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1247701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5-12-19
책 소개
달빛과 파도, 솔숲의 아름다움에 보폭을 맞추며
일상의 문법을 다시 배우는 시인의 시간
대도시를 벗어나 강릉 바다와 숲을 걸으며 삶의 속도를 다시 익힌 한 산책자의 회복 일기이자, 달빛과 파도 솔숲의 아름다움에 보폭을 맞추며 일상의 문법을 다시 배우는 시의 시간. 2017년 독립 문예지 『베개』에 시를 발표하며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닦아주는 정고요 시인이 강릉에 살며 산책하며 떠오른 단상들을 산문과 시와 짧은 소설로 풀어 쓴 책 『산책자의 마음: 도망친 곳에서 발견한 기쁨』이 출간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강릉의 여러 해변, 밤바다, 조약돌, 모래알들, 식물들, 호주머니, 고양이, 피아노 등 다양한 자연과 사물을 사색의 대상으로 삼아 조곤조곤 써 내려가며, 독자들에게 산책과 사유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이끈다.
걷고, 멈추고, 다시 걸으며 오롯한 하루를 살아내는 연습
도망치는 건 종종 도움이 된다. 실은 그리 부끄럽지도 않은 일이다. 정고요 시인은 약 십일 년 전 강원도로 이주했다. 시작은 분명 묵직한 삶의 무게를 피해 달아난 ‘불시착’이었지만 도망친 곳에서 그는 산책을 통해 자신만의 호흡을 다시 찾아낸다. 『산책자의 마음』은 걷고 걸으며 발견한 일상의 틈을 시인의 눈으로 오래 바라본 기록이다. 강원도로 이주한 뒤 정고요는 자신의 나이를 ‘강원도력’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삶의 기준점 자체를 바꾸는 시도에 가깝다. 그 시도의 감각은 곧 이 책의 호흡과 닿아 있다. 시인은 큰 야심을 품는 대신 스스로를 ‘일상인간’이라고 부르며 매일의 질서를 조금씩 세워간다. 대도시를 떠나고서야 웃음을 되찾고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았다는 고백은, 『산책자의 마음』이 항상 애써야 하는 단거리 달리기 같은 삶으로의 회복이 아닌 자신에게 꼭 맞는 보폭의 산책 같은 삶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다
“뒤에 두고 온 것을 돌아보지 마,
앞으로 닥쳐올 것도 미리 보지 마,
너는 지금 여기에 있어.”
—「흐르기와 산책하기」 중에서
뒤를 돌아보지도 앞서 달리지도 않겠다. 정고요 시인이 강원도에 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일러준 태도다. 그는 푸른 바다와 숲 앞에서 호흡을 고르고 걷기부터 다시 배웠다. 산책은 해야 할 일들로 촘촘히 구획된 하루의 마디들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음표 하나를 조심스럽게 끼워 넣는 ‘쉼 연습’이었다. 시인은 음표들을, 매일의 마음을 글로 섬세하게 엮어낸다. 이 책에는 산책이 문장을 만들고 문장이 다시 하루를 만드는 과정이 온전하게 담겨 있다. 그러므로 부제에서 말하는 ‘도망’은 대책 없는 도피가 아니라 더 잘 맞는 삶으로의 도약을 위한 능동적인 선택이다. ‘도약처’ 강릉에서 타인의 속도를 강요받지 않은 몸과 마음은 본연의 리듬을 천천히 찾아간다. 시인은 그곳에서 잘 웃는 법을 되찾고 마음의 긴장을 자연스럽게 내려놓는다. 삶에 느림과 비움을 끌어들이며 일상을 새로 꾸리기 시작한다.
풍경의 문법을 배우다
산책은 어떻게 문장이 될까. 정고요 시인은 풍경을 소비하지 않는다. 그에게 산책은 그저 걷는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장소를 매만지는 행위이기도 하다. 쉼 연습을 거듭한 산책자의 나날에는, 주머니에 넣어둔 조개껍데기를 다시 꺼내 보고 신발에 들어간 모래알까지 귀히 느낄 만큼 충분히 사유할 여유가 생긴다. 그날의 산책에서 돌아오면 그는 달빛과 물소리, 솔숲의 바람이 선사한 감각을 적는다. 하루는 그렇게 일기가, 시가, 소설이 된다.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과
있는 것에 대한 기분을 가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오후가 있다”
—시 「믿음과 기분」 중에서
정고요의 산책은 비우기 위해 시작한다. 그래서 그의 기록은 늘 눈앞의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숲의 녹색이 오늘은 짙은지 투명한지, 파도는 어디까지 들고 나는지, 마주친 동물과 사람과 사물 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는 서둘러 이름 붙이지 않고 오래 바라본다. 경탄하고 의아해하며 감각을 몸에 남긴다. 그렇게 수집된 작은 발견들은 『산책자의 마음』 안에서 여러 그릇을 얻는다. 일기의 단정한 문장, 밤바다와 여름꽃과 소중한 것들의 목록, 산문 사이사이 놓인 몇 편의 시, 그리고 단편소설까지…… 스며든 감각은 다양하게 번역되며 글이 되어 서로의 결을 살린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독자 역시 해야 할 일들의 마디 사이에 자기만의 음표를 어디에 둘지, 어떤 호흡으로 걸을지 가만가만 생각하고 싶어질 것이다. 결국 이 책이 건네는 의미는 명료하다. 야심은 놓아두고 텃밭심으로 생활하기. 그렇게 쌓인 소박한 질서가 어느 날 우리의 보폭을 바꾸고, “우리는 우리가 걷는 풍경을 닮”아갈 테다. 걷는 걸 좋아하지만 산책의 참된 기쁨은 잘 모르던 당신에게 이 책은 꽤 믿음직한 산책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목차
실직을 해서 우리가 알게 된 것
해변을 산책할 때 주머니가 필요한 이유
[시] 유령
해변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는다는 것
[시] 너와 나의 거리는 꿈이다
장소를 사랑하기
있지만 없는 장소, 없지만 있는 장소
평행 우주 산책
백담사 단풍놀이
산책과 내면의 옷
흐르기와 산책하기
밤과 바다의 목록
자전거 산책과 회복 탄력성
출근과 산책
산책과 멍
[시] 믿음과 기분
한 알의 모래
죽은 새와 열람이 허락되지 않는 책 한 권
길을 잃는 기쁨
산책하다 만난 동물들
산책하다 만난 사람들
산책하다 만난 꽃들
나무들
취미인간의 피아노 산책
신과의 산책
산책의 노래, 노래의 산책
날씨인간의 산책
여름의 초당, 초당의 산책
가끔 등산
산책의 미분과 적분
도망치기로서의 산책
야심 말고 텃밭심
텃밭심 말고 마당심
계절의 산책
산책이라는 사치
터널 수집가
[소설] 손
마음과 산책
[시] 구멍
꿈과 희망과 산책
일상인간의 산책
물보라 여인숙의 구름 관찰자
산책과 카페
마디
저자소개
책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진 바다의 어디쯤부터 여기는 안목해변, 여기서부터 저기는 송정해변, 송정해변 다음은 강문해변, 이보다 더 다음은 경포해변…… 흐르는 것에 이름을 붙이다니. 이런 건 인간만이 한다.
--「흐르기와 산책하기」 중에서
바다를 산책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내 내면의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을 산책하고 있었네, 집에 돌아와 신발 속의 모래를 털며 생각하는 것이다. 모래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나와, 오늘 산책한 바다와, 내일 만날 세계가.
--「한 알의 모래」 중에서



















