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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 번영의 환상

통합과 번영의 환상

(도시 사회학)

황희숙, 심재휘, 최경숙, 전병권, 박한선 (지은이)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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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 번영의 환상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통합과 번영의 환상 (도시 사회학)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91169191142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23-04-21

책 소개

융복합연구팀은 1년차에 공동체의 쇠락과 붕괴 현상, 도시공동체 안에서 목도할 수 있는 분노와 혐오의 사회병리적 증상들을 현상학적으로 기술하고자 했다.

목차

서문∣왜 도시공동체를 말하는가? 황희숙

Ⅰ. 근대의 기획과 공동체

모더니티의 재조명

-불확실성의 퇴조와 재현 현상으로 본 근대 황희숙

모더니즘 건축의 승리와 환상-공동체의 부재 전병권

Ⅱ. 이데올로기로서의 근대화와 도시의 모습

라비린스의 교훈-근대 도시이념의 반성 전병권

도무스 복합체-도시 비극의 시작 박한선

번영하는 도시와 영양주의 최경숙

식민지 근대 도시와 시인의 초상 심재휘

Ⅲ. 도시공동체 - 삶과 생활양식의 변화

도시의 두 얼굴-기아와 비만의 영양학 최경숙

도시공동체의 그늘과 ‘도시시’ 심재휘

병든 도시의 냄새-혐오라는 이름의 미아즈마 박한선

인간종중심주의와 자연 지배의 기획

-<침묵의 봄>의 경고를 돌아보며 황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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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소개

심재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97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두부와 달걀과 보이저』가 있다. 현대시동인상, 발견문학상, 김종철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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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숙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진대학교 명예교수다. 은유, 회의론, 인지주의 감정론, 토착 지식, 생태론, 공동선, 공감 등의 주제에 대해 논문을 썼다. 저서 『비트겐슈타인, 두 번 숨다』, 『전문가와 전문지식의 생태학』, 공저 『여성과 철학』, 『처음 읽는 영미 현대철학』, 『인문학의 길찾기』, 『에코테크네 페미니즘』, 『장소 철학 1, 2』, 『좌절의 시대, 분노와 혐오의 공간도시 현상학』, 『통합과 번영의 환상도시 사회학』이 있고, 역서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젊은 과학의 전선』, 공역서 『이것이 생물학이다』, 『생물학이 철학을 어떻게 말하는가』, 『현대 자연주의 철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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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숙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진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영아의 성장과 영양소 섭취 비교, 대사증후군 유무에 따른 식생활 평가, 학교급식의 학생배식 도우미 활용 가능성, 청소년 영양상담프로그램 개발, 돌봄교실 건강식생활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의 주제에 대해 논문을 써왔다. 공저 『이해하기 쉬운 지역사회영양학』, 『이해하기 쉬운 식생활관리』, 『고급영양학』(대한민국학술원 우수 학술도서, 2023), 『2020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 『장소 철학 1, 2』, 『좌절의 시대, 분노와 혐오의 공간도시 현상학』, 『통합과 번영의 환상도시 사회학』이 있고, 공역서 『영양판정 7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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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선 (옮긴이)    정보 더보기
진화인류학자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진화인류학 교실 조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진화인류학 강의』 『인간의 자리』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휴먼 디자인(공저)』 『감염병 인류(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진화와 인간 행동』 『여성의 진화』 『인간 문명의 네 가지 법칙』 『센티언스』 『행복의 역습(공역)』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진화인류학 교실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evoanthrolab.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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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권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대진대학교 건축학전공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건축설계 및 이론 분야의 수업을 진행하고, ‘건축설계연구실’을 플랫폼으로 건축과 도시 환경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근현대 건축론과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논문들을 발표하였고, 대한건축학회 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안창작문화공동체 展』을 비롯한 전시회 참여, 『#효서ALTERNATIVE HOUSE』등 작품 활동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공저 『장소 철학 1, 2』, 『좌절의 시대, 분노와 혐오의 공간도시 현상학』, 『통합과 번영의 환상도시 사회학』이 있고, 공역서 『건축 다시 읽기』, 『모여서 살기』, 『창을 이해하는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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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모더니티의 재조명

-불확실성의 퇴조와 재현 현상으로 본 근대

황희숙

1. 오래된 근대, 낯선 근대성

오래전 시인 황지우는 “끔찍한 모더니티”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서양의 지성사에서 ‘모더니티(modernity)’, 즉 ‘근대성’은 개인이 주체로서 해방된 것 특히 중세의 권위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의미하기에, “끔찍한 모더니티”라는 말이 당혹스럽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근대성을 이성적 주체의 자율성과 진보의 관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대는, 정치 차원에서는 국민국가의 등장, 경제 차원에서 자본주의와 근대산업의 등장, 또 사회적 측면에서 시민사회와 연관되어 있다. 그 각각의 차원에서 폭력과 통제의 메커니즘들도 작용했기에, 근대는 성장, 진보와 더불어 갈등과 위기의 양상을 드러냈다. 황지우가 말한 모더니티의 ‘끔찍함’도 “일제의 식민주의 모델과 그것을 정신역학적으로 계승한 60년대의 군사적인 근대화 프로젝트에 내포되어 있는 강제적인 힘”에 기인하는 것이다. “끔찍한 모더니티”란 외부에서 이식된 근대의 기제와 그 폭력성에 대한 시인의 절망적 경험을 표현한다.

