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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67373601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23-10-16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장 언간과 한글 그리고 훈민정음
2장 언간, 그 자료의 성격
3장 언간 읽기와 쓰기
4장 언간의 세계, 그 맛보기
맺음말
저자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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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한글로 쓴 편지는 여성들 사이에서 오고간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그와 관련해서 언간을 ‘내간’이라고도 했다. 여성 편향성이 강했다는 점까지는 무리가 없으나, 여성만을 상대로 하여 쓰였다거나 여성들끼리만 주고받은 편지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측면, 특히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확연하게 나눌 수 없다. 왕실이나 사대부가에서 오가는 편지라 하더라도 그 성격상 남성과 여성을 아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왕이나 사대부라 하더라도 할머니, 어머니, 딸, 며느리 등의 여성에게 편지를 하기도 했다. 반대로 여성들이 왕이나 사대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이 쓸 수 있는 언문으로 편지를 썼다. 탁월한 한문과 유려한 문장으로 써서 보낸다 하더라도 받는 사람이 그것을 읽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없는 일이다. 때문에 그들은 편지를 받는 사람을 생각해서 한글로 썼던 것이다. 그들에게 한글은 일종의 ‘배려’의 문자였다고 하겠다.
조선시대에 한문 편지가 사대부 계층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고 한다면, 언간은 남녀의 구분, 계층의 상하를 뛰어넘는 공유물이었다.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소통이 가능한 문자는 한글이었다. 받는 사람을 배려해서, 그들이 읽을 수 있는 언문으로 편지를 썼다는 측면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한글은 소통과 배려의 문자이며, 언간은 그 같은 문자로서의 한글을 통해서 소통과 배려가 이루어진 자료라 할 수 있다.
외교사절이 언문으로 기밀 사항을 써서 전해 주었다는 것, 한글이기 때문에 위험이 적다는 것, 기밀 유지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그 언문 편지를 다시 한문으로 바꾸어 조정에 전달해 달라는 말은, 공식적인 문자로서의 한문의 위상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와 관련해서, 흥선대원군이 한글 편지를 4통 썼다는 사실도 지적해 두고 싶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1통은 며느리 민비, 3통은 장남 이재면에게 보낸 것이다. 여성인 민비에게 한글 편지를 보낸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들에게는 왜 그렇게 했을까. 자세한 검토는 이 책 제4장에서 하겠지만, 그 편지를 쓴 시점이 실마리가 된다.
당시 그는 중국 톈진에 유폐되어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던 것이다. 비밀 유지에는 한문보다는 역시 한글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듯하다. 또한 자신의 편지가 노출되더라도 혹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더라도 위험이 적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언간은 주로 왕실과 사대부 가문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양으로 보아서는 사대부 가문의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다른 계층의 언간 역시 확인되고 있다. 궁녀가 쓴 언간도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계층적으로 보면 중인, 구체적으로는 통사通事, 譯官가 한글로 일본 관리에게 쓴 편지, 승려가 쓴 편지가 있다. 이 사례들에 대해서는 <제4장 언간의 세계, 그 맛보기>에서 다룰 것이다. 드물게 상인(포전상인)이 쓴 한글 편지도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대부가 노비에게 보낸 한글 편지도 확인되고 있다. 송규렴이 노복 기축이에게 보낸 편지 1건, 곽주가 노복 곽상에게 보낸 편지 2건 등이 전해진다. 송규렴의 편지에서는 “4섬 도지賭地도 워낙 보잘 것 없는데, 이것을 사서 일절 정직하게 하지 않으니, 네 놈의 사나움은 천지간에 없으니 한 번 큰일이 날 것이라. 작년에는 도지 2섬을 공연히 바치지 않고 (…) 또 흉악을 부리다가는 나도 분을 쌓아둔 지 오래라 큰일을 낼 것이니, 그리 알라”라는 식으로 나무라면서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를 미루어 보면 노비나 노복 역시 한글 편지는 읽을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