일반 역사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1940년 그 대학이 독일군의 점령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그곳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나치를 비판함으로써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1942년 석방되어 가족의 면허조차 금지된 데스테흐의 작은 시골집에서 1945년 2월 1일에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하를렘의 기원들』(1905), 『흐로닝언 대학의 역사』(1914), 『중세의 가을』(1919), 『에라스뮈스와 종교 개혁의 시대』(1924), 『얀 베트의 생애와 저작』(1927), 『호모 루덴스』(193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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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전업 번역가로서 30여 년 동안 200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문학을 위해 죽다》, 《번역은 글쓰기다》, 《전문번역가로 가는 길》, 《지하철 헌화가》, 《살면서 마주한 고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축약 번역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비롯해 《로마와 페르시아》, 《피렌체 사람들 이야기》, 《도미니언》,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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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홀란트에서도 가장 분지인 로테르담과 호우다는 물이 많은 지역이며 두 도시 사이의 거리는 12마일이다. 이들은 조그마한 도시로서 규모로 따진다면 도르트레히트, 하를렘, 레이던, 급속히 부상하는 암스테르담의 다음 순서였다. 두 도시는 문화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에라스뮈스는 1466년(추정) 10월 27일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것이 그의 가계와 친척들에게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다. 에라스뮈스는 자신의 사생아 탄생 사실을 나중에 알았던 것 같다. 출생의 오점에 대해서 아주 예민했기 때문에 그 비밀을 공개하기보다는 감추려고 더 애를 썼다.


주교 밑에서 근무하는 것은 결국 실망스러운 일로 판명되었다. 에라스뮈스는 베르겐, 브뤼셀, 메흘린 등지로 관저를 빈번히 옮겨 다니는 주교를 수행했다. 주교는 아주 바빴으나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지는 알 수가 없었다.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의 소망인 로마 여행은 성사되지 않았다. 주교는 처음 몇 달 동안에는 에라스뮈스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 주었으나, 그 후에는 기대한 것만큼의 배려가 없었다. 그리하여 에라스뮈스는 다시 우울한 심리상태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예전 활기를 모두 빼앗아 버린 운명을 가리켜 “아주 가혹한 운명”이라고 말했다. 공부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는 친구 빌렘을 부러워했다. 그는 스테인의 작은 암자에서 ‘행운의 별빛’ 아래에서 아름다운 시를 쓰면서 보내고 있을 것이 아닌가. 에라스뮈스는 눈물을 흘리며 한숨을 쉴 일 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은 너무나 무감각해지고, 또 가슴도 식어 버려서 예전의 공부는 더 이상 그를 매혹시키지 못했다.


에라스뮈스가 파리 행을 결심한 주된 목적은 신학박사 학위를 따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에라스뮈스로서는 그리 어려운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수사修士로서 수도원에서의 학력이 인정되어 문과대학에서의 사전 학습은 면제되었고, 게다가 그의 학식, 놀라운 지능, 부지런함 덕분에 단시일 내에 시험과 논문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파리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는 중간에 다른 곳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1499년까지의 파리 체류는 고통과 분노의 시기였다. 학자 생활에 필수적으로 따라다니는 가난과 그 가난을 이겨내기 위하여 부끄러운 생계 수단(가정교사 혹은 잡문 쓰기)으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고통의 시기였다. 그렇지만 앞날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빛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어려움을 겪게 된 첫 번째 원인은 신체적인 것이었다. 그는 몽테귀 대학에서의 가혹한 생활환경을 이겨내지 못했다. 썩은 계란과 지저분한 침대는 평생 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곳의 가혹한 환경 때문에 말년에 허약한 체질로 고생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대화집』에서 그는 스탄동크의 금욕, 고행, 단련하는 제도를 혐오스럽게 여기는 논평을 했다. 그는 이곳에 1496년 봄까지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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