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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70402619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24-05-01
책 소개
목차
김여름 · 공중산책
라유경 · 블러링
서고운 · 정글의 이름은 토베이
성혜령 · 대체 근무
예소연 · 통신광장
현호정 · 옥구슬 민나
작품 해설 | 김다솔 · 이형異形을 어루만지는 방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의 장례미사가 있는 날이다.
여름 오후의 빛과 스테인드글라스.
직각의 빛은 하나의 울타리처럼 보인다.
‒ 김여름 「공중산책」
할머니는 체크 모자를 쓴 노인을 응원한다. 아는 사람이냐 물으니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그냥 단순하게, 어떤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응원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자를 쓴 노인은 검은 셔츠를 입은 노인에게 패배하고, 할머니는 금세 흥미를 잃는다. 모자를 쓴 노인의 시계를 훔쳐본 뒤 할머니에게 곧 영화가 시작할 것이라 일러주자 할머니가 묻는다.
너는 이제 어디로 갈 거냐.
글쎄요.
할머니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자두 하나를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네가 재밌는 걸 해라.
재밌는 거. 내가 자두를 한 손에 든 채 그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 할머니는 유유히, 허리우드 극장을 향해 간다. 나는 투명해진 자두를 바라보다 그것을 한 입 베어 문다.
옆자리에 있던 언니가 녹았다.
촛농이 불에 녹듯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액체로 녹아 원목 의자에 흘러내렸다.
‒ 라유경 「블러링」
빗물에 쓸려 내려갔어요.
비둘기가 날아와 목을 축이던데요.
옆에 쌓여 있던 나뭇잎으로 덮어주었어요.
온통 현실감 없는 글뿐이었다. 처음 이런 일이 일어나 주목받은 이후로는 액체가 방치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고인을 위한 행위로는 바닥에 흩뿌려진 액체에 무언가를 덮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지나친 옆 사람에게 벌어진 일이 대부분이었다. 나처럼 곁에 있는 친구에게 일이 벌어진 경우는 아직 없는 모양이었다.
이 액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지만 우선 텀블러에 담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언니를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찾아보면 언니를 다시 되돌릴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언니, 걱정 마. 언니는 혼자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