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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지/출판 > 서지/문헌/도서관
· ISBN : 9791173961311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25-06-23
책 소개
이 책은 바로 도서관에서 인류 진보를 위해 ‘사서(司書)’란 이름표를 달고, 가장 평범했지만 가장 위대한 삶을 살다 간, 어느 한 도서관 사서의 생애에 관한 것이다. 사서는 동서를 막론해 지식의 진보를 가능케 하는 원천이자 지식 헌신자이다. 일반인들이 각종 지식과 정보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사회의 문화 지식을 기획하고 나누는 제일선에 선 사회 봉사자이다. 지위와 명성, 부를 생각하고 사서가 된 이는 아무도 없다. 사서는 자신이 빛나면 안 되는 운명을 지닌 소명자이다. 오히려 책과 만난 그 누군가가 인류에 기여하고 세상의 진보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스스로 빛나는 존재들이다. 보이지 않지만, 책을 매개로 타인(독자)이 빛나야 비로소 아름다운 별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백린(白麟, 1923~2015)이 바로 그런 사서 중 한 명이다. 2023년이 백린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던 해였고, 2025년은 백린이 이 세상을 떠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해방 후인 1948년부터 서울대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기 시작해 1991년에 하버드대 도서관에서 물러날 때까지 어언 43년이란 시간 동안 사서로서 봉사, 헌신의 삶을 살다 간 역사의 증인이자, 도서관학계와 한국 지성계의 숨겨진 거인이다. 이제야 백린을 처음 호명하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 도서관 소장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각종 국보급 고서를 부산으로 소개(疏開)하고 이를 지켜낸 장본인이 백린이었다. 6만 권이나 되는 규장각 고서 목록을 완성하고, 국내 도서목록 작성 및 분류안의 틀을 마련한 것도 백린이었다. 국내 최초로 설립된 연세대 도서관학과에 입학해 도서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을 뿐 아니라, 한국 도서관사를 최초로 집필하고, 각종 서지 연구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연구 사서이자 서지학자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1960년대에 여러 대학 도서관학과에 출강해 후학 사서 양성에도 힘쓴 교육자였다. 사서로서 백린의 진가는 외국 대학 도서관, 그것도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인 하버드대 도서관 사서로 스카우트된(수출된) 제1호 사서라는 데서 여실히 증명된다. 한국학의 세계화가 이미 1970년대에 백린에 의해 그 씨앗이 뿌려졌다 할 것이다.
사서로서 뿐만 아니라, 백린은 한국도서관협회 창립 멤버이자 임원으로 활동하며 도서관 발전에 적잖이 기여했다. 백린은 박학다식했으며 한중일 언어 서적까지 두루 볼 수 있었던 학자였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하버드대에서 학생과 연구자들에게 든든한 연구 조력자요 넉넉한 나무 그늘이 되어 준 휴식처이기도 하다. 동안 우리가 미처 잘 몰랐지만, 도서관학과 역사학, 서지학 분야에서 백린이 남긴 흔적과 영향은 하해(河海)와 같다.
‘백린’의 본명은 ‘백찬경’이다. <한서(漢書)>에 나오는 ‘흰 기린(白麟)’을 택해 ‘백린’으로 일부러 개명한 데엔 흙수저 출신의 젊은 백린이 품었던 반항심과 자기 열등의식이 자리한다. 백린은 고향인 평안북도 선천에서 12살의 어린 나이에 배가 고파 만주로 가출한 이후 한평생 한 곳에 정주(定住)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서 유목(遊牧)적 삶을 살았다. 백린에게 낀 역마살이었지만, 그것이 백린을 사서로 만든 원천적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대 청년이 되어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백린. 그러나 가족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서울로 내려와 살고 있었다. 가족을 찾아 낯선 서울로 남하해 가족과 상봉하고 서울서 비로소 한글을 깨우치고 생계유지를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 1948년에 서울대 도서관 사서로 채용된 것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필연을 가장한 우연처럼 백린에게 다가온 사서로서의 길은 당시 내세울 것 하나도 없던 백린에게 천직임을 깨닫게 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백린이 걸어간 길은 고단하기만 했던 당시 한국인의 전형이자 우리네 자화상이었다.
해방 이후 전신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을 운영해야 했던 서울대 도서관에는 이렇다 할 사서가 없었다. 실무에 곧바로 투입할 사서를 공개 채용해 뽑았는데, 백린이 그 기회를 얻었다. 한문 서적뿐 아니라, 일본어와 중국어 서적을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있었던 백린은 당시 도서관장인 이병도 역사학 교수의 눈도장을 받아 곧바로 규장각 고서 담당 전문 사서로 일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규장각 소장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국보급 고서와 장서를 부산으로 피난시키고 보전하는 임무가 떨어졌을 때, 백린이 그 실무책임자로서 끝까지 고서를 지켜냈다. 휴전이 되어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도 무너진 서울대 도서관 복구와 재개관 준비를 진두지휘한 이가 백린이다.
