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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75010437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25-12-26
책 소개
목차
1부 머쿠슬낭에 흰 꽃이 하올하올
고망
갯것이
귀창
그듸
꿩코
낭
내낭
내창
담상꾼
동골레기
두리다
말장시
모살
몸국
물마중
물ᄆᆞ르
물애기
멩글다
2부 우정은 귤과 복숭아를 서로 주고받는 일
버렝이
번구름
볼레낭
부름씨
베릿내
벨
벨롱벨롱
사름
산남
산물 1
산물 2
산전
산탈
살레
서툰바치
셋하르방
속다
수눌음
숭털다
신사라
3부 새는 구름을 종가 날아간다
아이모른눈
언치냑
우영팟
예점
웨방
일흠
저슬
조촘앉다
종그다
죽어지는 세
셈
재열
질
4부 시간의 조난자들은 서귀포 바당에
천지벡갈
천리
청
치메깍
칭원ᄒᆞ다
켄
쿰다
ᄏᆞᆯᄏᆞᆯᄒᆞ다
툴ᄒᆞ다
튼나다
팡돌
헤치
ᄒᆞ민
부록
제주어 활용 문장 쓰기
책속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부에 가입했다. 문학부 이름은 ‘창(窓)’. 수요일마다 한 교실에 모였다. 수요일 오후에 진행된 특활 시간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한 걸음 물러서 있고 학생들이 주도해 토론을 벌이곤 했다. 책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문집 준비도 하였다. 억압적인 학교생활 속에서 그나마 수요일 오후의 특별 활동 시간에는 자율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
나는 선배를 따라 어영부영하는 후배였으나 속으로는 문학적 자세를 취하는 선배들을 흠모하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데, 그때는 졸업생이 그 시간에 맞춰 교실에 찾아오기도 했다. 대학생이 된 선배 몇 명이 교실에 들어왔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었다.
우수에 찬 얼굴의 한 선배는 야상을 입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치기스러운 행동과 말인데, 그때는 멋있어 보였다. 선배는 자기소개를 짧게 하더니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있다. 글을 써라.”
그 말은 어떤 선언 같았고, 그 시대에 필요한 아포리즘 같았고, 선험적이기까지 했다. 그 말을 쓴 채 더는 말이 없었다.
또 다른 남자 선배는 우리에게 영화 한 편을 권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죽은 시인의 사회>(피터 위어, 1990)였다. 우리가 읽는 시의 시인들은 모두 죽었다며 침 튀기며 영화와 문학에 대해서 말했다.
여자 선배는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노래 한 곡을 하겠다며 나섰다. 그 노래는 변진섭의 노래 <너에게로 또다시> 다.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까 이제 나는 알았어 내가 죽는 날까지 널 떠날 수 없다는 걸” 주먹을 불끈 쥐고 열창했다.
나는 그늘이 가득한 얼굴로 창밖을 보던 선배도 아니고, 영화 얘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감수성을 말하던 선배도 아니고, 목에 핏줄을 세우던 선배의 노래가 마음으로 들어왔다.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오기까지 힘들었다는 그 노래는 졸업생의 마음으로 다가왔고, 나의 미래를 보는 듯했다. 언젠가는 그리워할 그 시간을.
―「귀창」 부분
나는 동네 형들과 여우동산 부근 풀숲에 꿩코를 놓았다. 낚싯 줄이나 철사를 동글게 말고 그 안으로 또 다른 한쪽을 집어넣어 둥글게 만든다.
꿩이 다니는 길목에 놓아 두면 꿩이 지나가다 목이 걸린다. 화들짝 놀란 꿩은 대가리를 주억거리고, 그러면 줄이 꿩의 목을 조른다. 꿩코를 세는 단위는 호라고 하는데, 많게는 백 호 넘게 놓는다. 다른 사람의 꿩코를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형과 나는 꿩코를 놓고 며칠 뒤 그 자리에 가 봤지만 늘 허탕이었다. 고등학생 동네 형들이 꿩을 잡았다는 말을 듣고, 내심 기대했으나 뱀이라도 안 마주치면 다행이었다. 내가 굴룬걸음(헛걸음)이라고 붕당붕당(혼자서 투덜대는 모양) 입바위(입술)를 비죽이면 형이 어느새 졸겡이(으름)를 따 내게 내밀었다. 우리는 그 하얗고 부드러운 졸겡이를 바나나라 부르며 좋아했다.
(중략)
제주의 중산간 마을 인근 길을 가다 보면 먼 곳에서 타운 하우스들을 쉬이 마주치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봄이면 산벚나무꽃 사이를 날아오르는 꿩을 볼 수 있다.
어릴 적 우리가 만든 꿩코에 꿩은 걸리지 않고 햇빛만 걸린 적이 많았다. 우리는 그 햇빛 속에서 자랐다.
―「꿩코」 부
제주의 작가들은 자신의 고향 마을이나 사는 마을과 가까운 4·3 유적지를 더 자세히 찾아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소의 의미를 상기하면서 재발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안나 시인은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박성내를 노래했고, 가시리에 사는 조부·조모를 잃은 오광석 시인은 가시리를 노래했다. 내 고향 마을에서 가까운 바다가 곤을동이고, 나는 그 잃어버린 마을을 노래했다. 제주 시인들의 4·3 시에 나오는 장소를 꼽아 보면 4·3 지도가 완성될 것이다. 내창 주위로 마을이 형성 되고 건천에는 이야기가 흐른다.
―「내창」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