근대는 전통사회의 족쇄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이성에 의한 계몽의 시대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모더니티는 진보와 극복의 개념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근대는 제국주의의 팽창, 식민주의(서구화, 지정학적 총체화)의 시대를 의미하고, 또 냉전 이후 근대화(론)(modernization)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기억된다. 발전과 성장을 궁극가치로 하는 서구중심의 근대적 전통을 붕괴시키고 대체할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탈근대(성)’의 논의는 이런 평가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근대성’은 단일한 유형이 아닌 것이다. 근대와 근대성이 진행되고 발생한 영역은 다층적이고, 지역과 국가에 따라 근대와 근대성의 경험과 확산의 시간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지역과 사회마다 달리 구체화 되었겠으나 그 각각의 ‘모더니티’를 구성하는 본질적 특징, 근대에 의해 대변되는 ‘근대적인 가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모더니티에 대한 논의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몇 차례 일어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모더니티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공동체의 문제와 관련해 다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통, 권위, 공동체의 쇠퇴를 불러온 근대가 언제 시작되었고, 또 근대성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물으려는 것이다. 근대와 근대성을 부정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탈근대(탈근대성)’라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진보와 성장의 이상, 그리고 과학에 대한 신뢰는 잘못된 것인가? 근대의 기획, 근대성의 이념이 주체의 자율성을 내세움으로써, 개인의 이기심이 팽배해지고, 사(私)영역의 다툼으로 가득한 사회가 도래하고, 그로 인해서 공공성과 공동선이 소실되어 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유지 또는 재건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말해야만 할까?

근대는 언제 시작되었고, 근대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역사적 시기로서의 서구의 ‘근대’는 16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구획되기도 한다. 더 좁게는 19세기 서구산업화 이후 현재까지의 시기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 ‘근대(적)(modern)’이란 단어는 5세기에도 사용되었고, 17세기에 ‘모더니티’는 ‘고대적’이란 단어와 대조되어 ‘현시대’를 의미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모더니티의 국면들은 그 용어를 사용하는 학자에 따라 16~18세기에 국한되기도 하고, 18세기말(1789~1794)의 프랑스 혁명 이후를 가리키기도 하고, 20세기부터 현재까지를 다 포섭하기도 하는 것 같다. 동어반복적이지만 ‘모더니티’는 근대 역사에서 두드러진 특정 전통, ‘근대적인 조건’, 근대 사회와 그 안의 삶이 갖는 독자적인 형태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객관적 과학, 보편적인 도덕과 법을 발전시키려 했고, 이로부터 모더니티는 진보의 원리, 과학과 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 이성에 대한 숭배와 인본주의의 틀 안에서의 자유의 이상과 관련된 계몽주의자의 기획을 가리키게 되었다. 기든스(A. Giddens)는 “‘근대성’이란 대략 17세기경부터 유럽에서 시작되어 점차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사회생활이나 조직의 양식을 의미한다.”라고 근대성의 시기를 특정한 후, 자본주의, 산업주의, 군사적인 힘, 감시라는 네 가지 제도적 차원과 그것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으로 근대성을 정의했다.

모더니티 논의는 사회적·사상적 국면과 문화·예술적 국면으로 나뉜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A. Rimbaud)가 “절대적으로 근대적(현재적)이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 근대성(현대성)이 정치 경제적 근대성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대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합리주의(이성주의)와 과학주의, 진보적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9~20세기의 예술적 모더니즘은 그런 가치, 지향점을 거스르기도 한다. 즉 이성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 초현실주의(surrealism)의 예에서 보듯 ‘반근대적 충동’을 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사상적 모더니티를 옹호하면서도, 이 문화적 모더니즘과 미적인 모더니티를 배격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이 글에서 예술적, 미적 근대(성)은 다루지 않는다.

서양철학사에서 근대성에 대한 대표적 비판자는 하이데거(M. Heidegger) 그리고 그 이전의 니체(F. W. Nietzsche)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계승한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 같은 포스트 모더니스트를 비판하기 위해 하버마스(J. Habermas)는 모더니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공식화한 모더니티 프로젝트는 객관적 과학, 보편적 도덕과 법, 자율적 예술을 내면의 논리에 따라 발전시키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동시에 이 프로젝트는 난해한 형태에서 이러한 각 영역의 인지적 잠재력을 해방하는 것을 의도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전문화된 문화의 축적을 일상생활의 풍요로움, 즉 일상적인 사회생활의 합리적 조직화를 위해 활용하고자 했다.

