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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9922688
· 쪽수 : 208쪽
책 소개
목차
흐려지지 않기 위해서
쓰레기소각장에서의 일주일
한 사람에게서 켜진 두 개의 이름
순수는 뒤에서 나를 부르고
수직과 수평
곰팡이에게 필요한 시간
어둠이라는 색깔
물로 그린 자화상이 있다면
그 자리는 그대로 두는 게 더 낫겠군요
겨울 숲에 날아든 새를 위해
사랑은 유머 일번지
나선형의 사랑 / 밤과 비
나선형의 사랑 / 대화의 굴곡
함께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프다(1971)
햇빛세입자
시 - 밤 부엽토 잘 지내나요
풀베개가 되기 위한 새싹들의 전진
아침 퇴고
겨울잠 주무시는 선생님께
아직 지붕은 만들고 있거든요
소용돌이 속에서
잘 읽고 있어요
책 속에서 헤어진 사람들
보풀 떼고 입는 옷
아몬드 모양의 눈
나의 애독자에게
여기,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시끄러움을 자처한다는 것
따뜻한 초조함
책상 일기
여러분 / 2018년 12월 10일, 서울과학기술대 시창작연습2 특강 원고
시 - 사랑의 파도 위의 레겐탁
내가 훔친 인디언 보조개 한 개
식물 부음
타이쿤 형식으로
안식월
부동산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
나를 재워준 사람
슬픔이라는 생활
마음과 보자기
헐거운, 지난한, 그럼에도
한 뼘 나무의 두 마디 간격
꽃집에서
흑백 일기
지킨 약속보다 어긴 약속이 더 많다
시 - 타오르는 겨울
리뷰
책속에서
정말 좋았던 시들은, 바람이 부는 곳과 햇볕이 드나드는 자리를 알고 제멋대로 창문을 열어둔 집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후자가 되고 싶어서, 애써 알고 배워온 것들을 잊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숙련된 방식으로 시작하지 않게 된다. 서툴게 언어를 고르고 이미지를 불러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그 과정을 계속 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순수가 나를 불러줄 때까지.
상담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야기는,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제어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감정의 파동을 예민하게 감지하고는, 평정심을 위해서 불편한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한다는 점을 선생님은 꼬집었다. 물론 기쁜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기쁘거나 벅차오르는 감정마저도 냉철하게 억누르면서 지내온 내 방식이 지금 일어난 많은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수평대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나만의 균형 감각이 앞으로 가는 일엔 필요했지만, 깊어지거나 높이 가는 여정에 있어서는 불구의 자세에 가까웠다.
어둠 속에 모여, 더 어두운 것을 가리켜보는 것, 그래서 좀 더 어둡지 않은 것을 밝아 보인다고 말해보는 것, 그런 어둠과의 실랑이 속에서 우리의 문장이 계속되어간다는 것을 잠시나마 실감해보는 것이, 쓰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함께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겠냐고. 그래서 수업을 모두 마치는 날에는 가장 먼저 강의실에 도착해 출석부에 적힌 낯선 사람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읽어보며 혼자서 먼 배웅을 하기도 한다. 각자 문밖으로 나가면 다시 시작될 어두운 시간이 있을 것이기에. 온실을 떠나 거대한 숲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한편으론 안심이 되고, 한편으론 또 만날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을 혼자 겨누며 사람들의 이름을 자꾸 되뇌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