재개관 후 백린은 도서 분류와 도서목록 작성 규칙을 마련하는 일에 앞장섰다. 1960년대에 서울대 도서관 최초로 도서 과장이 되어 규장각 도서 16만 권의 목록을 정리, 작성하는 실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또한 구한 말 일본인 총독 이토 히로부미가 규장각 소장도서를 개인적으로 대출했다가 일본으로 반출해 간 사실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서류를 발견해 이를 세상에 알려 국서를 반환받게 만들기도 했다.
백린은 사서로 근무하면서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30대 중반 단국대 역사학과에 입학해 학사학위를 받고, 연이어 국내 최초로 생긴 연세대 도서관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도서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여러 대학에 도서관학과가 생겨나자, 연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 신설 도서관학과로 출강해 후학을 가르쳤다. 가르치고 연구하던 사서 백린이 도서관학계와 국내 학문에 미친 가장 큰 업적은 무엇보다 한국의 도서관 역사 서술에 있다. 백린의 <한국 도서관사 연구>(1969)는 유일무이한 도서관 통사로 지금까지도 이를 능가한 도서관사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백린의 선한 영향력은 국내 도서관계에 국한되지 않았다. 하버드대 옌칭 도서관에서 사서 백린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고 그를 스카우트한 것이 그 단적인 증좌다. 세계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와 하버드대 도서관에서 전문사서로서 도서 분류와 정리, 그리고 도서관 역사를 연구하고 수많은 연구자와 학생들에게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하며 학문의 전진을 이끈 사서는 백린밖에 없다. 줄탁동시(啐啄同時)할 수 있는 그의 시선은 늘 남보다 한 걸음 앞서 저 멀리, 넓은 세계를 향해 있었다.
백린은 서지학과 도서관학, 그리고 한국사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평소 교수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제대로 봉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서가 진짜 대학도서관 사서라는 소신을 갖고 백린 자신부터 연구하는 사서의 모범을 보였다. 백린에게 ‘최초의 연구사서’라는 영예를 선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이미 50여 편의 학술기사와 논문, 그리고 7종의 단행본을 발표한 백린은 미국에서 각종 신문과 잡지 등 지면을 통해 한국 역사와 한인 유학생에 관한 학술 기사를 50여 편을 남겼다. 한국 도서관사 뿐 아니라 한국 도서관학을 알려면 백린이 내놓은 다대하고 위대한 연구 성과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백린은 백린답다. 자신의 최고 전성기 때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50세란 나이에 하버드대 옌칭 도서관 사서 제안을 받고는 안주하지 않고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다시 초짜가 되어 미국 이민을 떠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망국민으로서 느꼈던 상실감과 차별의식, 남북 간 이념 대립, 참혹한 한국 전쟁에서 갖게 된 트라우마, 그리고 지독한 가난의 상처가 내면 깊이 꽈리를 틀고 일탈과 도전을 주문했다. 하지만, 한학에 밝고 규장각 도서를 섭렵하고 사서 업무 능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인품이 훌륭하고 한결같았던 인격자였다. 미국에서도 백린의 능력을 단번에 인정했고, 백린은 한국인 방문학자와 학생들에게도 다 내어주고 도와주던 연구 조력자이자 한 핏줄을 지닌 해외 동포로 살아갔다.
교육과 계몽의 선구자였던 안창호는 백린과 동향인(同鄕人)이었다. 백린은 그런 안창호를 유독 좋아했다. 안창호가 일찍이 “책사(冊舍)도 학교다. 책은 교사다.”라고 한 말을 가슴에 평생 안고 살았다. 백린에게 책사(冊舍)란 도서관이었고, 도서관은 인생의 학교였다. 아니 살아갈 이유 전부였다. 지금도 서울대 도서관과 하버드대 도서관 곳곳에는 그러한 백린의 자취와 숨결이 선명히 어른거리고 있다.
