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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범죄문제
· ISBN : 9788994963136
· 쪽수 : 266쪽
· 출판일 : 2011-10-05
책 소개
목차
인터뷰이 문국진의 들어가는 말
프롤로그 | 법의학에 비친 음란성과 선정성
1장 | 1981년, 첫 만남
달이 밝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윤 노파 사건에서 문국진을 처음 만나다
얼룩이 진다, 1982년 2월
2장 | 법의학과 기묘한 사건들
구스타프 클림트를 거쳐 '알마'를 만나다
법의학, 그건 학문도 아니야
법의학은 인권을 위한 학문이다
'새튼이'와 '지상아'
"하마터면 도끼에 찍혀 죽을 뻔했디!"
사람은 꽃이다, 부드럽게 대하라!
설경구와 페니실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다
완전범죄와 우연한 방패
지능적인 범죄
캐스퍼의 부패법칙
3장 | 책을 부검하다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죽음
왜 로마군은 예수의 오른쪽 가슴을 찔렀을까?
빈센트 반 고흐, 자살인가 타살인가
엉덩이와 발은 억울하다
에필로그 | '미수'를 전부 다룰 수는 없었다
참고자료 목록
리뷰
책속에서
프롤로그
이처럼 범죄수사가 과학수사 방식으로 바뀌도록 사회적인 공감대를 만드는 데 〈CSI〉의 역할이 무척 컸을 것이다. 가끔 선정성과 음란성으로 비난받는 바로 그 범죄수사 드라마가 오히려 인권 유린의 가능성을 대폭 줄이는 데 기여한 것이다. 마치 음란한 연애소설이 프랑스혁명과 인권선언의 배경을 만들어주었듯이 말이다. 한국에서도 그런 드라마가 책으로 나온 적이 있다. 26년 전 문국진 박사가 쓴 《새튼이》와 《지상아》가 그것이다. 일반인이 법의학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이 책은 법의학 이론이 아니라 법의학으로 풀어낸 강력 사건 이야기다. 이 두 권의 책은 단턴이 프랑스혁명의 배경에 있었다고 말한 루소의 《신엘로이즈》만큼이나 한국 사회에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는 동시대 사람들이 마음속에 법의학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_19쪽
1장 1981년, 첫 만남
“나중에 알게 된 건데요. 문국진 박사는 1955년, 그러니까 한국에 국과수가 독립기관으로서 업무를 시작한 바로 그해에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고, 곧바로 법의관이 됐어요. 놀라운 인연이죠. 그러고 법의학을 바탕으로 한 증거재판주의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애썼어요. 그런 문국진 박사의 활약은 법조계에서 잘 알려졌다고 해요. 그리고 1970년부터는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법의학을 널리 알리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으니,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기미가 보일 때가 된 거죠. 모르긴 해도 김헌무도 문국진 박사에게서 법의학에 대해 강의를 들었을 겁니다. 문 박사는 1977년부터 법무연수원에서도 법의학 강의를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문 박사는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판결을 내리곤 하던 야만적인 관행을 깨뜨리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숨은 공로자인 셈이죠._51~52쪽
“고문이 왜 시작됐겠어요? 좀 거칠게 보면, 수사관이 보기에 범인이 자백을 하지 않으니 고문을 한 거 아니겠어요? 문제는 수사관의 심증이 틀릴 때도 많고, 그래서 사람을 잡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거죠. 법의학적인 감정을 통해 범인의 자백 없이도 범행을 재구성하고 증명할 수 있다면, 고문의 필요성은 없어지는 거지요. 그러니까 증거재판주의를 제대로 실천하려면 법의학에 바탕을 두어야만 하는 거 아니겠어요. 문 박사가 말했듯이, 법의학은 그 사회의 하층민이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을 막아주고, 지배층의 범행을 제대로 드러내주는 거잖아요. 고문이라는 것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배층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진 않았을 겁니다.”_52쪽
2장 법의학과 기묘한 사건들
“나는 그만 이 말에 홀딱 반해버렸디요. 인간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뛰는 거요. 이 책을 읽고 나는 법의학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알아보기 시작했디요. 서울대학교가 경성제국대학이었던 시절에는 법의학교실이 있었어요. 그 당시의 법의학교실 현판이 그때도 남아 있었거든요. 그 현판은 지금도 의과대학 구건물에 있어요. 아마 돌에 새겨서 건물에 붙박아놓은 것이라 떼어내지 못했던 것 같아. 그러던 것이 해방 뒤에 없어진 거요. 의학 교육이 미국식으로 바뀌면서 그렇게 되었디. 그 당시 한국의 시찰단이 미국에 가서 보니까, 의과대학에 법의학교실이 없었던 거요. 그런데 그 시찰단은 미국의 제도를 몰랐던 거디요. 미국에서는 대학 단위로 법의학교실을 두고 있지 않았거든. 그걸 모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의과대학에서 법의학교실을 모두 없애버린 거요. 그래서 한국이 법의학의 불모지가 되고 말았디.”_75쪽
