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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비평
· ISBN : 9788998309022
· 쪽수 : 415쪽
· 출판일 : 2014-05-12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1. 손오공의 탄생과 재생
1-1. 서문을 대신하여
1-2. 아이를 낳는 돌: 손오공의 재생
1-3. 용에서 용왕으로
1-4. 나그네의 종자들: 모모타로에서 『서유기』까지
2. 『서유기』의 오컬티즘
2-1. 오행사상과 『서유기』: 삽입시의 수수께끼
2-2. 납과 수은 이야기(1): 연단술의 비법
2-3. 납과 수은 이야기(2): 숨겨진 포르노그래피
2-4. 손오공과 금과 화: 주인공들에 대한 연단술적 해석
2-5. 성수만다라: 『서유기』 속 숫자의 신비
3. 『서유기』의 사회학
3-1. 별의 화신들: 중국 고대의 밤하늘
3-2. 신들의 위계: 도교와 민간신앙
3-3. 나타태자 이야기: 손오공의 분신
3-4. 요괴가면극: 희곡의 시대와 『서유기』
4. 『서유기』의 해부학 노트
4-1. 오승은과 구처기: 저자를 둘러싼 오해
4-2. 『서유기』의 주변: 그 성립 전후
4-3. 얌전한 제천대성: 해부의 실마리
지은이의 말
옮긴이의 말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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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한국어판 서문]
한국의 독자 여러분! 원간본 『서유기』는 귀국(貴國)의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박통사언해』 부분에서도 분명하듯이, 여러분의 선조인 고려인들은 “울적할 때 읽기에 딱”인 원간본 『서유기』를 아마 다투어 사서 조국에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약 700년의 성상을 거치며 산일(散逸)된 것도 적지 않겠죠. 그렇지만 저는 어딘가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잠자고 있는 것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국에서 원간본 『서유기』가 발견된다면, 그 책은 귀국의 보물이 되겠지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귀국의 『서유기』 전문가, 아니면 다른 분이라도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p.18)
[1장]
이 소설은 흔히 황당무계한 일들을 써서 늘어놓은 터무니없는 세계로 인식된다. 그러나 황당무계한 일들을 써서 늘어놓은 터무니없는 세계에도 반드시 어떠한 논리가 분명히 관통하고 있다. 나는 줄곧 그 논리를 발견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p.23)
[2장]
『서유기』의 세계를 즐기는 첫걸음은 그 줄거리만을 열심히 따라가는 것이다. 그 경우, 소설 여기저기에 삽입된 시사(詩詞) 따위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즐기려 한다면, 그러한 시사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앞에서 사오정의 모습을 읊은 사가 사오정의 모델을 암시하는 말들을 숨기고 있듯이, 시사(詩詞)의 대부분은 이야기의 줄거리보다도 이 소설의 세계를 구성하는 비밀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p.84)
『서유기』가 황당무계한 소설이라는 평가는 예로부터 종종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돌고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서유기』만큼 관념적인 추상이론에 집착한 소설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이론이라는 것은 송·원대 이래 형성된 연단술의 관념적 유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앞에서 나는 유럽의 중세 연금술에 담긴 메르쿠리우스의 용 이론을 일부 소개했는데, 서양과 동양의 연금술이나 연단술이 똑같이 실험과정의 최후단계에서 이렇게 사변적인 심벌리즘 조작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강한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p.135)
『서유기』의 숫자들은 성수 9를 핵심으로 하는 만다라의 세계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습은 만다라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언뜻 보기에 무의미하고 터무니없는 숫자의 범람이다. 하지만 이 성수 만다라의 세계도 중국인들의 긴 우주론(cosmology)의 역사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바꾸어 소설 『서유기』 속에 나타난 것임이 틀림없다. 어쨌든 우리는 『서유기』 성립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본모습 감추기, 즉 ‘도회’(韜晦, mystification) 취향 또는 비교(秘敎, esoterism) 취미에 오랫동안 미혹되어왔던 것 같다.(p.180)
[3장]
비록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옥제와 삼청의 관계 및 옥제와 석가의 관계는 대강 밝힌 셈이다. 알기 쉽게 “어느 쪽이 더 높은 지위였는가?”라는 소박한 의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생각한다면, 표면상의 위계를 유지하면서도 마음속의 위계가 기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천계에서 옥제는 마치 지상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처럼 권력자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손오공을 퇴치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보자면, 옥제는 표면적으로만 위계의 정점에 선 통치자가 되고, 그 대신 석가여래가 실질적인 최고 통치자의 임무를 수행한다.(p.225)
확실히 『서유기』에는 동물이 많이 출현한다. 그럼 어떤 동물들이 있을까? 그중에서 진귀한 동물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매우 친숙한 동물뿐이다. 호랑이, 곰, 소, 뱀, 담비, 악어, 사슴, 양, 거북, 궐파(?婆, 쏘가리), 전갈, 육이미후(六耳??, 귀 여섯 달린 원숭이), 메기, 이리, 거미, 사자, 코끼리, 대붕(大鵬, 붕새), 백여우, 쥐, 코뿔소 등이 그런 예이다. 친숙한 동물이라고는 했지만, 사자나 코끼리가 근처 동물원에 있었을 리는 없으므로, 어쩌면 “실존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동물”이라고 바꿔 말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p.245)
[4장]
혁명 이후의 중국에서 『서유기』의 해부학은 정치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민중이 품고 있는 손오공의 저항적 이미지가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깊이 각인된 점을 생각할 때, 손오공이 국가권력을 상징하는 천계에 대해 승리를 거둔 사실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국가권력에 대한 잠재적인 위험을 예고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서유기』는 언제라도 다시 해부될 운명을 짊어진 상황인 셈이다.(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