반평생을 내부자적 시선에서 한국을 바라보았다면, 나머지 반평생은 외부자적 시선으로 조국을 사랑하다 별이 된 백린. 한 명의 ‘책-지기(冊知己)’로서 백린이 살다 간 역사적 현장은 ‘살(殺) 풍경’이었을지 몰라도, 그가 꿈꾸며 실제로 만들어 나간 세상은 ‘원(原)풍경’이었다. 세계 속 리더, 한국 경제와 사회를 이끈 주인공을 길러낸 지성의 성지가 대학도서관이라지만, 그곳에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다 간 백린 같은 사서를 몰라도 될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이 책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은사(隱士) 사서 백린을 그만의 세계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호흡하는 세계로 불러내고자 한 것이다. 백린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묵묵히 한국 지성계의 불을 밝혀주고 있는 이름 모르는 고마운 사서들을 향한 헌사(獻辭)이기도 하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대학도서관 사서(司書) 백린 이야기
제1부 평북 선천과 만주에서의 어린 시절
1. 백린의 고향 평안북도 선천
1) 역사 속 선천
2) 개화기 기독교 선교의 거점, 신교육과 항일(抗日)의 요람
2. 백린과 가족 관계
1) 3남 2녀의 장남, 백린
2) 선천에 대한 아련한 기억 조각
3. 만주에서 보낸 청소년기
1) 배고픔이 싫어 만주로 가출하다
2) 만주국에서의 학업과 취직
제2부 해방과 귀향, 그리고 서울 입성까지
1. 12년만의 귀향, 안봉선 열차를 타고 귀국하다
2. 낯선 고향, 혼란한 해방 정국
3. 서울, 제2의 삶의 터전이 되다
1) 가족과의 서글픈 재회
2) 개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3) 서울 적응기
제3부 서울대 도서관 사서 백린, 한국 전쟁서 고서를 지켜내다
1. 서울대 도서관 사서가 된 백린
1) 서울대 부속도서관 약사(略史)
2) 20대 중반에 서울대 도서관 사서가 되다
2. 전쟁의 한복판에서
1) 돈암동 집에서의 도피 생활
2) 서울 수복과 서울대 도서관의 참상
3. 부산으로의 국보급 고서 운송 작전
1) 잿더미가 될 뻔한 서울대 고서들, 그 긴박했던 순간들
2) 조선왕조실록을 피난지 부산으로 옮기는 실무 책임자
4. 부산에서의 고서 지킴이 생활
1) 부산에서의 고서 지킴이 생활
2) 전시연합대학 개강과 임시 도서관 개관
3) 아내 최선경과의 만남과 결혼
제4부 서울대 도서관 사서 최초로 사서 과장이 되다
1. 도서관 재개관의 일등공신 백린
1) 검은 먼지 뒤집어쓰고 도서정리를 하다
2) 꿈에서 찾은 규장각 현판
3) 분실된 장서각 소장 적상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 행방
2. 도서관 재건 프로그램과 오스트볼트(Ostvold) 보고서
1) 서울대 도서관 재건 프로그램의 운영
2) 미네소타 대학 오스트볼트 도서관장의 보고서
3. 사서 백린의 역할과 공적
1) 대학도서관 최초 사서관이 된 백린의 도서분류와 도서기호 부여
2) 일본 반출 규장각 고서가 반환되기까지
제5부 연구하는 사서, 배움의 길은 끝이 없고
1. 만학도 백린, 도서관학 석사 학위를 받다
1) 늦깎이 대학생이 단국대 지리역사학과에 입학하다
2) 연세대 도서관학과와의 인연
3) 규장각 장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백린
4) 동학(同學)·동료(同僚)·지기(知己)들
2. 연구 사서로서의 백린의 학문적 성과
1) 49편의 소논문(학술기사)
2) 7종의 편·저서 개관
3) 규장각 도서 16만권을 집대성한 <규장각도서한국본총목록>의 집필과 편집
3. 국내 최초로 ‘한국 도서관사’를 저술하다
1) 백린이 밝힌 한국 도서관의 역사
2) 규장각과 장서각
3) 국내 최초의 근대 도서관
제6부 하버드대 옌칭 도서관 사서로서의 제2의 삶
1. 50세에 이룬 꿈과 새로운 꿈
1) 하버드대 옌칭 도서관에로의 파견 연수
2) 새로운 도전, 옌칭 도서관 사서가 되다
2. 옌칭 도서관 목록 사서로서의 헌신
1) 옌칭 도서관 한국학 서고의 초석을 놓은 선임 사서 김성하
2) 목록 사서로서의 일과 백린의 소신
3) 백린의 일상과 방문학자와의 교유
4) 박수칠 때 떠나라-사서로서의 마침표
제7부 보스턴 한인사회의 밀알이 되고자
1. 단국대 객원교수로 지낸 1년의 한국 생활
2. 보스턴 한인회와 한국학교를 위한 봉사
3. 연구 모임을 이끌고 재야 사학자로 활동하다
1) 연구 모임 진성회(眞誠會)의 결성과 고구려 역사연구회 조직
2) 갑신정변과 망명 한인 유학생을 조명하다
3) 재미(在美) 재야 역사학자로서의 백린
4. 보스턴 한인사회의 밑거름
에필로그 - 연구사서의 롤 모델이자 전설이 된 백린
[덧붙이는 글 1] 하버드대 옌칭 도서관 한국학 서고(Korea Collection)의 역사
[덧붙이는 글 2] 1950~60년대 옌칭 도서관의 한국학 서적 입수 과정과 제 풍경
참고문헌
부록
1. 백린 저작물 목록
2. 백린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