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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89958046
· 쪽수 : 654쪽
· 출판일 : 2019-07-03
책 소개
목차
머리말 4
길게 내쉬는 남곽자기의 숨소리 12
언아, 너는 천뢰(天?)를 아는가 28
조조(調調)하고 조조(??)하다 46
소리 내어 우는 한 줄기 바람의 비밀 66
늙은 자들, 함정에 빠진 자들 84
악출허(樂出虛) 음악은 텅 빈 곳에서부터 101
백구륙(百九六)의 몸의 발견 121
뛰어가는 말 등에서 사는 진치(盡馳)의 삶 140
‘무(無) 속에서’인간은 숙명적 존재 158
언어와 도의 관계 178
방생지설(放生之說), 만물은 나와 함께 198
도추(道樞)여, 문 여닫는 소리 요란하다 218
천지일지(天地一指) 237
쓰지 않고 다 쓰는 우제용(寓諸庸) 257
만물의 천균(天均)에서 쉬는 양행(兩行) 275
완성과 파괴와 ‘있다’와 ‘없다’ 295
종신무성(終身無成), 완성이란 없다 313
나는 알지 못하겠다 334
만물과 나는 하나이다 352
도(道)와 말[언(言)]의 경계에서 372
보광(?光), 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392
석연치 않은 요(堯)의 마음은 무엇일까 412
왕예(王倪), 네 번의 앎에 대한 부정 432
세상 밖을 떠도는 지인들 471
공자 따위가 그런 지식을 가지고 어찌 490
아름다운 사랑의 도 511
장자의 신비한 꿈의 발견 531
모든 꿈은 깨어나지 않을 것 552
번연효란(樊然?亂), 우리는 서로 안다고? 571
천예와 만연의 ‘이것[시(是)]’으로 591
그림자와 망량(罔兩)과 관찰자 장자 611
물화(物化) 장주의 꿈인가, 나비의 꿈인가 630
종언(終焉) 650
저자소개
책속에서
| 종언(終焉) |
만물이 언어가 된 그 후, 최상의 지혜는 어느 날 승물유심(乘物遊心)을 시작했다. 나의 지난 9년의 『칠원서』 여행은 만물을 찍고 가버린 광속의 시간 같다. 만물제동의 〈제물론〉은 현재 속에서 태허를 찾는 귀휴이자 다른 미래로 이동하는 꿈이다. 그의 문자엔 파편화한 사물의 언어를 치유하고 본래 것들을 제자리에 놓아두는 우제용의 꿈이 있었다.
그 속엔 협우주, 방일월의 소요상온(逍遙相蘊)과 천예한 물화의 그림자들이 물결치며 승기(乘機)한다. 거기 만물의 해존(該存)은 천진하며 생명은 작고 귀엽다. 자연이 품은 모든 것은 서로 부지(不知) 속에 존재하고 이용치 않으며 소요케 한다. 몽음주자와 망량(罔兩)과 경(景), 호접몽(蝴蝶夢)의 비유들은 고대(古代) 사유의 최고 경지로서 현대 비유법의 먼 원형이다.
무궁자(無窮者)의 바람과 같은 장자의 언어와 함께 걸으면 자유롭고 통쾌하다. 이 현해(懸解)한 자유를 아무 노고 없이 두 손에 가득 받고서도 아무런 채무감이 들지 않는다. 저 하늘 위의 하늘 천장을 가질 수 없다. 다만 내가 건드리고 제어하고 제조하는 것에서 불행을 나는 예감할 뿐이다. 〈제물론〉은 무서울 것이 없고 부러운 것이 없는 진인의 우주적 비결(秘訣)이다. 가까스로 무종사(無從事)와 무익생(無益生)을 얻는 것일까.
〈제물론〉을 소요하는 일은 중규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 외최(畏?)한 험산의 침묵과 대목백위의 규혈(竅穴)에서 터져나오는 절규는 겨우 인간을 중심에 두게 하는 장자의 우주적 상상이다. 사물의 침묵과 생명의 울음이 만물을 상통(相通)하게 한다. 장자의 언어는 인위적 편집과 통치적 체제를 거부한다. 그 노래가 자연의 용상(庸常)이다.
자연은 만물의 집이다. 인간은 만물 속의 한 존재로서 지혜와 언어를 가지고 있다. 유정무형(有情無形)이고 비피무아(非彼無我)이다. 언어가 온 곳에 도가 있고 그 언어 속에 도가 있다. 인간의 만물 통치는 위험하고 그 남용(濫用)은 곧 그대로 모욕이고 불행이다. 미래엔 자연에 대해 인간의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구의 새로운 〈제물론〉이며 저 생명소요를 축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골의지요로 돌아가기 전에 만연의 천예가 되는 꿈을 취하는 길이‘이곳’에 있다. 자연소요(自然逍遙)와 천변만화 속에 전화(轉化)하고 놀라며 기뻐하고 아파하는 존재들의 소리를 듣는다. 한편 한 마리 나비가 날아가는 햇살밭은 적막황홀이다. 가없는 존재로서의 그 ‘나’는 바람과 지괴(地塊)의 물화 속에 언제나 있을 것이다. 나는 너무나 오래된 화생(化生)이 아닌가.
그대의 육체와 영부에서 제물의 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만물의 존재론이며 언어론인 〈제물론〉은 언제 읽어도 새롭고 쟁쟁하다. 망가진 눈으로 읽은 은약(隱約)의 글이 장자와 그 애독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을까.
늘 그 아름다운 문자 사이와 그 너머를 떠돌고 있을 이 위대한 사유의 원전(原典) 앞에서 다시 나를 여읜다. 그대가 늘 조용한 한쪽 어둠속에서 바람을 품는 한 그루 나무이길 바란다.
2013년 6월
양평 송현리(松峴里)에서 고형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