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61110486
· 쪽수 : 380쪽
책 소개
목차
서문 07
1. 폭풍의 눈 안에서 15
2. 베니스의 한순간 23
3. 라이트 부인과 자바라 경: 감비아강 보트 여행 46
4. 뮌헨에서의 사색 90
5. 아란의 돌 122
6. 노터봄의 호텔 1 144
7. 사하라의 가장자리에서 160
8. 오래된 전쟁, 캔버라 전쟁기념관 181
9. 이스파한에서의 어느 저녁 203
10. 그들은 그녀의 유골 위에 만토바를 세웠다 248
11. 취리히 269
12. 달 표면 같은 말리 297
13. 세계가 아직 어릿광대 모자를 쓰고 있던 시절 358
14. 노터봄의 호텔 2 367
책속에서
그 호텔들의 공통점이라면, 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지나간 시절의 공기다. 항상 작동하지는 않는 구식 수도꼭지, 내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싶은 문지기, 한물간 색깔들, 넘쳐나는 거울, 여기저기 벗겨진 페인트, 도자기의 실금, 수십만 개의 사라진 신발들이 양탄자에 남긴 마모, 공중으로 올라가기 전에 잠깐, 하지만 확실하게, 주춤거리는 엘리베이터, 그 고요함으로 인해 다른 객실에 관한 생각일랑 싹 없애버리는 방.
일의 능률을 위해 전통 복장을 벗어 던진 모로코인들은 깡마르고 날랜 스페인 또는 이탈리아인 종업원처럼 보이고, 고귀하신 유럽 양반들은 일찌감치 자기 소유의 레스토랑에서 그들을 참아내는 법을 배웠다. 이런 기막힌 국제적 접촉으로 인해 종업원들은 자기 마을이나 부족, 출신 배경보다 한없이 월등하다고 새삼 느낀다. 그들은 진보의 꼭두각시놀음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과는 벌레 먹었고, 나라마다 자기만의 썩은 사과를 가질 자격은 있는 법이다.
무엇 때문에 나는 여기서 행복감을 느끼는가? 아마도 고요함일 것이다. 사람과 동물 소리밖에 없는 고요함. 당나귀들은 모두 장터 모퉁이에 모여 있다. 몇 해 지나면 그들 대신 스쿠터가, 좀 더 지나면 자동차가 있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또한, 아마도 물건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죄다 볼 수 있어서일 것이다. 대장장이, 무두장이, 빵 굽는 사람, 모두 이 장터 언저리에 한데 모이고, 대서꾼과 이야기꾼, 거지와 푸주한. 우주의 축소판, 자체 완결적이고 자급자족하는 하나의 세계, 이치에 맞는 세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