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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86020029
· 쪽수 : 696쪽
· 출판일 : 2018-05-14
책 소개
목차
제1장(소년기)
1두릉 18 2허목묘 25 3수종사 32 4두모포 40 5소룡동 46 6담양관아 51 7무등산 56 8동림사 62 9남한산성 68 10비천당 75 11공주 80
제2장(성균관 수학기)
12성주암 88 13진주성 94 14예천 99 15함인정 105 16체천정사 110 17봉은사 117 18인정전 122 19성호생가 126 20성균관 132 21두미협 139 22성정각 145
제3장(벼슬 전기)
23포석정 154 24죽령 159 25배다리 166 26해미읍성 172 27황산대첩비 177 28세검정 185 29약현 189 30연지동 196 31수원화성 202 32팔달산 210 33동북공심돈 217 34봉수대 223 35장안문 228 36행궁대로 232
제4장(벼슬 후기)
37연천현청 238 38백운대 246 39연영문 254 40명래방 260 41금정역 267 42부여 276 43유천점 282 44어의동 289 45곡산 296 46형조청사 308 47도동서원 315 48광릉 321 49대릉 328 50영춘원 336
제5장(유배 초기)
51숙장문 344 52하담나루 354 53조령 360 54장기성 366 55느릅나무숲 374 56죽림서원 381 57의금부 386 58청파역 393 59율정점 398
제6장(유배 중기)
60동문매반가 406 61청조루 414 62강진현청 423 63사의제 428 64동촌 434 65북산 440 66조석루 446 67정수사 454 68보은산방 460 69백련사 466 70묵재 473 71신지도 482
제7장(유배 후기)
72다산초당 492 73채마밭 503 74동암 510 75남당포 516 76우복동 522 77병영성 529 78용산마을 534 79묘당도 540 80진불암 546 81만일암 553 82일지암 558 83우이도 566 84금사봉 572
제8장(해배기)
85동고 582 86송파나루 590 87문암장 598 88용문산 603 89여유당 610 90소양정 616 91천진암 625 92현곡 631 93오엽정 638 94죽산 643 95사마리 649 96채화정 656 97활터 664 98백운동 670 99홍화문 676
그림과 사진 일람 688
인물 찾아보기 692
저자소개
책속에서

헤아림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19번 이상, 대과에만 13번 이상 과거시험에 떨어졌다. 크게 흔들렸다. 노대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가슴깊이 흔들렸다. 그럴수록 심지는 굳어졌다.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았다. 직선길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우친 것처럼 거친 길들을 헤맸다. 갈라지고 굴곡진 길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 된다고 다짐하면서다.
바쁘다는 단어는 다산 사전에 없었다. 오는 감동을 물리치지도, 경탄을 생략하지도 않았다. 이름 없는 들풀을 내려 보지도, 땅의 이야기를 지우지도, 지금 여기를 그냥 지나치지도 않았다. 어느 때나 삶의 한가운데 치열하게 서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은 그 가치를 알고 부지런한 사람만 한다. 왜 이일을 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은 남과 다른 결과를 만난다. 매일 새로운 나와 이웃을 만나는 사람은 마음이 부지런하고 가슴이 감동으로 찬 사람이다. 남이 나서길 싫어할 때 집을 나서는 사람은 새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어렵게 즐기거나 마음을 살찌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처가 깊을수록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그리워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산다. 그 상처를 어떻게 자신이 보듬고 소화해서 표출하며 사느냐가 삶의 질을 갸름했다고 생각된다. 두 사람은 방법은 달랐지만 상처를 보듬은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장난마당戱場’, 희극戱劇처럼 세상은 지식과 이념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들 천지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장난마당’이다. 하늘까지도 그 마당에 춤을 추었다. 다산은 결코 불행을 피하거나 멈추게 하려하지 않았다. 불행을 감수하며 희망을 심고 그것을 향해 뛰었을 뿐이다. 그저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하려 했을 뿐이다. 고통을 끌어안고 하지 않아야할 걱정과 근심 속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다산은 행동하는 지성으로 살았을 뿐 인생을 심각하게 살지 않았다. 나는 장난마당인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아왔지 않았는가?
다산에게는 굶주림은 물론 빈대와 이, 모기도 방해꾼이 될 수 없었다. 수렁에 빠지면 절망감에 마음이 풀어지고 해이 해진다. 분노는 머리를 하얗게 한다. 굶주리면 짐승이 된다. 자신의 목구멍 이외에 가족이나 이웃, 꾸밈새나 체면은 신경 쓰지 않게 마련이다. 동물적인 본능에 매달릴 뿐 희망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 놀랍다. 다산은 굶주리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한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며 저술은 물론이고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자식들의 앞날까지 챙긴다. 이게 타고난 천성인가, 지성인가.