“새튼이 무당이라고 자칭하는 여인이 사람들 앞에서 새튼이와 대화를 하면서 점을 치는데, 새튼이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린다는 거요. ‘쏵- 쏵-’ 하는 소리가 말이요. 그런데 이 무당이 고위층 부인들을 상대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다가 수사 대상이 된 거요. … 호기심도 생기고 해서 수사관이 알려준 새튼이 무당집엘 가봤어요. … 그때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디. 새튼이 소리가 그 무당이 바라보는 방향으로만 나는 거요. 그래서 고성능 마이크를 사방에 장치한 다음 무당과 대화하게 해서 녹음해보았디. 그랬더니 확실한 거요. 소리는 무당의 상반신에서 나오는 거였어. 그래서 무당의 상반신을 검사해보았디. 그래도 그런 소리가 날 만한 장치는 발견할 수가 없었어. 그러다가 우연히 이 무당의 치아 구조를 보게 되었는데, 위쪽 앞니 두 개 사이가 좌우로 유난히 많이 벌어져 있었디. 확인해보니 그 이상한 소리는 이빨의 틈새를 이용한 것이었어요.”(웃음)_101~102쪽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내가 하는 일에서 얼마나 보람이나 사명감을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하디요. 내가 국과수에 있을 때만 해도 법의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주 부족했어요. 경찰이나 검찰도 마찬가지였고. 수사관들은 법의관에게 정황을 설명해주면서 증거를 찾아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걸 내면서 답을 알아맞히나 보자는 식으로 테스트를 하려고 들었어요. 검사들도 그랬고. 부검을 해서 보고서를 보내면 읽어보지도 않고 부르는 거요. 그래서 가보면 한두 시간 기다리게 하는 건 보통이고, 또 불러서 들어가 보면 무슨 죄인 취조하듯 물어봐요. … 한번은 이거 아주 못하겠다 싶을 때도 있었디. 그래서 은사이신 장기려 박사님을 찾아가서 ‘못하겠으니 외과의사로 받아주세요’라고 말했디. 그런데 그분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요. 한 우물을 파야 한다며 돌려보내시더라고. 당신이 ‘법의학은 학문도 아니야, 그런 거 하면 못 써’ 그러시던 분 아니요. 그런데 내가 막상 시작한 뒤에는 그 일에 집중하라고 하신 거디요. 아무튼 그때 장기려 박사님이 나를 받아주셨다면, 오늘날 법의학자 문국진은 없었겠디요.”_112쪽
“들어보라우. 마흔 살 된 중년 부인이 남편과 성행위를 하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켜 죽었어. 이런 상황에서는 대개 남자는 복상사腹上死했다거나, 여자는 복하사腹下死했다고들 하디. 복상사의 경우에는 심장의 병변, 특히 관상동맥경화증을 가진 사람이 많고, 반대로 복하사라면 뇌동맥류를 지녔던 사람들이 성행위 도중에 동맥류가 파열되어 뇌출혈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 부인도 뇌출혈이 아닌가 싶어서 뇌혈관 검사를 해봤디. 그런데 동맥류를 찾아볼 수 없는 데다가 뇌출혈도 없었어. 부검을 해봤지만 사인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어요. 단지 급사한 경우의 일반적인 소견과 인두부咽頭部의 수종과 울혈이 심하다는 정도였디. 페니실린 쇼크사일 때도 이와 비슷해요.
그런데 급사한 부인의 소지품을 조사하던 수사관이 의사의 소견서 한 장을 가져다주었는데, 보니까 이렇게 쓰여 있는 거요. ‘본인은 페니실린 과민성 체질이니 본인에게 페니실린을 절대로 투여하지 마시오.’ 그래서 남편에게 물어보라고 했디. 부인이 최근에 병원에 다녔는지, 약국에서 약을 사 먹은 일은 없는지 말이요. 그런데 전혀 없다고 하고서는, 말끝에 자기가 일주일째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거요. 편도선염을 치료하느라 주사도 맞고 약도 받았다고 했어. 그래서 담당 의사에게 남편에게 무슨 주사와 약품을 투여했는지 알아보았디. 그랬더니 남편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는 거요. 그래서 부인이 페니실린 쇼크로 죽었다는 걸 알게 된 거디.”
“주사는 남편이 맞았다면서요? 그러면…?”
“그렇디. 남편의 정액을 통해 부인에게 전해진 거요. 그래서 쇼크를 받아 죽은 거고.”_132~133쪽
“그러면 일주일에 한 건 정도 한 셈이네요. 정말 한가하셨겠어요.”(웃음)
“그럼, 그때는 부검이 좀 안 들어오나, 기다리고 그랬으니까.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 두벌죽음은 큰 형벌이라는 생각이 꽉 박혀 있잖소. 지금은 많이 좋아지기는 했디만, 그래도 아직 그런 생각이 남아는 있을 거요.”
“두벌죽음이라는 건 무슨 뜻인가요”
“왜 옛날부터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말이 있잖소. 몸만이 아니라 터럭이나 살갗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는 거요. 이런 인식이 주검에 손을 대는 것까지 금기로 생각하게 만들었디. 주검에 손을 대면 두 번 죽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부검하러 갔다가 도끼에 맞아 죽을 뻔한 일도 있었디요.”_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