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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예술/대중문화의 이해 > 미학/예술이론
· ISBN : 9791189356804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22-09-05
책 소개
목차
오민 — 폴리포니의 폴리포니
오민 — 시간
오민·장피에르 카롱 — 구성적 해리와 선험적 미학에 관하여
오민·요세피네 비크스트룀 — 퍼포먼스 기술의 변증법
오민·앤드루 유러스키 — 시청각적 ‘텍스처’—다원적 장르를 향해
오민 — 노래해야 한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문석민 — 비선형적, 비서사적 음악
신예슬 — 노래?
백지수 — 별미 빵을 만들겠다는 제빵사의 마음으로
저역자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덩어리 / 나는 시대마다 그 시대 특유의 감각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학문적으로 규명되기 이전, 언어로 구체화되기 이전, 모두가 동감할 정도로 공공연해지기 이전부터, 시대의 감각은 이곳저곳에서 마치 징후처럼 나타난다. 동시대의 감각 역시 이미 여기저기 흔적을 남겨 두었다. 내가 그 흔적들을 제대로 추적했다면, 동시대적 감각은 덩어리적인 것이라 짐작한다. 덩어리적 감각은 비위계적 관계를 지향한다. 덩어리적 감각은 우리가 주변적이라 생각하던 것들을 내부로 흡수한다. 덩어리적 감각은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운동한다. 그렇다고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운동하는 것은 아니다. 덩어리적 감각은 선형적 감각이 능숙하게 만들어 내는 환영에는 관심이 없다. 덩어리적 감각은 이야기를 생산하지 않는다. 덩어리적 감각은 선형적 감각보다 강도 높은 독해를 요구한다.
선 / 음악은 선율에서 출발했다. 선율은 지금껏 음악에서 주인공으로 행세했고 실제로 그렇게 작동했다. 때때로 한 음악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선율을 흐리며 동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덩어리적 음향은, 선율이 최근까지 음악사에서 누렸던 지위와 역할을 되돌아보게 한다. 분명 다수의 소리가 함께 울렸는데 하나의 선으로 들린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소리 사이에 부여된 위계 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선율보다 하위 위계에서 작동하던 다른 것들에 관해 다시 생각했다. 전경화된 선율이 음악의 표면에서 주요한 임무를 수행했음은 사실이지만, 사실상 새로운 음악을 촉발해 온 수많은 계기는 오랜 시간 동안 선율 아래 가려져 있던 다른 것들이었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서사 / 서사란 무엇일까? 서사가 무엇이길래, 서사 없는 작품을 감상 중인 관객들이 서사를 찾지 못해 번뇌하고, 심지어 가끔은 존재하지 않는 서사를 찾아내고야 마는 것일까?
여기서의 서사는 원인과 결과, 혹은 인물의 감정, 혹은 이야기나 메시지에 가깝다. 서사의 사전적 의미는 ‘일련의 사건에 관한 기술’로 정리할 수 있으며, 이는 이야기보다는 조금 포괄적인 개념으로 보인다. 폴 리쾨르의 관점은 조금 더 유연하다. 리쾨르에게 서사란, 세계(prefiguration)에 관한 이해를 내적 규칙에 의해 조직화(configuration)하는 탐구며, 이것은 독자에 의해 재조직화(reconfiguration)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존재하지 않는 서사를 찾아내는 관객에게도, 가사도 이야기도 없이 형식과 번호로 이름 지어지는 절대 음악의 관념적 시간 구조 역시 서사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믿는 나에게도, 큰 의심을 남기지 않을 만큼 충분히 넓은 시각이다. (...)
서사란 결국 연쇄적으로 분화되는 층위와 각 층위의 구성체들이 맺는 유기적인 관계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나 메시지와 같이 좁은 의미의 서사는 선에 가깝지만, 수직적 층위와 수평적 흐름 안에 조직되는 정보 관계와 같이 넓은 의미의 서사는 덩어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