폐족, 자식들을 죽이는 말이다. 선비의 희망인 과거시험장 근처도 갈수 없는, 다산의 가슴을 도려내는 말이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아들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소극적이 된다. 그들의 눈치를 보며 겸연쩍어하고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른다. 그러다가 작은 실수에도 자격지심에 화를 내고 온 몸으로 폭발한다. 먹구름이 덮는 집안에다 자책과 후회로 술이 친구가 되고 주변사람들이 멀어져간다. 다산은 달랐다. 어떤 여건 하에서도 자식들의 앞날을 책임져야했다. 절망 속에 방황하는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야했다. 자식들의 앞날에 짐이 된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나는 동문매반가를 서성일 때마다 아버지인 나는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한다.
사람들은 다치면 운다. 크게 다치면 통곡한다. 더 크게 다치면 울지도 못한다. 말문이 막히거나 우는 기능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다치고 나서 울지 않는 사람은 없다. 미리 위험에 대비하거나 피하지 못했다고 거듭 후회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나도 다치고 나서 울었다.
다산은 아예 통곡했다. 숨어서 꺽꺽 거리지 않고 사람들도 의식하지 않았다. 나는 두 번 놀랐다. 그는 울지 않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눈물이 흔한 사람이라서 놀랐다. 울음이 아니라 통곡하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놀람도 끝이 있었다. 통곡하지 않고서 어찌 남을 설득시키겠는가. 통곡하고서 어찌 휘어지겠는가. 통곡하고서 어찌 갈팡질팡하다가 중심을 잃겠는가. 통곡하고서 어찌 고난과 고통, 절망에 굴복하겠는가.
‘분노는 지성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지성이 결핍된 분노는 자신을 망치지만 지성적 분노는 자신은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고 주변 사람들까지 바른 길로 인도한다. 달리다가 멈출 줄 아는 분노는 더 높이 날고 더 많이 본다. 분노는 실수를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다산의 힘
이었다.
어찌 흔들리지 않거나 실패에 방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다산은 참으로 막힌 감정을 그때그때 풀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남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맺힌 것은 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슴의 응어리를 통곡으로 풀었다. 상처와 고통은 지식보다 지혜를 가져온다. 그래서 통곡을 갈망으로 바꿀 줄 알았다. 내가 10년 동안 다산을 쫒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그의 좋은 장점이다.
나이 들어가며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나태해지고 나약해진다. 가끔은 실없는 농담으로 물오른 입을 놀려보지만 몸이 따로 놀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여행이나 새로운 일에 몰두하며 자신감을 키워야한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돌아온 다음해부터 글 쓰는 틈틈이 여행하며 지냈다. 여행만이 소외와 고독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여행, 언제나 설레는 말이고 삶이다.
4개월 후 정조의 허망한 죽음은 다산의 통곡으로도 매워지지 않았다. 티끌로 태어나 운명과 숙명을 향해 비키라며 큰소리친 사람들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깨닫게 한다. 끊어질듯 이어진 벼랑 끝 순간들, 그 틈새에서 인간의 꿈, 그게 무엇인가란 의문이 떠오른다. 꿈을 잃으면 죽는다고 모두들 소리친다. 아무튼, 꿈꾸는 자는 죽지 않는다는 말, 천하에 거짓말이다. 누군가는 꿈꾸는 자만이 깨닫고, 그것으로 세상을 바꾼다고, 꿈을 크게 가져야한다고 외친다. 어이없게도, 믿을 수 없다. 어허, 인간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 한가지씩은 가져야 한다니까, 정조와 다산이 꿈꾸던 그 꿈을!
다산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책과 붓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4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가장 바쁜 때인 승정원에 있을 때나 반대파들의 공격으로 가슴이 끓을 때도, 붓이 없는 감옥에서도 머리로 생각을 저장하며 글을 썼다. 보는 게 글이고 듣는 것도, 먹거나 버리는 것도, 만나거나 떠나는 것도 글이었다. 유배지 장기에서 한양으로 다시 끌려가면서 경황이 없어 쓴 책을 다 잃어버렸어도 이곳 동문매반가에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긴 글을 쓰지 않으면 할 일이 없었다. 붓은 그의 놀이기구였고 생각을 키우고 저장하는 그의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내가 처음 두릉을 찾은 때는 80년대 초였다. 즐겨하지 않은 낚시와 고향에서의 추억이 팔당을 찾은 인연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