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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67375315
· 쪽수 : 212쪽
· 출판일 : 2025-03-28
책 소개
목차
세상을 어떻게 써내려갈 것인가 – 책을 펴내며
PART 1.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서: 파괴에서 탄생하는 – 음악과 생명의 공통점
PART 2. 록펠러대학교에서: 원환圓環하는 음악, 순환循環하는 생명
Extra Edition 팬데믹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얼마 전, 피아노가 '물체'임을 강하게 인식하면서 음악으로서가 아닌 ‘물체’로서의 울림을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에게 ‘물체’란 자연물을 의미합니다만, 피아노라는 악기도 원래는 나무나 철 등의 자연물을 인간이 모아 억지로 조형한 것이잖아요. 그런 인공물로서의 피아노도 인간이 손대지 않고 방치하면 몇백 년의 시간을 거치며 분해되어 자연의 ‘물체’로 회귀하겠죠.
예전에는 피아노를 정밀하게 조율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피아노에게 원래의 자연 상태를 돌려주고 싶다, 피아노가 자연의 ‘물체’로서 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조율을 안 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음정이 엇나가긴 하지만, 음정이란 것도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낸 개념일 뿐 자연의 소리로서는 딱히 어긋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_ 〈‘일회성’의 소중함〉에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별자리를 살펴본들 우주를 이해할 수는 없고, 애초에 별자리라는 개념 자체도 별을 왜곡해서 보는 것이니까요.
별자리는 하나의 평면에 달라붙어 있는 별들의 점이 아니라 실제로 완전히 거리가 다른 별들을 하나의 도형으로 보는 것이잖아요. 지금 보이는 별자리의 모양이 100만 년 후에는 달리 보일 수도 있고, 별의 빛 자체가 몇만 년 전에 발생한 것이니 어쩌면 이미 사라진 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걸 별자리라는, 일종의 도표이자 질서로 보는 것 자체가 환상이라는 말이죠. 그런 ‘별자리적’ 관점을 잠시 보류해두는 자세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_ 〈별자리를 본다 한들 우주를 알 수는 없다〉에서
직선적인 시간 속에서 명확한 ‘끝’을 정해놓는 서양음악을 일신교적이라 한다면, 본래의 음악은 보다 다신교적이고 애니미즘적인, ‘끝’이 없어도 상관없는 타임 프레임에서 탄생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존 케이지조차 마지막까지 구조에 집착했고 ‘어떤 시간을 어떻게 구획하는가’라는 구성에 집중했지만, 저는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제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환경친화적인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그런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답을 찾는 노력은 꾸준히 하고 있는데, 만약 정말로 ‘친환경 음악’이 존재한다면 미셸 푸코의 ‘인간은 죽었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면에선 인간적인 것을 부정하는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시 말해 일신교적인, 즉 처음이 있고 끝이 있는 것, 혹은 역사에는 목적이 있다는 등의 인간의 발상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 싶다는 마음이 개인적으로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앨범에 담는 음악은 어느 지점에서 끝나야겠지만,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복수의 시간이 동시에 진행되어 영원히 ‘반복’이 일어날 수 없는 음악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_ 〈별자리를 본다 한들 우주를 알 수는 없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