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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91189478261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24-11-02
책 소개
목차
- 사진 (최요한)
- 한국의 다국어 거리 글자 (글.정재완) 221쪽
- 보이지 않는 것을 기록하기 (글&인포그래픽. 이상현) 289쪽
- 대화 (최요한 x 전가경) 313쪽
저자소개
책속에서
“언젠가 명동 거리를 걸으며 마주친 글자는 자본의 증표였다. 관광객이 줄을 서고 중국어와 일본어 중심으로 형성된 언어 경관은 돈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함이었다. 요사이 대구 교동 거리는 일본의 어느 유흥가를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가나 문자와 한자로 쓰여있는 간판과 메뉴판은 읽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소비하는 것 자체가 힙하기 때문에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어떤 문화를 소비의 대상으로 간주할 때, 글자는 소비를 위한 장식품이다. 하지만 최요한 사진가가 본 글자는 삶과 노동의 글자다. 중국,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들이 자생적으로 형성한 언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의정부, 동두천, 평택의 미군기지 주변의 언어 경관도 부대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담고 있다. 거리 글자는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다. 거리 글자는 건물 외벽이나 표지판 등에 기생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증식한다. 우리의 삶이 우연과 측흥의 연속이듯 삶을 반영하고 있는 거리 글자는 끊임없이 덧대어진다.”
정재완, 「한국의 다국어 거리 글자」 중
“이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한국 내 이민자들과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먼저, 이들에 대한 지리적 데이터와 통계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데이터의 선명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민자들의 특성상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거나 비공식적으로 체류하는 미등록 이민자 수도 많아 정량적 데이터로 이들의 삶을 추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생활 흔적'이야말로 이들의 영역과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유용한 대안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슬람 사원과 같은 건축물처럼 이주민의 유입으로 도시 풍경을 극적으로 바뀌는 사례가 종종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물며, 대부분은 기존 생태계 안에서 부분적 변화를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도시 경관 부속물로서의 간판을 포함한 거리글자이다. 외국 이민자들이 다수 모이는 장소에서는 상호 간의 상업적 활동이 이뤄지기 마련인데, 이는 자연스럽게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구성된 간판이나 거리 글자 제작으로 이어진다. 고로, 특정 언어의 밀집도는 해당 언어 사용자, 곧 이민자들의 밀도를 방증하는가 하면, 이민자 커뮤니티의 특성을 직간접적으로 나타낸다.
과거에는 미군 부대 주변이나 차이나타운의 영어와 중국어 간판들이 도시 속 유일한 외국어 경관이었으나, 최근에는 러시아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그간 상대적으로 생소한 언어가 중심인 지역 커뮤니티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이제 대부분의 한국 도시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되었다. 김해나 안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에 따른 노동력 부족으로 오히려 소도시에서는 한국인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하지만, 서로를 보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상현, 「보이지 않는 것을 기록하기」 중
“전가경: 책 제목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어서 오십시오'라는 제목을 제안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해당 제목을 제안했는가.
최요한: 몇몇 장소에서 '어서 오십시오' 라는 커다란 간판을 볼 수 있었다. 특히, 판짱특구로 지정된 장소에서 그랬다. 길 초입에 무지개다리 같은 것을 만들어 글자로 크게 표시해 놓았다. 마치 이 지역을 보고 싶으면, 이 글자 밀을 통과해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로 읽혔다. 그 외에도 상점 초입에 카펫이나 시트지로 만날 수 있어서 나에겐 인상적인 문구였다. 해당 표현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이주 노동자를 환영 혹은 경계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인식을 함축적으로 담았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밀집된 곳을 관광특구라고 지정해 놓고서 '어서 오십시오' 표기하는 게 아이러니했다.
전가경: 좋은 아이디어였다. 이번에 촬영한 사진의 또 다른 특징으로 밤 풍경을 들 수 있다. 왜 밤을 배경으로 찍었는가.
최요한: 그간 완결된 작업에는 항상 인물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 의정부, 동두천, 평택, 대림동, 동대문 등을 탐색할 때 일부러 낮에 방문하여 인물을 촬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림동에서 그곳 지역민들이 전동드릴과 수공구를 갖고서 퇴근하는 장면을 보았다. 얼핏 들으니, 중국어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따라가며 촬영을 요청해 볼 생각이었지만 이미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어서 포기했고, 대신 그들이 인근 맛있는 식당으로 가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그들을 뒤따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식당으로 들어갔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이후 식사를 하고 나왔더니 낮과 전혀 다른 풍경을 보게 되었다. 관광객들이 사라진 거리엔 동네 주민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무엇보다 날이 어두워진 만큼 글자들이 도드라져 보였다. 간판들이 스스로 빛을 내뿜고 있더라. 그 풍경이 크게 와닿게 되면서 밤 풍경을 찍게 되었다. 밤 풍경만 촬영한 건 이번 프로젝트가 처음이다.”
최요한 & 전가경, 「대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