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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여성학/젠더 > 여성학이론
· ISBN : 9791165342296
· 쪽수 : 736쪽
· 출판일 : 2020-09-29
책 소개
목차
서문 - 일리노이 출판사(2000)
서문 - 터치스톤 출판사(1990)
초판 서문 - 더블데이 출판사(1970)
1부 성 정치학
- 01 성 정치학의 사례들
- 02 성 정치학의 이론
2부 역사적 배경
- 03 성 혁명 제1기: 1830~1930
- 04 성 혁명 반동기: 1930~1960
3부 문학적 고찰
- 05 D. H. 로렌스
- 06 헨리 밀러
- 07 노먼 메일러
- 08 장 주네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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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여기에서 ‘정치’라는 단어는 주로 양성을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데, 일차적으로 양성의 상대적 지위가 보여주는 진정한 본질을 역사와 현재의 시점에서 개괄하는 데 아주 유용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이고 형식적인 정치학이 제공하는 프레임을 넘어서 권력관계에 대한 더욱 타당한 심리학과 철학을 발전시키는 연구야말로 오늘날 적절한 일인 동시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낯설고 비관습적인 근거에서 권력관계를 다루는 정치학 이론을 정립하는 일은 실로 긴요하다. 따라서 나는 인종, 신분, 계급, 성처럼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는 일련의 집단들 사이의 개인적 접촉과 상호작용에 근거해 정치학을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집단은 기존의 수많은 정치 구조들 속에서 재현되지 않으므로 그들의 지위는 매우 안정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 억압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최근에 벌어진 사건들을 보면 인종 간의 관계가 하나의 정치적 관계, 즉 출생에 의해 정의되는 하나의 생득적 집단성이 또 다른 생득적 집단성을 지배하는 정치적 관계라는 사실을 결국 인식할 수밖에 없다. 생득권만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집단은 급속하게 사라지는 추세나 그 유서 깊고 보편적인 지배 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성의 영역을 지배하는 구조다.
양성 간의 관계 체제를 편견 없이 검토해보면, 현재뿐만 아니라 전체 역사를 통틀어 양성 간의 관계가 보여주는 상황은 막스 베버가 지배와 종속 관계라 불렀던 지배의 현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 질서 안에서 거의 검토되지 않을뿐더러 인식되지 않았음에도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생득적 우월성은 제도화되어 있다. 이러한 양성 간의 체제를 통하여 가장 교묘한 형태의 ‘내면의 식민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그 어떤 형태의 인종 차별보다 강고하고, 그 어떤 형태의 계급 차별보다 완강하며 더욱 획일적이고 분명 더 영속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 지금 성차별이 해소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성의 지배는 우리 문화에 가장 널리 만연해 있는 이데올로기이며 가장 근본적인 권력 개념을 제공한다.
오늘날처럼 ‘성 혁명’이라는 말이 대단히 유행하는 시기에는 아주 하찮은 사회적?성적 행동 양식을 설명할 때조차 이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기껏해야 순진한 적용밖에 되지 않는다. 성 정치학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진정 혁명적 변화는 앞서 ‘이론’이라는 맥락에서 개괄한 바와 같이 양성 간의 정치적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한다. 가부장제라고 정의된 상태가 너무나 오랫동안 보편적 성공을 거두어왔으므로 그것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할 근거는 매우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가부장제는 변했다. 아니, 최소한 변하기 시작했다. 성 혁명 제1기의 대략 100여 년 동안 가부장제라는 인간 사회 조직은 지금까지 역사에 알려졌던 그 어떤 조직보다 더 근본적으로 변화를 겪은 듯 보였다. 문명의 가장 기초 통치 기제였던 가부장제는 이 시기에 이르러 붕괴 직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강하게 논박되면서 수세에 몰렸다. 물론 붕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 혁명 제1기는 개혁 도중 중단되어버렸고 이후 반동의 물결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그 혁명적 동요 속에서 아주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성 혁명은 무엇보다 전통적 성적 금기를 종식하는 일이 될 것이다. 특히 가부장제적 일부일처제를 위협한다고 생각되는 동성애와 ‘사생아 출산’, 청소년의 성행위, 혼전 성행위, 혼외정사 등에 대한 금기를 종식해야 한다. 성행위에 부여되는 부정적 분위기 역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성에 대한 이중 잣대와 매춘 또한 마찬가지로 사라져야 한다. 성 혁명의 목표는 성적 자유에 대한 유일하고도 관대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그 기준은 전통적 성적 관계가 보여주는 어리석고도 착취적인 경제적 기반에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난 몇백 년 동안 인류학을 괴롭힌 기이한 논쟁 하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간단히 가부장제 기원학파라 부르는 학파는 가부장제 가족이 인간 사회 조직의 원초적 형태이며, 부족이나 국가 등은 그것에서 진화되었거나 그것을 본떠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러한 주장이 가져오는 효과는 가부장제를 사회의 원초적이고 본래적인 형태로 보며, 따라서 ‘자연스러운’ 형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 형태는 남성의 육체적 힘과 출산으로 ‘나약해진’ 여성의 상황이라는 생물학적 근거를 갖는다. 이는 수렵이 필요한 환경에 부합한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여성의 종속은 합리적이며 필연적이기까지 한 환경의 산물이 된다. 이러한 이론적 가설은 필연적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불충분한 몇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즉 사회적·정치적 제도는 일반적으로 육체적 힘에 근거하지 않으며 다른 사회적·기술적 힘의 형태들과 연합된 가치 체계로 뒷받침된다. 또한 수렵 문화 다음에는 대체로 농경 사회가 뒤따랐는데, 농경 사회는 수렵 문화와는 상이한 환경과 요구를 가졌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은 사회적으로 해석되고 조직되므로 육체적으로 나약해지는 사건도 아니며 열등한 육체의 원인이 되지도 않는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 양육이 이루어지는 풍요 숭배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가부장제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형태이므로 다른 인간 제도와 마찬가지로 그 기원을 자연 바깥에서 찾는 게 합당하다. 우리는 가부장제의 기원이 가진 원초적 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하나의 제도이므로 가부장제 또한 다른 제도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추론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는 특정 상황의 산물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가부장제에 선행하는 다른 사회 조건 또한 존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