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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59922718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19-11-28
책 소개
목차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서문 7
토네이도 앨리에서 파생된 스포츠 19
트레이시 오스틴이 내 가슴을 후벼 판 사연 55
선택, 자유, 제약, 기쁨, 기괴함, 인간적 완벽함에 대한
어떤 본보기로서 테니스 선수 마이클 조이스의
전문가적 기예 81
유에스 오픈의 민주주의와 상업주의 149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 189
출처 225
옮긴이의 말 226
리뷰
책속에서
아닌 게 아니라 센트럴일리노이의 조건은 수학적 관점에서는 흥미롭고 테니스적 관점에서는 열악하다. 여름은 열기와 젖은 장갑 같은 습기를 내뿜고, 기이할 정도로 기름진 토양은 풀과 넓은잎을 테니스장 표면 위로 온 힘 다해 밀어올리고, 깔따구는 땀을 빨아 먹고 모기는 밭의 고랑과 밭 둘레의 녹조투성이 도랑에 알을 낳고, 나트륨등에 이끌린 나방과 똥깔따구가 키 큰 조명등마다 주위에 작은 행성을 이루고 온통 불 밝힌 테니스장 곳곳에 작은 그림자를 펄럭거리기 때문에 야간 테니스 경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악조건의 가장 큰 원인은 바람이다. 바람이야말로 센트럴일리노이 야외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최대의 단일 요인이다. 휘어버린 풍향계와 기우뚱한 헛간을 소재로 삼은 이곳 농담은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이고 온갖 바람을 일컫는 남부 지역의 별칭은 눈을 일컫는 이누이트족의 별칭보다 많다. 바람에게는 성격이 있었고 (고약한) 기질이 있었고 필시 의도가 있었다. 바람이 낙엽을 어찌나 규칙적으로 욱여넣어 선과 호를 만들었던지 사진을 찍어서 크라메르 공식(ramer’s Rule)과 3차원 공간에서 곡선의 외적을 구하는 방법의 예로 교과서에 실어도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_〈토네이도 앨리에서 파생된 스포츠〉
오스틴의 이야기는, 운동만 하다가 스물한 살에 소진된 영재가 겪은 역경은 정도 차이를 제외하면 일만 하다가 예순두 살에 죽은 공인회계사 가장이 겪은 역경과 아무런 차이가 없으므로, 심오할 수도 있었다. 이 책은, 열일곱 살에 모든 것을 얻었다가 스물한 살에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잃는 것이 그 뒤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말고는 죽음과 꼭 같으므로, 참된 영감을 불어넣을 수도 있었다. “트레이시 오스틴이 챔피언십 테니스 너머의 삶을 발견하기까지의 오랜 분투를 그려 영감을 불어넣는 이야기”라는 책날개 문구에서 약속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책날개 문구는 거짓말이다. 여기서 ‘영감을 불어넣는(inspirational)’이라는 말은 ‘가슴 따뜻한’, ‘훈훈한’, 심지어 (하느님, 용서하소서) ‘장대한’ 따위와 기본적으로 똑같은 상투적 광고 문구 클리셰의 의미로서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느 상품 광고 클리셰와 마찬가지로 이 문구는 모든 것을 암시하되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려는 수작이다.
_〈트레이시 오스틴이 내 가슴을 후벼 판 사연〉
방송용 블레이저 차림의 중저음 아나운서들은 경기가 끝날 때마다 찾아와 신체적 천재들에게 틀에 박힌 클리셰를 이런 식으로 짜깁기해달라고 요구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 문구들은 일종의 묘한 자장가처럼 들리기 시작하는데, 방송국에서 끈질기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방송하는 것은 물론 이런 진부한 말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시청자가 많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감정을 묘사할 때의 공허가 마치 우리가 믿고 싶은 무언가를 확증하기라도 한다는 듯.
_〈트레이시 오스틴이 내 가슴을 후벼 판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