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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영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57524372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5-07-05
책 소개
목차
Part 2. 파란 도시의 인간
Part 3. 조이
Part 4. 숨바꼭질
Part 5. 아이시스
Part 6. 플랜B
에필로그
리뷰
책속에서
물론 나도 안다. 이건 또 다른 꿈일 뿐이라는 걸, 흔히들 갖는 또 하나의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걸. 인류의 추잡한 도시와 요란한 기계가 말끔히 쓸려 나가고 종말 이후의 순결하고 목가적인 세상이 온다? 터무니없다. 이 중서부의 적갈색 나무들은 불길이 타오르는 맨 처음 순간 바로 화염에 휩싸일 테니까. 전 세계의 나무들은 바싹 마른 불쏘시개처럼 제일 먼저 타 버릴 테니까. 단시간에 재구름이 태양을 가릴 테고, 광합성이 완전히 멈춰 모든 푸르름의 심지가 꺼질 테니까. 다람쥐도 불에 타고, 꽃도, 나비도, 키 큰 풀잎을 기는 무당벌레도 다 타 버릴 것이다. 주머니쥐는 제 구멍 속에서 익사할 것이다. 이제 막 일어나려는 일은 어머니 대지가 인간의 오만하고 그릇된 청지기 노릇을 숙명적으로 거부하고 득의만면하게 지구를 되찾는 사건이 아니다. 우리가 저지른 일들은 이렇게든 저렇게든 중요하지가 않다. 이 사건은 인간의 행성이 쥔 카드 패에 항상 들어 있던, 온 역사를 통틀어 항상 잠재해 있던, 우리가 무엇을 했건 하지 않았건 생기는 사건이다.
“그런 말은 절대로 해선 안 되오.”
이들의 평화로운 얼굴이, 더 이상 세상 어디에도 없는 행복한 분위기를 증명하고 있다. 대대적인 전염병도 엄청난 재앙이기는 하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온 땅을 뒤덮어 상황이 끝날 때까지 가족끼리만 모여 살고 세상과 단절해야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전염병에는 끝이 있다. 전염병이 다 돌고 나면 세상은 회복된다. 여기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회복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나는 이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기도를 드린 다음 다 같이 일어나 웃으며 접시를 치우는 모습 속에서 그 무지를 보았다. 미래의 존재감. 나 스스로는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는 한 번도 실감할 일이 없었던, 냄새도 색깔도 없는 미래의 존재감 속에서 이들의 무지가 느껴졌다.
다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다. 아무 의미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상자들이라니. 차라리 아무 의미 없음에 대한 패러디 같다. 세상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히죽히죽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거다.
“얘, 너 파스타가 필요할 거야!”
하지만 코르테즈는 웃지 않았다. 그는 나와 정크 푸드 상자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무릎을 척 꿇으며 할렐루야를 외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우리가 찾아낸 거요.”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점점 크게 번지고 눈은 제자리에서 그야말로 핑글핑글 돈다.
(중략)
나는 당황스러워서 그를 빤히 보았다. 이것은 그의 광기이다. 코르테즈만의 미확진 소행성 정신병. 테이저 건? 헬멧? 문명이 벼락처럼 무너져 내리는데 우리는 이 밑에서 헬멧을 쓰고 앉아 있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