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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줄읽기, 큰글씨책] 음빙실문집](/img_thumb2/9791130460895.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중국철학
· ISBN : 9791130460895
· 쪽수 : 170쪽
· 출판일 : 2015-01-26
책 소개
책속에서
그러므로 옛날에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쳐서 정벌하는 것으로 멸했는데, 지금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가엾게 여기고 따뜻하게 해 주는 것으로 멸한다. 옛날에 남의 나라를 멸할 때에는 갑작스럽게 했는데 지금 남의 나라를 멸할 때에는 점진적으로 한다. 옛날에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드러나게 했는데 지금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은밀하게 한다. 옛날에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그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알아서 대비하게 했는데 지금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그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친해져서 끌어당기게 한다. 옛날에 남의 나라를 멸하는 자는 호랑이나 이리 같았는데 지금 남의 나라를 멸하는 자는 여우나 살쾡이와 같다. 통상으로 멸하기도 하고, 빚을 놓는 방법으로 멸하기도 하고, 군사를 대신 훈련시켜 주다가 멸하기도 하고, 고문을 두었다가 멸하기도 하고, 도로를 뚫어 주고 멸하기도 하고, 당쟁을 부채질해 멸하기도 하고, 내란을 평정해 멸하기도 하고, 혁명을 도와주어 멸하기도 한다. 그 나라의 정화가 이미 고갈되어 기회가 익으면 일거에 그 국명을 바꾸고 그 지도의 색깔을 바꾼다. 그 나라의 정화가 아직 고갈되지 않아 기회가 익지 않으면 비록 그 나라의 이름을 이어 가고 그 지도 색깔을 그대로 두더라도 백 몇 십 년 후에는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아! 서구 열강으로서 이런 새로운 법을 약소국에 시행하는 나라가 몇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이 말을 믿지 못하겠는가?
대체로 전 세계에서 개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는 조선이 그 으뜸이다[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조선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주 좋아한다. 두세 사람이 서로 만나면 하루 종일 이야기로 날을 보낸다. 외국 사람으로 조선인의 성격을 조금 아는 자는 말하기를, “조선 사람이 하는 말은 하나도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없다”라고 한다[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조선 사람은 화를 잘 내고 일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한번 모욕을 당하면 곧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난다. 그러나 그 성냄은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곧 이미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조선 사람은 미래에 대한 관념이 매우 박약하다. 서민들은 한번 배부르면 서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차를 달이며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한담으로 날을 보낸다. 내일은 또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할까 하는 생계 문제를 계획하지 않으니, 태곳적 복희씨 시대 사람들처럼 한가로이 얽매임이 없다. 벼슬하는 사람들도 또한 그러하다. 다만 오늘 벼슬을 하고 권세가 있으면 내일 나라가 망하더라도 본래 상관할 바가 아니다.
넷째, ‘소매파(笑罵派)’, 즉 비웃고 욕이나 하는 파다. 이 파의 사람들은 방관파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후관파(後觀派)’, 즉 뒤에서 구경하는 파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남의 등 뒤에 서서 비꼬는 말이나 욕설로 남을 비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단지 스스로가 방관자일 뿐 아니라 또 남들로 하여금 방관자가 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저들은 수구(守舊)를 욕하고, 또 유신(維新)을 욕한다. 소인배를 욕하고, 또 군자도 욕한다. 노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무기력이 이미 깊음을 욕하고, 청년들에 대해서는 경솔하게 일을 많이 벌인다고 욕한다. 일이 성공하면 보잘것없는 놈이 요행히 공을 세웠다고 말하고, 일이 실패하면 내가 진즉에 알았다고 말한다. 저들은 늘 지적할 수 없는 입장에 스스로 서 있으니 무엇 때문인가? 일을 하지 않는 까닭에 지적할 수 없고, 방관하고 있으니 지적할 수 없다. 자기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일을 하는 사람 뒤에 서서 자기와 다른 이를 배척해 비웃고 공격한다. 이것은 가장 교활한 술수로, 용기 있는 자로 하여금 기가 꺾이게 하고 겁쟁이로 하여금 절망하게 한다.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하게 하고 기가 꺾이게 할 뿐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도 저들은 비웃고 욕하고 가로막는다.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도 저들은 비웃고 욕하고 망가뜨린다. 그러므로 저들은 세상의 음험한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