하버마스는 근대성의 기본 이념인 사회의 합리화와 인간해방의 기치는 포기될 수 없고, 특정 형태의 유토피아, 특정한 형태의 합리성을 비판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면서, 모더니티를 ‘미완의 기획’, 즉 실패한 기획이 아니라 오히려 완수되어야 할 과제로 규정한다. 모더니티가 실패했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유토피아적인 추동력은 진압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을 (신)보수주의라고 비판했다. 하버마스를 좇는다면 우리가 거부해야 하는 것은 근대의 계몽주의적 기획이 아니라, 오히려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신)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다.

반면 근대성을 지배와 폭력으로 얼룩진 것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근대성의 탄생을 1492년으로 보는 엔리케 두셀(E. Dussel)은, 유럽중심적 근대성이 억압한 ‘타자의 해방’을 추구하고자 한다. 두셀의 관점에서 콜럼버스는 최초의 ‘근대인’이고 그와 더불어 근대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 관점은 이성에 의한 해방이라는 근대성의 ‘개념’이 다른 문화에 대한 지배와 폭력을 은폐한다는 ‘근대성 신화’를 폭로하고 있다. 근대성 신화에는 ‘유럽중심주의’가 깔려있고, ‘발전주의 오류’가 깔려 있다. 하지만 두셀의 해방철학의 관점에서도 긍정적인 의미의 ‘근대성’, 즉 이성에 의한 합리적 해방이 전면 부정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부정적이고 신화적인 의미의 근대성, 즉 비이성적인 폭력의 실천을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타자의 이성을 긍정하고, 근대성의 폭력을 비합리적인 것으로서 비판하고자 하는, 해방기획으로서의 ‘통근대성(transmodernidad)’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견 근대성의 극복을 말하지만, 그것은 부정된 타자성을 포함시키는 기획에 의거해 근대성 개념을 더 완전히 실현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근대성에 대한 입장들을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 첫째는 근대성의 기획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근대성을 옹호하고 완수해나가고자 한다. 둘째는 통약불가능성을 지지하는 상대주의와 비합리주의, 낭만주의, 허무주의 등의 입장에서 근대성을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이다. 셋째는 근대성의 기획을 수정, 또는 극복하자는 입장이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 세 번째 입장은, 첫 번째 입장에 포섭되거나, 첫 번째 입장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위 엔리케 두셀의 입장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세 번째 입장 중에는, 두 번째 입장인 탈근대의 노선 상에 자리잡으면서도 근대를 극복하기보다는 ‘수용하면서 심화’하고, 그럼으로써 넘어서고자 하는 조금 더 복잡한 변양이 있다. 이것은 ??근대성의 종말??에서 심화로서의 넘어서기, 즉 ‘심화적 극복(Verwindung)’을 말한 쟌니 바티모(G. Vattimo)의 입장이다.

다양한 주장들의 겹침 현상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근대성 자체에 대한 더 정밀한 분석에서 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탈근대(성)’도, 근대성의 ‘심화적 극복’이나 ‘통근대성’도 적절하게 근대성의 지형도에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성은 이성의 권위와 주체의 자유(자율성)이라는 이상으로 대변된다. 서양의 근, 현대를 특징짓는 것이 인간의 이성 중심적인, 비판적 시대정신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대성이 그렇게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혼재된 시대정신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근대성의 국면에 현재, 즉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단계가 포함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에서 근대적 지식과 근대사회의 삶을 확실성/불확실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조망하려 한다. 근대에 ‘확실한 지식’과 ‘표준화되고 제도화된 사회 생활’의 추구로 인해 불확실성이 퇴조하였다. 하지만 다시 (근대와 이어진) 현대에 불확실성의 고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필자는 본다. 불확실성의 썰물과 밀물(ebb and flood, 조수 간만) 현상으로 근대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밀물썰물 신화>와의 유비가 가능해진다. 여기서 바다 동굴로 드나들어 밀물과 썰물이라는 결과를 일으키는 메기는 근대의 표준화라는 이상, 즉 확실한 지식과 그리고 안전한 근대국가와 공동체를 표상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불확실성의 수면이 낮아지는 썰물 때는 지식(과학적 지식)에 대한 신뢰, 공고한 국가의 기능이나 사회 공동체에 대한 복종이 세상에서 유통되고 작동하고 있을 때며, 불확실성의 수면이 상승하는 밀물 때는 지식에 대한 믿음과 공고한 공동체의 기능이 쇠퇴하고 침잠할 때라는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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