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60689563
· 쪽수 : 362쪽
· 출판일 : 2025-04-25
목차
머리말
한국어판 서문
역자 인사말
일러두기
제1부 조선인 징병 실시와 희생자 수
서장 징병 전사(前史) –조선육군특별지원병-
제1장 징병 발표 이전의 징병 준비
1. 조선청년 체력검사의 실시
2. 징병 발표 직전의 징병 준비
3. 징병 발표와 조선총독부
제2장 징병제 실시 과정(1) - 기류·호적정비를 중심으로 -
1. 호적 정비
2. 기류령과 기류 촉진 운동
3. 기류·호적 정비의 실정
4. 기류·호적 정비의 결과
제3장 징병제의 실시 과정(2) - 청년 훈련을 중심으로-
1. 조선 청년의 연성(鍊成) 준비
2. 조선청년특별연성령의 실시
3. 청년훈련소 별과의 징병 준비
4. 군무예비훈련소의 창설
5. 조선여자청년연성령의 실시
6. 징병준비훈련의 실시 상황
제4장 징병검사 실시
1. 징병사무 개시
2. 징병검사 경과
3. 징병검사 결과
제5장 징병과 경찰·군 조직
1. 징병 실시와 경찰
2. 조선군 개요와 조선인 징병
제6장 징병 실시와 징병자 수
1. 징병자 수
2. 조선인 보충병을 중심으로 한 보충대의 존재
3. 근무대원으로 징병된 사람들
제7장 조선인 희생자 수
1. 군속 희생자
2. 육군특별지원병
3. 해군특별지원병
4. 학도지원병
5. 징병자들
6. 기타 병과의 희생자
7. 후생성이 제출한 ‘전사’자 자료에 대해
8. 2만 2,182명이라고 하는 희생자 수
9. 조선인 희생자 문제에 대해
제8장 일본‘본토’와 ‘만주국’의 징병 실시
1. 일본‘본토’ 조선인 징병 과정
2. ‘만주국’에서의 조선인 징병
제2부 조선 민중과 징병 체제
제1장 징병을 가능케 한 여러 요인
1. 조선인 인구 증가 압력
2. 교육 보급과 취직난
3. 농촌경제 통제의 강화
4. 경제 통제와 상업·공업 활동의 위축
5. 황민화정책과 조선 청년
제2장 병사들의 출신 계층
1. 초기 군속들의 출신 계층
2. 육군특별지원병의 출신 계층
3. 상층 계층의 학도병
4. 1944·45년도 징병자의 출신 계층
5. 태평양전쟁 하의 군속·군부
6. 청년층의 총동원과 구분
제3장 조선 민중에 대한 군사적 동원 - 군속·군요원 -
1. 군사적 동원의 채용 형태와 직종
2. 군속
제4장 조선 민중에 대한 군수물자 동원
1. 저축 강화
2. 군(軍)의 직접동원
제5장 징병, 군사적 동원에 대한 조선인의 저항
1. 조선 민중의 저항
2. 학도지원병의 저항
3. 징병자의 저항 - 주로 도망에 관하여
4.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군사교육의 성과
5. 조선인 저항의 의미
제6장 조선인 징병 문제를 둘러싼 문제들
1. 조선인 징병, 노무동원과 농업 재편
2. 조선총독부의 이중지배 구조
제7장 징병 실현과 평가의 문제
1. 구 일본군 관계자의 평가
2. 조선인의 평가
3. 조선인 징병의 새로운 평가를 위해
4. 향후 일본인의 대응
맺음말
제3부 식민지 조선인 민중의 역사를 밝히는 길, 평생의 시무(時務)
히구치 유이치 선생님 인터뷰
부록
징병 관계 자료
참고문헌
연표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국어판 서문]
조선 식민지 지배 중 전쟁 말기에 일본인은 조선인에게 가장 가혹한 희생을 강요했으며 그 대표적인 사실 중 하나가 일본군 병사로의 강제동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실태에 대해 일본인은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다. 조선인의 일본군 동원과 희생을 처음 기록한 이 책은 2001년에 발간했으니, 그로부터 25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 조선인 병사의 실태와 희생을 기록한 서적은 일본에서 단 한 권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책에서는 일본의 징병제가 해방 후의 조선 사회와 한국군으로 어떻게 계승되는지, 그리고 조선인 희생자 등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 또한 이오토(硫島) 등지에서 ‘옥쇄’했다고 보도된 조선인 군속들이 하와이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명부로 남은 점, 남양지역 조선인 해군 군속의 행방과 중국 전선의 후방 수송에 동원된 사람들, 전쟁 말기 조선 내 병력동원수로는 최대였던 제주도에서의 희생자 수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현재 아시아태평양전쟁시기 노무자 미불금 문제가 최대 관심거리인데, 징병자·군속의 전시 보상 처리도 어떻게 되었는지 중요하다. 가령 강제동원된 노무자의 경우는 매월 월급에서 원천징수되어 강제저축이 이루어졌고, 재일 한인의 경우는 협화회를 통해 강제저축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일본군으로 동원된 조선인 병사의 예금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었는지 이에 관한 연구는 없다.
일본인과 조선인 병사, 혹은 유족, 친족이 일본군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에 대한 사회적·개인적 평가나 유족의 인식 등에 대한 연구도 과제이다.
일본인은 일본군이 된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희생자 묘역을 보면 대부분 일본군 계급이나 전사한 사실 등을 적시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즉, 일본군이었다는 사실이 치욕이 아닌 명예스럽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반해 조선인의 경우는 구체적인 조사에 기반하지는 않았지만, 일본군이었다는 사실이 명예로운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민족을 위해 싸우다 사망한 경우는 평가하지만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조선인 입장에서 징병은 강제된 것으로, 부대 배속의 경우도 조선인 병사 간 소통되지 않도록 조직, 지도하고 있었다. 조선인 병사 집단은 일본인과는 다른 세계관의 집단이었음을 정립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조선인 징병은 노무 동원과 마찬가지로 강제동원체제 하에 집행되었다. 즉, 조선인 병사는 민족적인 면을 견지하며 조직된 존재로서, 일본의 군사적 붕괴가 목전이었던 시기에 조선인에게 취해진 강제동원의 한 형태였다.
2025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