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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61570167
· 쪽수 : 436쪽
· 출판일 : 2017-09-29
책 소개
목차
저자의 말
주키퍼스 와이프
주석
참고문헌
리뷰
책속에서
안토니나는 종종 이렇게 재미 삼아 자기를 비우고 동물의 감각에 자신의 감각을 일치시키면서, 애정 어린 호기심으로 동물들을 대하고 돌보았다. 주파수를 맞춰주는 이런 태도에는 동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날뛰는 동물들을 달래고 진정시키는 안토니나의 신기한 능력은 동물원 사육사들은 물론 그녀의 남편까지도 감탄할 정도였다. 얀은 엄밀히 말하자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능력이 이상야릇하고 신비하다고 인정했다. 얀은 열렬한 과학 신봉자였지만 동물을 다루는 문제에서는 안토니나에게 거의 주술적인 공감 능력이라 할 만한 “형이상학적인 파동”이 있다고 믿었다.
폴란드의 수도가 불타는 와중에도, 일부 동물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이중 다수가 동물원을 탈출해 다리 건너 구시가지로 들어갔다. 동물원이 텅 비고 동물들이 바르샤바 거리를 활보하는 동안,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볼 만큼 용기 있는 자, 혹은 집을 잃고 밖을 떠돌 만큼 불운한 자는 성서에나 나올 법한 기이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바다표범이 비스와 강둑을 따라 어기적어기적 걷는가 하면, 뒷골목을 배회하는 낙타와 라마는 포석 때문에 자꾸 발굽이 미끄러져 애를 먹었다. 타조와 영양이 포식자인 여우?늑대와 나란히 종종걸음을 치고, 개미핥기는 벽돌 위를 황급히 달리면서 ‘해치, 해치’ 소리를 질렀다. 털이나 가죽만 얼핏 보이는 물체들이 공장과 주택을 지나 재빨리 달아나고, 귀리· 메밀· 아마를 키우는 외딴 경작지를 향해 질주하고, 개천으로 황급히 뛰어들고, 계단통이나 창고에 숨는 모습도 여기저기서 목격되었다. 진흙탕에 빠진 채로 하마.수달.비버가 살아남았다. 곰.유럽들소.프셰발스키말.낙타.얼룩말.스라소니.공작을 비롯한 여러 조류?원숭이.파충류도 용케 살아남았다.
국내군은 런던에 본부를 둔 폴란드 망명정부가 통솔하는 폴란드군의 국내 비밀 부대로 세포조직, 무기저장고, 수류탄 제조공장, 학교, 안전가옥, 연락책, 무기?폭약?무선수신기를 만들 실험실까지 갖춘 강력한 조직이었다. 국내군 소위였던 얀은 동물원을 제3제국이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싶어할 무엇으로 위장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독일에는 먹여야 할 군대가 있었고 독일군은 돼지고기라면 사족을 못 썼으므로, 얀은 루츠 헤크에게 쓰러져가는 동물원 건물들을 활용해 대형 돼지농장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폴란드같이 황량한 기후에서 돼지를 기르려면 제대로 된 건물과 부지가 있어야 할 테고, 예전 동물원 직원들에게 다소의 수입도 안겨줄 터였다. 바르샤바 유대역사연구소에서 얀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돼지에게 먹일 음식물 찌꺼기 수거를 빙자하여 게토의 “친구들에게 돈?베이컨?버터를 가져다주고, 이런저런 메시지도 전해줄” 요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