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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60271492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8-11-16
책 소개
목차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유실물을 찾아서
첫 번째 편지 1992년 11월 16일 오피치나에서
두 번째 편지 11월 18일
세 번째 편지 11월 20일
네 번째 편지 11월 21일
다섯 번째 편지 11월 22일
여섯 번째 편지 11월 29일
일곱 번째 편지 11월 30일
여덟 번째 편지 12월 1일
아홉 번째 편지 12월 4일
열 번째 편지 12월 10일
열한 번째 편지 12월 12일
열두 번째 편지 12 월 16일
열세 번째 편지 12월 20일
열네 번째 편지 12월 21일
열다섯 번째 편지 12월 22일
리뷰
책속에서
걱정 말거라. 설교하려는 것도 아니고, 널 슬프게 하려는 것도 아니니까. 난 단지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야. 가슴과 가슴으로 나누는 대화 말이야. 우리가 서먹해지기 이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무거운 짐이 되곤 하더라. 나는 꽤 오래 살았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에 잘 알지.
그러니 우리 사이가 멀어진 건 지극히 당연한 거란다. 너의 껍데기는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했고, 나의 껍데기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니까 말이야. 너는 내가 우는 걸 못 견뎌했고, 나는 갑자기 차가워진 너를 견딜 수 없었어. 물론 사춘기를 거치면서 네 성격이 달라질 거라 기대했지. 그런데도 막상 그때는 참을 수 없이 힘들었단다. 내 앞에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만 같았어. 어떻게 너를 대해야 할지 모르겠더구나. 밤이면 지금 너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변화에 감사하기로 마음을 가다듬었어. 아무 문제없이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은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아침이 되고, 눈앞에서 문을 꽝 하고 닫힐 때면 얼마나 절망적이었던지. 그저 울고만 싶었어. 나에게는 그런 널 견뎌낼 만한 에너지가 없었어.
그 시대에 여자와 남자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았지. 남자들에게는 직업도 있고, 정치도 있고, 전쟁도 있었어.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곳이 많았던 거야. 하지만 여자들은 아니었지. 수많은 세대에 걸쳐 우리는 침실과 부엌과 욕실에만 갇혀 있었어. 그곳에서 똑같은 분노와 불만에 수백만 번도 더 괴로워했지.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되었냐고? 아니야. 난 단지 이 모든 것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를 명확히 보려고 할 뿐이야. 성모마리아 승천 축일날 밤, 바다 위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갔던 일 생각나니? 가끔씩 높이 올라가기도 전에 꺼져버리고 마는 폭죽들이 있었지. 내 어머니의 삶, 할머니의 삶, 그리고 내가 아는 많은 여자들의 삶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그런 거란다. 하늘 높이 올라가지도 못하고 낮은 데서 칙 하며 꺼져버리는 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