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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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원미(元美), 호가 봉주(鳳州)·엄주산인이며 태창[太倉: 지금의 장쑤성(江蘇省)에 속함] 사람이다. 명나라 가정 26년(1547)에 진사가 되었으며, 남경 형부주사(刑部主事)와 산동부사(山東副使)를 지냈다. 왕세정은 당시 정권을 전횡하던 엄숭(嚴嵩) 부자를 탄핵한 양계성(楊繼盛)을 변호했는데, 그 일로 엄숭이 그의 부친을 죽이고 그를 파직시켰다. 나중에 엄숭이 세력을 잃자 왕세정은 다시 기용되어 형부상서(刑部尙書)까지 올랐다. 이반룡(李攀龍)과 함께 ‘후칠자(後七子)’의 영수가 되었으며, 이반룡이 죽은 뒤로는 20년간 문단을 이끌었다.
저작으로는 ≪세설신어보≫ 외에 ≪엄주산인사부고≫ 174권, ≪속고(續稿)≫ 207권, ≪독서후(讀書後)≫ 8권과 ≪고불고록≫, ≪완위여편(宛委餘編)≫, ≪염이편(艶異編)≫, ≪봉주필기(鳳洲筆記)≫, ≪엄주고선≫, ≪전당시설(全唐詩說)≫, ≪엄산당별집≫, ≪가정이래수보전(嘉靖以來首輔傳)≫, ≪화원≫, ≪서원(書苑)≫, ≪엄주산수제발≫, ≪이물휘원(異物彙苑)≫, ≪휘원상주(彙苑詳註)≫, ≪사승고오(史乘考誤)≫, ≪척독청재(尺牘淸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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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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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를 수료했다. 태동고전연구소 전임연구원,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조교수로 있다. 옛 사람의 자취 속에서 지금의 가치를 찾아보고자 늘 노력하며, 한문 고전 번역 및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호저집(縞紵集)》에 보이는 박제가의 교유와 교류 양상〉, 〈기암 정홍명의 두보 시 수용과 변주 양상〉 등의 여러 논문을 썼다. 또 《역주 후산문집》 1, 3, 《장춘동수창록》, 《천하제일명산 금강산 유람기》, 《면파유고》 등 다수의 역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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