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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근세사(원~ 아편전쟁)
· ISBN : 9791188522729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0-03-10
책 소개
목차
편집자의 말: 명대 문인들을 통해 본 지식인, 그리고 관료들의 삶의 지침서 _05
1장 : 군신관계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유기劉基 | 1311~1375 _11
뛰어난 재주로 개국공신이 되었지만 의심이 많은 주군에게 버림받다
송렴宋濂 | 1310~1381 _27
평민 천자와 재야 출신 측근, 그러나 천하는 그를 품어주지 않았다
이선장李善長 | 1314~1390 _40
창업의 제일공신이었지만 모반죄로 사형에 처해지다
2장 : 역린을 건드리는 직언으로 화를 자초하다
방효유方孝孺 | 1357~1402 _53
십족을 멸한다는 위협에도 인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해진解縉 | 1369~1415 _66
역린을 건드리고도 살아남았지만 완곡한 간언에 죽임을 당하다
이몽양李夢陽 | 1473~1530 _84
정치계에서도 거침이 없으니 관료사회는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강해康海 | 1475~1540 _96
비범한 재능이 화가 되어 우울한 말년을 보내다
3장 : 재주에 도취하여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다
당백호唐伯虎 | 1470~1524 _113
세속을 초월하는 재주를 지녔지만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축윤명祝允明 | 1461~1526 _123
세상을 경시하며 자유분방하게 살다
서문장徐文長 | 1521~1593 _132
실패한 막료가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루다
4장 : 진정한 도(道)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
왕수인王守仁 | 1472~1529 _145
공적과 학문 모두 소인배에게 이용당하다
하심은何心隱 | 1517~1579 _163
강학으로 지방을 교란하다? 주류세력에게 당한 비극적인 최후
이지李贄 | 1527~1602 _175
말과 문장의 자유가 없다면 차라리 이단이 되리라!
5장 : 붕당싸움, 다른 파를 제거하라
고헌성顧憲成 | 1550~1612 _199
군자에게 정치란 어울리지 않음을 보여준 붕당과 당쟁의 희생양
고반룡高攀龍 | 1562~1626 _216
살고 죽는 것이 다르지 않다
정진선鄭振先 | 1572~1628 정만鄭? | 1594~1639 _226
당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부자의 억울한 죽음
전겸익錢謙益 | 1582~1664 _241
문인이 정치에 참여했다 당한 비극의 극치
옮긴이의 말: 지식인의 선택과 운명 _287
리뷰
책속에서
유기의 죽음 뒤에는 분명 호유용의 정치적 보복이 있었다. 그러나 역사학자 오함(吳?)은 “유기의 죽음은 사실 태조의 음모에 의한 것이다. 호유용이 유기와 원한이 있는 것을 황제가 알았고 자신도 모르게 이용당한 것이다.”고 했다. 만약 이 말이 맞는다면 유기의 비극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또 유기에게는 선지자적인 예언 능력이 있다 했는데 어찌 이런 결말을 예측하지 못했단 말인가. 만약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당연히 모친의 충고를 새겨듣고 주원장의 휘하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
-유기
윤수형(尹守衡)도 《명사궁(明史窮)》에서 비슷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황제도 송렴이 덕을 이야기하는 성실한 군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결국 유배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공명이 가져다주는 피로함’을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은거하면서 공부에 만족했다면, 그래서 이후의 빛나는 공적이 없었다면 당연히 이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몇 사람이나 이러한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송렴
해진이 이처럼 거리낌 없이 대신들을 평했던 것은 자신은 ‘군자의 정정당당함’이라고 생각했겠으나 이는 관료사회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잠재규칙(潛在規則)을 어긴 것으로,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해진은 유기(劉基)가 태조 앞에서 양헌, 왕광양, 호유용을 품평하다가 결국 호유용에게 보복 당한 것을 잊었던 것일까?
-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