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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꽃과 그 일본인

목화꽃과 그 일본인

(외교관 와카마쓰의 한국 26년)

김충식 (지은이)
메디치미디어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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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꽃과 그 일본인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목화꽃과 그 일본인 (외교관 와카마쓰의 한국 26년)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57060405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15-09-25

책 소개

우리에게는 생소한 와카마쓰 도사부로라는 인물을 발굴.추적해서 기록한 결과물이다.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1869년 규슈 오이타 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84세를 일기로 교토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와카마쓰라는 사람의 한평생을 이 책에 담았다.

목차

들어가는 글
추천사

1장 시골뜨기 소년의 푸른 꿈
고향 모리무라와 소년 시절
규슈 오이타 시골의 수재들

2장 독실한 크리스천의 영성으로
도시샤대학교에서 양심과 자유, 인류애를 배우다
독실한 기독교도 니지마 조와 인연을 맺다
도시샤대학교의 스승과 인재들

3장 학문과 배움의 궤적
꿈에 그리던 도쿄대학교에 들어가다
대학 시절의 인연들
재학 중 외무고시에 합격하다

4장 국제무대에 서는 설레는 꿈
외교관으로서 첫걸음을 내딛다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공사의 원죄
자유와 다양성의 신천지, 뉴욕에 서다
중국 항저우와 사스의 영사 시절

5장 목포에 미국종 육지면을 심다
다시 밟은 목포에서 발견한 ‘대박’
육지면 시험재배지 고하도
육지면 시험재배 성공, 도쿄를 움직이다
목포 고하도와 충무공 이순신 유적
재배협회가 설립되어 대량보급으로
재배지 확장에 나서다
한일 공동으로 육지면 재배를 장려하다
이토 히로부미와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대화
권업모범장과 시험재배지
육지면 보급과 면 산업의 발달
새롭게 부각되는 면화의 가치

6장 천일염 꿈을 이루다
끓여 만든 재래식 ‘자염’과 수입 소금
천일염 시험염전을 만들다
한국 최초의 천일염 시험장
정부 주도로 천일제염을 시작하다
천일염을 수출하다

7장 외교관 인생에 닥친 위기
개항기 목포 부둣가의 노동시장
국제 문제로 번진 목포 노무분쟁

8장 통감부·총독부 관료 시절
‘목포외교관’에서 내무행정관으로
원산에서 보낸 내무행정 관료 시절
가슴 졸이며 보낸 평양이사관 시절
숨죽이고 소일하던 부산부윤 시절

9장 인천 ‘쌀.콩거래소’ 사장으로
총독부의 인천 근무 요청을 받다
인천 ‘쌀.콩거래소’의 뿌리
‘쌀.;콩거래소’ 재건에 성공하다
주식회사 인천 ‘쌀.콩거래소’의 부침
서울주식시장과 인천거래소 합병 문제

10장 모교 도시샤대학교에 ‘재능 기부’
한반도를 떠나 교토로 돌아오다
도시샤대학교 교우회장으로 활동하다

11장 재일 한국인의 인권 옹호와 교회 설립
교토에서 한국인을 위해 힘쓰다
교토에 한국인 교회당을 세운 어빈 선교사

12장 가족과 함께 만년을 보내다
교토에서 유유자적한 퇴역인사
가장 아꼈던 큰딸 아쓰요
셋째 딸 미도리와 ‘화가 남편’ 오카모토 신소
넷째 딸 모미지와 의사 가족
와카마쓰 집안을 이끈 남자들
세 딸과 아내의 죽음

저자소개

김충식 (인터뷰어)    정보 더보기
가천대학교 교수(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전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54만 부 판매 기록의 《남산의 부장들》 저자. 일본 게이오대 법학박사(미디어 저널리즘 전공),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 1977년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30년을 재직했다. 주로 정치부에서 국회, 정당, 청와대, 외무부를 출입했다. 현장 기자로서 금단의 성역이었던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현재 국가정보원)를 심층 해부해보려는 열망에 불타, 1990년 김중배 편집국장(나중에 한겨레신문 사장, MBC 사장)에게 연재를 건의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남산의 부장들’은 압력과 회유, 협박 속에서 장장 2년 2개월 동안 연재되어,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단행본 《남산의 부장들》로 출간돼 한일 양국에서 54만 부가 팔리는 대반향을 몰고 왔다. 2012년 내용을 대폭 보완한 개정·증보판이 폴리티쿠스에서 나와 수만 부가 팔렸다. 2021년 중국어판도 대만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1993년 평기자로서, 30대에 최연소 논설위원으로 발탁되었다. 한국기자상을 두 번 수상(1984, 1993년)했다. 문화부장, 사회부장을 거쳐 2002년부터 3년간 도쿄특파원 겸 지사장으로 주재하며 아사히신문 등에 칼럼을 썼다. 2004년 도쿄대 대학원(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정치와 보도’ 과목을 1년간 강의했다. 저서로 《남산의 부장들》(1992), 《슬픈 열도》(2006), 《법에 사는 사람들》(공저, 1984), 《목화꽃과 그 일본인》(2015), 번역서로 《화해와 내셔널리즘》(200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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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는 와카마쓰의 일생도 소개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비록 심정적으로는 ‘불편한’ 총독부의 일제 관료였지만, 일본 해군의 레거시(legacy, 유산)가 된 이순신 영전에 엎드려 기도하는 일본 장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목화재배와 천일염전 개발이라는 적산敵産의 레거시를 남기고 한반도를 떠난 와카마쓰도 있는 그대로 전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와카마쓰는 어릴 적부터 동네 사람들이 알아주는 총명한 아이였다. 한자를 어린 나이에 익혔고, 여섯 살 때 막 창설된 모리소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해 나이가 많은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했다. 모리소학교에는 두 학급이 있었는데, 1반에는 다섯 살 위인 둘째 형 도요조가 있었고 와카마쓰는 2반에 속했다. 소학교를 마쳤을 때 아홉 살이었으나 시골 중에서도 완전히 시골인 모리무라에는 진학할 공립학교가 없었다.


당시 도시샤정법학교 설립 여부를 두고 찬반이 엇갈려 학내가 시끄러웠는데, 와카마쓰는 이에 반대하면서 “그런 학교를 굳이 세우려면 도쿄에 설립하라”고 반발한 주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 일로 와카마쓰는 학교 당국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니 예비학교 교사로 채용하겠다는 제안은 그야말로 뜻밖이었다. 와카마쓰는 고민 끝에 고사키 교장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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