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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89171551
· 쪽수 : 456쪽
책 소개
목차
제1부
제 1장
제 2장
제 3장
제 4장
제 5장
제 6장
제 7장
제 8장
제2부
제 1장
제 2장
제 3장
제 4장
제 5장
제 6장
제 7장
제 8장
제 9장
제10장
제3부
제 1장
제 2장
제 3장
제 4장
제 5장
제 6장
부록
새 말법의 원리
《1984》로 사유하며, K-문화의 새 지평 열기
책속에서
쾌청하지만 아직 쌀쌀한 4월 어느 날, 괘종시계가 열세 시를 알렸다. 매섭게 파고드는 바람을 피해 윈스턴 스미스는 턱을 가슴에 묻고 승리맨션 현관 유리문을 밀며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 사이로 모래 먼지가 먼저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복도에는 누더기 바닥재의 눅눅한 곰팡내와 양배추스튜 끓는 냄새가 훅 끼쳤다. 복도 저 끝에 섬뜩한 포스터가 하나 붙어 있는데, 실내에 붙이기에는 크기가 좀 과해 볼썽사나웠다. 그 폭만 일 미터가 넘는 포스터는 멀끔한 용모에 마흔다섯쯤 되어 보이는 검은 콧수염의 남자 얼굴이 가득 차 있다. 윈스턴은 계단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는다. 전기 형편이 좋은 시간대에도 운영하는 일이 드문데, 요즘 들어 낮에는 아예 전기를 끊어버린다. 혐오 주간을 대비하는 절약 운동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의 집은 7층이다. 윈스턴은 서른아홉인데 오른쪽 발목 위로 정맥류를 앓고 있어 걸음이 더디다. 몇 차례나 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발을 떼곤 하는데, 층계참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복도 끝에서 포스터의 얼굴이 그를 응시했다. 포스터 도안의 기묘한 기법 탓에 그 눈은 바라보는 이의 행동을 훑어보는 효과가 난다. 게다가 포스터 아래쪽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본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엠마누엘을 향한 만인의 혐오와 경멸은 매일 같이 수천 번에 걸쳐 텔레스크린과 신문, 온갖 책들에서 그리고 연설가들도 앞다투며 거듭 다뤄지고 있었다. 그의 이론은 그토록 반박되고 부정당하며 조롱당했다. 그런데도 그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마 그의 꼬임과 농간에 넘어가는 얼간이가 아직도 끊임없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서 활동하는 간첩과 공작원의 음모가 생각감단에 의해 발각되지 않는 날이 없다니 말이다. 그는 국가의 전복을 꾀하는 거대한 지하조직, 비밀 군대의 두목이었다.
그 못된 조직 이름은 대략 ‘형제단’이다. 그리고 온갖 이단의 개설서쯤 되는 섬뜩한 책에 대한 소문도 파다한데, 저자가 실은 엠마누엘이고 그 책은 비밀리에 유포되어 도처에서 읽힌다고 했다. 제목도 따로 없는 책이었다. 그래서 뭐라고 불러야 할 때는 그냥 ‘그 책’이라 불렸다. 하지만 모든 게 소문일 뿐이라 일반 당원들은 “형제단”에 대해서도 “그 책”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언급하기를 꺼렸다.
“손들어!” 사나운 외침이 그를 맞았다.
튼실하고 멀끔한 용모의 아홉 살쯤 보이는 녀석이 탁자에서 튀어나오며 장난감 자동소총을 들이대나 싶더니, 두 살쯤 어려 보이는 계집아이도 나무 작대기를 들고 제 오빠를 따라 했다. 두 아이는 감시단 제복을 흉내 낸 파란 바지와 회색 셔츠에 목에는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머리 위로 두 손을 들어 줬지만, 윈스턴은 기분이 찝찝했다. 사내 녀석의 몸놀림이 너무 악귀 같아서 도무지 아이들 놀이의 느낌이 아니다.
“이 반역자!” 사내아이가 악을 썼다.
“너는 사상범이다! 유라시아의 첩자! 총으로 널 쏴버릴 거야, 내가 없애주겠어, 소금 광산으로 보낼 거야!”
두 아이는 그의 주변을 돌다 “배신자!”와 “사상범!” 소리를 지르면서 날뛰었다. 계집아이는 오빠가 하는 짓을 고대로 따라 했다. 조만간 사람 잡아먹을 호랑이 새끼들이 전투 연습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스산했다. 상대방을 후려치거나 걷어차겠다는 잔혹하고 약빠른 눈빛, 이제 곧 그럴 수 있다는 자의식이 사내아이 눈에 이글거렸다. 진짜 총알이 장전되어 있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윈스턴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