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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30813462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8-06-19
책 소개
목차
고창
군산
김제
남원
무주
부안
순창
완주
익산
임실
장수
전주
정읍
진안
책속에서
<호남가(湖南歌)>는 호남 여러 고을을 돌아다닌다고 하는 노래이다. 남도소리로 부르며, 장단은 중머리이다. 호남 출신이면 누구나 부를 줄 안다. 이서구(李書九)가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었다고도 하고, 신재효(申在孝)의 작품이라고도 한다. 임방울(林芳蔚) 명창이 불러 널리 알려졌다.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光州) 고향(故鄕)을 보랴 하고
제주어선(濟州漁船)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 갈 제
흥양(興陽)의 돋는 해는 보성(寶城)에 비쳐 있고
고산(高山)에 아침 안개 영암(靈巖)을 둘러 있네
태인(泰仁)하신 우리 성군(聖君) 예악(禮樂)을 장흥(長興)하니
삼태육경(三台六卿) 순천(順天)이요 방백수령(方伯守令)이 진안(鎭安)현이라
고창(高敞) 성 높이 앉아 나주(羅州) 풍경 바라보니
만장운봉(萬丈雲峰) 높이 솟아 층층(層層)한 익산(益山)이요
백리 담양(潭陽)의 흐르는 물은 굽이굽이 만경(萬頃)인데
용담(龍潭)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龍安處)며
능주(陵州)의 붉은 꽃은 골골마다 금산(錦山)이라
남원(南原)에 봄이 들어 각색(各色) 화초(花草) 무장(茂長)허니
나무나무 임실(任實)이요 가지가지 옥과(玉果)로다
풍속(風俗)은 화순(和順)이요 인심은 함열(咸悅)인디
기초(奇草)는 무주(茂朱)하고 서기(瑞氣)는 영광(靈光)이라
창평(昌平)한 좋은 세상 무안(務安)을 일 삼으니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낙안(樂安)이요 부자형제(父子兄弟) 동복(同福)이로구나
강진(康津)의 상고선(商賈船)은 진도(珍島)로 건너갈 제
금구(金溝)의 금(金)을 이뤄 쌓인제 김제(金堤)로다.
농사(農事)하던 옥구(沃溝)의 백성(百姓) 임피상의(臨陂裳衣) 둘러입고
정읍(井邑)의 정전법(井田法)은 납세인심(納稅人心) 순창(淳昌)허니
고부청정(古阜靑靑) 양유색(楊柳色)은 광양(光陽)춘색(春色)이 팔도(八道)에 왔네
곡성(谷城)에 숨은 선비 구례(求禮)도 하려니와
흥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제가(齊家)이 아니냐
우리 호남(湖南)의 굳은 법성(法聖) 전주백성(全州百姓)을 거나리고
장성(長城)을 멀리 쌓고 장수(長水)를 돌아들어
여산석(礪山石)에 칼을 갈아 남평루(南平樓)에 꽂았으니
삼례(參禮)가 으뜸인가 거드렁거리누나
울다 지친 울엉산
아주 먼 옛날 부안군에 계화도산과 형제산이 있었다. 이들은 언제나 다정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뜻밖의 불행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나 거센 풍랑이 세차게 일어나더니 마침내 형제가 조난을 당하게 된 것이다. 두 산은 큰 파도에 휩쓸려 여기저기 둥둥 떠다니게 되었다.
얼마 후 거센 풍랑이 가라앉게 되었다. 형 산은 다행히 그 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지만, 동생 산은 파도에 밀려서 여기 죽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다정하게 살고 있던 두 형제간에 이렇게 헤어지는 아픔을 겪게 된 것이다. 한 번도 형 곁을 떠나본 적이 없는 동생 산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 앞에서 울다 지쳐버렸다. 어쩔 수 없이 형을 잃은 동생 산이 울면서 이곳 죽산 땅에 안착하고 말았다. 지금도 사람들은 풍랑 때문에 형을 잃어버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산이라고 해‘서울 엉산’이라고도 한다.
● 두 산이 형제라고 하면서 이별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사람 마음이다.
― 「김제」
화엄사상에 바탕한 개암사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감교리 714번지)에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다. 절 이름은 백제 무왕 35년(643)에 묘련왕사가 변한의 궁전을 절로 고쳐 지을 때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때에는 황금전, 청련각, 청허루, 팔상전을 비롯한 30여 동의 건물들이 삼립(森立)한 대규모 가람이었다고 하나 전통 사찰이 대개 그렇듯이 임진왜란 때 화재를 입어 대부분 사라지고 대웅보전만 지금 남아 있는 실정이다.
보물 제292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조선 중기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이 사찰의 중심 전각이다. 불단 중앙에 석가모니불, 그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을 모셨는데, 이것은 화엄사상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배치 형식이다. 문수는 부처의 반야지(般若智)를 상징하고, 보현은 불지(佛地)를 향한 행원(行願)의 광대함을 의미한다. 반야의 지혜는 부처가 있는 근거이며, 행원은 부처의 경지로 나아가는 방편이다. 결국 이 두 보살은 부처님의 두 경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 「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